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19장 / 전체 41장
그분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부터 16절까지는 친족 관계의 문제를 매듭지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고, 동일한 살과 피에 참여하셨으며, 아브라함의 씨를 도우러 오셨습니다. 이어지는 절은 그분이 무엇이 되셨는가에서 그 일이 그분께 무엇을 요구했는가로 넘어가며, 뜻밖의 낱말을 씁니다.
히브리서 2:17-18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께 관한 일들에서 긍휼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들을 속죄하시려고,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실 의무가 있었다. 그분 자신이 시험받으실 때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이들을 도우실 수 있다.
「의무가 있었다」는 말은 그냥 읽고 지나치기 쉽지만, 히브리서를 고엘의 율법과 가장 단단히 묶어 주는 낱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빚의 세계에서 온 단어
헬라어 동사는 오페일렌으로, 오페일로에서 유래했습니다. 보통 헬라어에서 이 낱말은 거래의 말로, 빚지다, 빚진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은 이 낱말을 두 뜻으로 다 씁니다. 갚아야 할 돈에도, 해내야 할 의무에도 씁니다. 두 가지 의미 모두 복음서에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8:28 그런데 그 둘로스(종/하인)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둘로스(종/하인)를 만나 붙들어 목을 조르며 말했다. ‘빚진 것을 갚아라.’
여기서는 돈으로 진 빚입니다.
요한복음 13:14 그러므로 나 곧 주님이고 선생님이 너희 발을 씻겼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여기서는 의무이며, 「씻겨 주어야 한다」의 「~해야 한다」 뒤에 있는 말도 같은 동사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가 그분께 “의무가 있었다”고 말할 때, 부드러운 말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갚아야 할 빚, 반드시 해내야 할 의무의 말을 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이 형제들과 같아지신 일을, 베풀 수도 있고 거둘 수도 있는 친절로 그리지 않고 의무로 적습니다.
계속 서 있던 의무
시제가 여기에 무언가를 더합니다. 오페일렌은 미완료형입니다. 헬라어 미완료형은 한순간이 아니라 과거에 이어지던 일, 계속된 상태를 그립니다. 이 말은 그분이 어느 한 시점에 마음을 정하셨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의무가 서 있었다고, 곧 그분 위에 놓여 다 갚아질 때까지 계속 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 의무를 지셨습니까? 이 절은 그것을 한 구절로 말합니다. 카타 판타 토이스 아델포이스 호모이오테나이, 곧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실” 의무입니다. 어떤 면에서만, 또는 겉모습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입니다. 히브리서 2장 16절은 이 형제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요, 살과 피를 지닌 자들입니다. 모든 면에서 그들과 같아진다는 것은 그들의 처지 전부를 함께 진다는 뜻입니다.
고엘의 언어
율법에서 구속은 낯선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원해서 베푸는 호의가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지워지는 의무입니다. 레위기 25장 25절은 구속자가 원하면 와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와서 … 무른다”고 말합니다. 룻기에서는 그 의무가 차례대로 내려갑니다. “당신 말고는 무를 사람이 없고, 그다음이 나요”(룻 4:4). 보아스는 맹세로 자신을 거기에 묶었으며, 더 가까운 친족이 뒤로 물러났을 때 그 의무는 보아스에게로 와서 그가 그것을 수행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와 똑같은 부류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2장 17절의 “의무가 있었다”는 말은 고엘 율법의 말과 꼭 겹칩니다. 구속은 가족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이 울타리 너머로 건네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친족이 져야 할 빚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이 이미 형제인 상태에서 구속할 의무를 지셨다고 말하지 않고, 형제들과 같이 될 의무를 지셨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고는 아무도 구속할 수 없다고 말하며, 히브리서는 그분이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기에 그 자격을 가지게 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 요구를 채우신 길을 빚의 낱말로 적습니다. 오페일렌, 곧 그분께 의무가 있었습니다.
율법이 셰에르 바사르, 곧 같은 살에서 난 살붙이로 요구했던 것을 히브리서는 이미 사르크스와 피, 살과 피로 기록했습니다. 이제 히브리서는 이것이 그분께서 지신 빚이었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의무가 존재한 이유
그 구절은 의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 의무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말하며, 「~이 되어 … 하시려고」라는 목적의 말로 두 부분을 잇습니다. 그분이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신 것은 그들의 긍휼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절은 같은 고리를 반대쪽에서 말합니다. “그분 자신이 시험받으실 때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이들을 도우실 수 있다.”
거기 나오는 「할 수 있다」는 다시 고엘의 둘째 조건, 즉 가까이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보여줍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이 되셨고, 그리하여 그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왜 그것이 의무인가
히브리서는 누가 이 의무를 그분께 지웠는지 말하지 않으며, 히브리서가 하는 말에 무엇을 덧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히브리서가 분명히 말하는 것은, 그분이 하러 오신 일을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형제들과 같아지는 것이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이었다는 점입니다. 백성을 위한 긍휼하고 신실한 대제사장, 그들의 죄를 위한 속죄, 그 일에는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고엘의 율법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친족이 아닌 사람은 아무리 원해도 구속할 수 없습니다. 그 요구 조건은 누군가의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구속 그 자체의 본성에 놓여 있습니다. 살과 피의 가정 바깥에 서 있던 분은 바깥에서 그 가정을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분께 형제들과 같아지실 의무가 있었다고 적고, 세 절 앞에서 이미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동일한 살과 피에 참여하셨습니다.
친족 관계에서 값으로
2장 17절로 히브리서는 우리를 고엘의 첫째 조건에서 둘째 조건 쪽으로 데려왔습니다. 친족 문제는 매듭지어졌고, 의무도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구속할 의무가 곧 구속인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에서 고엘은 값을 치러야 했고, 룻기에서 보아스는 값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분께 그들의 죄들을 속죄하시려고 형제들과 같아지실 의무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값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도가 그것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나그네로 흩어진 믿는 이들에게 편지하면서, 베드로는 그들이 무엇으로 구속되었는지 밝히는데, 먼저 무엇으로 구속되지 않았는지부터 말합니다. 곧 은도 아니요 금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