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HOMES예슈아 직역성경

그분이 자신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ἐγώ εἰμι
EGŌ EIMI · 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 · 요한복음이 일곱 번 받아 적은 그분의 자기 선언

단체

우리가 믿는 것

길게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성경의 본문으로 밝힙니다.

하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는 성경 신·구약 전권이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말씀이며, 믿음과 삶의 마지막 기준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사람을 실제로 살린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이 단체가 존재하는 이유의 전부입니다.

모든 그라페(기록된-성경)는 데오프뉴스토스(하나님의 호흡으로 된)이며, 가르침과 꾸짖음과 에파노르도신(교정/바로잡음)과 디카이오쉬네(의로움) 안에서의 파이데이아(훈육/교육)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르티오스(온전히 갖추어진)하게 되고 모든 선한 행위를 위해 에크세르티스메노스(완전히 준비된) 되게 하려 함이다.

디모데후서 3:16–17 · 예슈아 직역성경

구약이 먼저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삽니다.

이는 아담(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아담(사람)이 사는 것을 너에게 알리려 하심이었다.

신명기 8:3 · 예슈아 직역성경

그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내 말도 그러하다. 그것이 내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을 형통하게 할 것이다.

이사야 55:11 · 예슈아 직역성경

신약은 같은 것을 더 날카롭게 말합니다. 말씀은 사람이 다루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판별하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로고스(말씀)는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어떤 양날 검보다도 예리하여, 프쉬케(혼)와 프뉴마(영)의 나뉨과 관절과 골수를 뚫고 들어가며,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의 엔뒤메시스(생각)들과 엔노이아(태도)들을 판별한다.

히브리서 4:12 · 예슈아 직역성경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일도 이 말씀을 통해 일어나며, 혼이 구원받는 일도 이 말씀을 통해 일어납니다.

썩는 씨앗이 아니라 썩지 않는 것으로, 살아 있고 영원히 머무는 하나님의 로고스(말씀)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베드로전서 1:23 · 예슈아 직역성경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벗어 버리고, 너희 프쉬카이(혼들)를 구원할 수 있는 심어진 로고스(말씀)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야고보서 1:21 · 예슈아 직역성경

그리고 그 성경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그분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한 분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너희가 그라페(기록된-성경)들을 탐구하니, 이는 그 안에서 영원한 조에(생명)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다.

요한복음 5:39 · 예슈아 직역성경

둘. 한 분 하나님 —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영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한 분이 성경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영으로 자신을 알리셨음을 믿습니다. 세 이름이 세 하나님을 뜻하지 않으며, 한 분이심이 세 이름을 지우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처음부터 지켜 온 신앙이며 우리도 그 신앙 안에 서 있습니다.

예슈아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쓰신 표현이 그러했습니다 — 「이름들」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에트네(민족들/이방인들)를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하기오스(거룩한) 프뉴마(영)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19 · 예슈아 직역성경

주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하리스(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기오(거룩한) 프뉴마(영)의 코이노니아(교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아멘.

고린도후서 13:14 · 예슈아 직역성경

셋. 예슈아께서 「나는 ~이다」라 하신 일곱 자리

우리가 믿는 것의 한복판에는 교리가 아니라 한 분의 자기 선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슈아께서 자신을 두고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자리를 일곱 번 받아 적었습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입니다. 그것은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실 때 쓰신 그 어법과 겹칩니다.

ἐγώ
에고 · egō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 — 붙이면 「다름 아닌 내가」
εἰμί
에이미 · eimi
~이다 · 있다
있음 그 자체를 가리키는 동사

일곱 자리를 그대로 옮깁니다. 해설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이 문장들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문장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는 문장입니다.

하나 — 나는 생명의 빵이다

예슈아(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조에(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6:35 · 예슈아 직역성경

둘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슈아(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하지 않고 조에(생명)의 빛을 가질 것이다"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8:12 · 예슈아 직역성경

셋 — 나는 문이다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며, 들어가고 나가며 꼴을 찾을 것이다.

요한복음 10:9 · 예슈아 직역성경

넷 —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프쉬케(혼)를 내려놓는다.

요한복음 10:11 · 예슈아 직역성경

다섯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예슈아(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로 그 아나스타시스(부활)요 그 조에(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을지라도 살 것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1:25–26 · 예슈아 직역성경

여섯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고 알레데이아(진리)요 조에(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

요한복음 14:6 · 예슈아 직역성경

일곱 —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한복음 15:1 · 예슈아 직역성경
일곱 자리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나는 이런 것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습니다.
전부 「나는 ~이다」입니다.

넷.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예슈아께서 몸으로 다시 오심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곁가지가 아니라 그 방향 자체입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던 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들은 말이 그러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올라가신 이 예슈아(예수)는, 하늘로 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 방식 그대로 오실 것이다"라고 했다.

사도행전 1:11 · 예슈아 직역성경

그래서 성도의 시민권은 여기가 아니라 하늘에 있고, 그 하늘로부터 우리는 그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의 낮은 몸이 그분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태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폴리튜마(시민권)는 하늘들 안에 있기 때문이니, 그 하늘들로부터 우리는 구원자이신 주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그분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에네르게이아(역사하심)를 따라, 우리의 천함의 몸을 자신의 영광의 몸과 같은 형태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빌립보서 3:20–21 · 예슈아 직역성경

우리는 복된 엘피스(소망), 곧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이고 구원자이신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니,

디도서 2:13 · 예슈아 직역성경

다섯. 첫째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신앙을 분명히 천명합니다. 메시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과 함께 이끌리어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는 주 자신이 켈류스마티(명령의-외침)와 아르항겔루(대천사)의 포네(음성)와 하나님의 살핑기(나팔)가 울리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고, 메시아(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우리, 곧 남아 있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 동시에 구름들 안에서 이끌리어 공중에서 주를 만나러 갈 것이니,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 예슈아 직역성경

순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에 — 이는 나팔이 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죽은 자들이 썩지 않게 일으켜지고, 우리도 변화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5:52 · 예슈아 직역성경

그리고 그 부활에 참여하는 이에게 요한계시록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죽음이 그들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는 복이 있고 거룩하니; 둘째 죽음이 이들에 대해 엑수시아(권세)가 없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과 메시아(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그분과 함께 천 년을 다스릴 것이다.

요한계시록 20:6 · 예슈아 직역성경

믿고 그날에 이르는 것 — 이것이 우리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값 없이 내어 놓는 까닭입니다. 그분 자신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뒤에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물음이 한 사람에게 가 닿게 하려는 일입니다.

여섯.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이겨 나갑니다

이 믿음은 사람을 무겁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쁘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아직 그분을 눈으로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희가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지금 보지 못하면서도 믿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차라(기쁨)로 기뻐하니,

너희 믿음의 결과인 프쉬카이(혼들)의 구원을 받고 있다.

베드로전서 1:8–9 · 예슈아 직역성경

세상에는 아픔과 걱정과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없는 척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이겨 내는 힘이 이 기쁨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견디는 것과 기뻐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일이 아닙니다. 보지 못하면서도 사랑하고, 보지 못하면서도 믿는 자리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옵니다. 그 기쁨이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일곱. 그러므로 서로를 떠받칩니다

이 기쁨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은 성도들 사이의 우애를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ία) — 한 아버지에게서 난 자들 사이의 사랑 — 이라 부르고, 그것을 계속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필라델피아(형제 사랑)가 계속되도록 하라.

히브리서 13:1 · 예슈아 직역성경

프뉴마(영)를 통해 알레데이아(진리)에 대한 순종으로 너희 프쉬카이(혼들)를 정결하게 하였으니, 위선 없는 형제 사랑을 위해, 깨끗한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에서 서로를 열심히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2 · 예슈아 직역성경

그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무게를 대신 지는 일입니다.

서로의 무거운 짐을 지라. 그러면 메시아(그리스도)의 노모스(법)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 6:2 · 예슈아 직역성경

그리고 그분은 이것을 새 계명이라 부르시며, 세상이 우리를 알아보는 표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곧 서로 아가페(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아가페(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아가페(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아가페(사랑)하면 모든 이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들임을 알 것이다.

요한복음 13:34–35 · 예슈아 직역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이 서로를 떠받치는 자리가 실제로 서기를 바랍니다. 누가 오지 않으면 알아차리는 자리,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자리, 아픈 사람의 이름이 한 주 내내 기억되는 자리. YLV 성경공부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덧붙이는 말

우리는 교단이 아니며, 이 글로 다른 교회의 신앙고백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적은 것은 이 단체가 무엇을 붙들고 일하는지를 밝힌 것입니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연락처로 물어보십시오. 성실히 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