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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17장 / 전체 47장

쪼개기가 아니라 곧게 자르기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분이 옛 킹제임스 성경(KJV)의 한 구절, 「진리의 말씀을 옳게 나누며(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이 구절 하나 위에 성경 공부 체계 전체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잘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나누는 일, 곧 한쪽에는 율법의 말씀을, 다른 쪽에는 진리의 복음을 두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에서 좋은 교사란 그 경계선이 어디를 지나는지 알고 둘을 떼어 놓는 사람입니다.

다른 구절 하나도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듯 보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마음을 쏟지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족보와 옛 이야기가 가득하니, 바울은 구약성경으로 가르치는 일을 경고한 것이 틀림없다고 추론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 주장은 앞뒤가 맞습니다. 실제로 많은 영어 성경에 「나누다(divide)」라는 낱말이 나오고, 바울이 신화와 족보를 경고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두 구절 모두 자세히 살펴볼 만하며, 먼저 모든 것이 걸려 있는 그 한 낱말부터 보겠습니다.

곧게 자르기

해당 구절은 이렇습니다.

디모데후서 2:15 알레데이아(진리)의 로고스(말씀/메시지)를 오르도토메오(바르게 나누다)하여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도키모스(검증된) 자로 자신을 세우기를 힘쓰라.

YLV 영어 본문은 「divide(나누다)」라고 하지 않고 「accurately handling(정확하게 다루며)」이라고 옮깁니다. 바탕에 있는 헬라어 낱말 오르도토메오 때문입니다. 이 낱말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르토는 「곧다」는 뜻으로, 이를 곧게 펴 주는 치과 교정의(orthodontist)라는 영어 낱말에도 쓰이는 접두사입니다. 뒷부분은 「자르다」를 뜻하는 템노에서 왔습니다. 둘을 합친 오르도토메오는 곧게 자르다, 곧은 길을 내다는 뜻이며, 거기서 무엇을 바르게 다룬다는 뜻이 나옵니다.

재단사가 천 한 필 위에 옷본을 펼쳐 놓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곧게 자를 때 재단사는 선을 따라가고, 그래서 조각들이 틀어지지 않고 서로 맞아 한 벌의 옷이 됩니다. 곧게 자른다는 것은 천 한가운데를 갈라 절반을 내다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 전체를 정성껏 다루어 어느 한 부분도 망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쓴 낱말에 담긴 그림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은 말씀을 구부리지도 않고 그 사이로 비뚤어진 선을 긋지도 않으며 정확하게 다룹니다. 오르도토메오라는 낱말 어디에도 성경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에서 떼어 내 한쪽으로 치워 둔다는 뜻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무엇인가

이 구절은 무엇을 다루는지 이름을 밝힙니다. 「알레데이아(진리)의 로고스(말씀/메시지)」입니다. 로고스는 말씀이고 알레데이아는 진리입니다. 앞의 주장은 「진리의 말씀」이 율법과 대비되는 복음을 뜻한다고 전제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짐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직접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42 당신의 의는 영원한 의요, 당신의 토라는 진리입니다.

시편 기자는 토라에 진리가 얼마쯤 들어 있다거나, 토라가 한동안 진리를 가리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토라가 진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낱말은 에메트(진리)로, 단단함과 신실함, 곧 온몸의 무게를 실어 기댈 수 있는 무엇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예슈아께서도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17 당신의 알레데이아(진리) 안에서 그들을 하기아조(거룩하게)해 주소서. 당신의 말씀은 알레데이아(진리)입니다.

예슈아께서 이렇게 기도하실 때, 아버지의 기록된 말씀은 토라를 맨 앞에 둔 이스라엘의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당신의 토라는 진리입니다」와 예슈아의 「당신의 말씀은 알레데이아(진리)입니다」는 같은 것을 양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모데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알레데이아(진리)의 로고스(말씀/메시지)」를 정확하게 다루라고 합니다. 토라가 진리라면, 토라는 디모데가 다루라는 바로 그 말씀에 속합니다. 그러니 진리의 말씀에서 토라를 잘라 내고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비뚤어진 자르기입니다.

신화와 족보

두 번째 구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두면서 맡긴 일에서 나옵니다.

디모데전서 1:3-4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나면서 에베소에 머물기를 권면한 것처럼, 어떤 이들에게 에테로디다스칼레오(다른-가르침을-가르치다)하지 말도록 명하고, 끝없는 뮈도이스(신화들)와 게네알로기아이스(족보들)에 마음을 두지 말도록 하라. 이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안(경륜/관리)보다 논쟁들을 일으킨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 대목을 아무리 찾아도 「구약성경에 바탕을 둔」이라는 말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은 「에테로디다스칼레오(다른-가르침을-가르치다)」와 「뮈도이스(신화들)」와 「끝없는 … 게네알로기아이스(족보들)」를 지목하고, 그것들이 무엇이 잘못인지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루어 가기보다 「논쟁들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신화에 해당하는 낱말은 뮈토스(이야기)로, 이야기나 말이라는 뜻입니다. 족보에 해당하는 낱말은 게네알로기아(족보)로, 혈통의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모든 족보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끝없는 족보, 곧 끝도 목적도 없이 억측으로 이어져 나가는 족보입니다. 성경의 족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태는 예슈아에 관한 기록 전체를 족보로 시작합니다.

같은 단락 안에서

바울이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계속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겨우 세 절 뒤, 같은 단락에서 바울은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1:7-8 노모디다스칼로이(노모스-선생들)가 되기를 원하면서 자신들이 말하는 것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들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누가 노모스(법)를 노미모스(합법적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 사람들은 「노모디다스칼로이(노모스-선생들)」가 되기를 원했지만, 자기가 하는 말도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짚는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자기 경고를 잘못 받아들이지 않도록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만일 누가 노모스(법)를 노미모스(합법적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만」.

바울이 토라로 가르치는 일 자체를 위험하다고 보았다면, 바로 이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율법은 선하며, 잘못은 율법을 깨닫지도 못한 채 다룬 교사들에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계명

바울은 디도에게도 같은 경고를 하는데, 이번에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더 분명하게 짚습니다.

디도서 1:14 알레데이아(진리)에서 돌아선 사람들의 계명들과 유대적인 신화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하라.

위험은 「유대적인 신화들」과 「사람들의 계명들」, 곧 하나님의 말씀 위에 덧씌운 사람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알레데이아(진리)에서 돌아선」 이들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토라가 진리라고 하는 시편 119:142 옆에 놓아 보십시오.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신화와 사람들의 계명은 토라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그것들은 사람을 진리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경고하는 것은, 예슈아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다고 하시며 경고하신 바로 그것입니다(마가복음 7:8-9). 1권 「거룩한 성전」은 우리가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 안경을 다루면서 이 경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 토라를 복음에서 갈라놓는다던 두 구절은 사실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바르게 다룬다는 것은 말씀 전체를 곧게 자르는 것이지, 그 일부를 잘라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울이 경고한 신화는 사람들을 진리에서 떼어 놓던 사람들의 계명이었지, 성경이 진리라고 부르는 토라가 아니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가를 바꾸지 않습니다. 1장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여전히 믿음을 통해 은혜로 됩니다. 그러나 의롭게 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읽는가는 달라집니다. 「진리의 말씀」에서 토라를 잘라 내면, 신자는 바울이 「디카이오쉬네(의로움) 안에서의 파이데이아(훈육/교육)에 유익하니」라고 말한 바로 그 기록들을 잃게 됩니다(디모데후서 3:16).

이제 1부의 마지막 주장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뜻밖입니다. 이번에는 주장이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늘의 시민이고, 하늘의 시민은 하늘의 법을 따라 산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곧바로 당연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늘의 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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