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서 자유? · 36장 / 전체 41장
너희는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장은 새김질하는 짐승,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 먹어서는 안 되는 새, 그리고 떼 지어 우글거리는 것들을 길게 늘어놓은 목록입니다. 많은 독자가 이 대목을 대충 훑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 장은 목록의 한 항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유 하나로 끝납니다.
레위기 11:44-45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땅에서 기어 다니는 어떤 기는 것으로도 너희 자신(네페쉬)을 더럽히면 안 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린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라는 명령은 두 절 안에서 두 번 나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이나 제사법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음식 규례를 마무리합니다.
여기 쓰인 낱말은 카도쉬(거룩한)입니다. 거룩하다, 구별되었다, 흔히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목록은 그 이유로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합니다.
그분의 것으로 구별되다
레위기는 같은 말씀으로 거듭 돌아옵니다.
레위기 19: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는 거룩해야 한다. 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레위기 20:7-8 너희는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규례(후카)를 지켜 그것들을 행하여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다.
20장 끝 무렵에는 음식 규례와 거룩한 백성이 한 단락 안에 함께 묶여 있습니다.
레위기 20:22-26 너희는 내 모든 규례(후카)와 내 모든 판결(미쉬파트)을 지켜 그것들을 행하여라. 그래야 내가 너희를 데려가 살게 하는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의 규례(후카)를 따라 걸으면 안 된다.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여 내가 그들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 너희가 그들의 땅(아다마)을 차지할 것이며,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어 차지하게 할 것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나는 너희를 뭇 백성에게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부정한 새와 정결한 새를 구별하고, 내가 부정하다고 너희에게 구별해 준 짐승이나 새나 땅(아다마)에서 기는 어떤 것으로도 너희 자신(네페쉬)을 혐오스럽게 만들면 안 된다. 너희는 내게 거룩해야 한다.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며, 내가 너희를 뭇 백성에게서 구별하여 내 것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나는 너희를 뭇 백성에게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가 나옵니다. 이어서 “너희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 구별하고”가 나옵니다. 마지막은 “내가 너희를 뭇 백성에게서 구별하여 내 것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셨고, 그 백성은 이어서 식탁에서 구별했습니다. 식탁은 거룩한 백성이 구별된 삶을 몸에 익히는 자리였습니다.
눈여겨볼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짐승이나 새나 … 어떤 것으로도 너희 자신(네페쉬)을 혐오스럽게 만들면 안 된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네페쉬, 곧 살아 있는 사람 전체에 닿습니다. 그래서 토라는 식탁을 결코 작은 일로 다루지 않습니다.
민족들 가운데서 나온 신자들에게 편지하는 베드로도 같은 말씀을 이어받습니다.
베드로전서 1:14-16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때의 에피뒤미아이(정욕·소욕·강한 욕구들)에 따라 형태를 취하지 말며,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이들이 되라. “거룩하라, 이는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이 처음 기록된 곳은 음식 규례가 끝나는 레위기 11장 44-45절입니다. “코이노스(공통적인, 세상적인)하거나 아카타르토스(부정한, 불결한)한 것은 어떤 것도 내 입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행 11:8)라고 말했던 바로 그 사람이 음식 장의 끝 말씀을 교회에 인용하고, 거기에 “모든 행실에서”를 덧붙입니다. 그는 민족들을 향한 부르심을 낮추기는커녕 그 부르심을 그대로 그들에게 건넵니다.
바로 앞 절도 중요합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때의 에피뒤미아이(정욕·소욕·강한 욕구들)에 따라 형태를 취하지 말며.” 몇 줄 뒤에 베드로는 그들이 “너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벧전 1:18) 구속받았다고 씁니다. 그는 그들을 예전의 무지에서 불러내어, 하나님께서 레위기 11장 끝에서 당신의 백성에게 처음 선언하신 거룩함으로 이끕니다.
보좌 앞에서 세 번
이사야가 주님을 뵈었을 때, 스랍들은 서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6:3 그리고 이것이 저것을 향해 외치며 말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째바오트)의 여호와! 온 땅이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하다.
요한이 보좌를 보았을 때, 네 생물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주위와 안에 눈들이 가득하며, 낮과 밤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계셨고 계시고 오실 분이시라”고 했다.
두 환상 모두 외침은 같고, 세 번 거듭됩니다. 첫째도 거룩, 둘째도 거룩, 셋째도 거룩입니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신자가 사는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이와 평화를, 또 거룩함을 추구하라, 그것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1 불의를 행하는 이는 계속 불의를 행하게 하고, 더러운 이는 계속 더럽게 하며, 의로운 이는 계속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행하게 하고, 거룩한 이는 계속 거룩하게 하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4:12 여기에 거룩한 이들의 휘포모네(인내)가 있으니 —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슈아(예수)의 피스티스(믿음)를 지키는 이들이다.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도 거룩한 이는 “계속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이들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슈아(예수)의 피스티스(믿음)를 지키는 이들”로 그려집니다. 이 둘이 함께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신자들을 하기오이(거룩한 이들), 곧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한 단계 높은 신자가 아닙니다. 바울은 온갖 분열과 술 취함이 있던 고린도의 온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들을 “부름받은 하기오이(거룩한 자들)”(고전 1:2)라고 불렀습니다. 성도는 모든 신자가 부름받은 이름이며, 모든 신자가 되어 가도록 부름받은 모습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거룩해지는가
여기서는 아주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음식 규례를 지켜서 스스로 거룩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것으로 구원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예슈아의 피로 깨끗해집니다.
요한일서 1:7 · 1:9 그러나 그분이 빛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안에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한다면, 우리는 서로 코이노니아(사귐/교제)가 있고, 그분의 아들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정결하게 한다. ⋯ 우리 죄들을 고백하면, 그분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어 우리 죄들을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신다.
그는 예슈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에베소서 5:18 또한 포도주로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함이 있다. 오히려 프뉴마(영) 안에서 충만하여지라.
이 절은 두 가지를 맞세웁니다. 포도주에 취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34장에서 보았듯이,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에 가까이 나아가기 전에 포도주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의 몇몇 사람은 취한 채 주의 만찬에 왔습니다. 신자는 그렇게 오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나아옵니다. 그리고 성령은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5 그러나 프뉴마(영)의 카르포스(열매)는 아가페(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친절함, 선함, 믿음, 온유함, 절제이니, 이러한 것들에 대항하는 노모스(법)는 없다. 메시아(그리스도)에게 속한 이들은 사르크스(육체)를 그 파데마타(고난들)와 에피뒤미아이스(정욕들·소욕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가 프뉴마(영)로 산다면 프뉴마(영)로 또한 걸어가자.
그런 삶의 열매는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몸입니다.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긍휼들로 여러분을 권한다. 여러분의 소마(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기오스(거룩한) 자오(살다) 뒤시아(희생제사)로 드려라. 이것이 여러분의 로기케(이성적/합당한) 라트레이아(예배/섬김)이다. 이 아이온(시대)에 동화되지 말고 오히려 여러분의 누스(지성, 영적영역)의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시고 온전하신 텔레마(뜻)가 무엇인지 분별하라.
바울은 제단 위의 죽은 짐승 대신 살아 있는 몸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말에서 베드로와 같은 동사를 씁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두 곳에만 나오는 쉬스케마티조라는 동사입니다. “이 아이온(시대)에 동화되지 말고.” 한편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이제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 줍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직이고,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불러내신 분의 탁월함들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베드로가 그들을 “거룩한 나라”라고 부를 때, 그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출 19:6).
그러니 순서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예슈아의 피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며, 그 삶의 열매로 계명 안에서 걸어갑니다. 은혜가 먼저 오고, 거룩함은 그 은혜가 맺는 삶입니다.
어두운 얼굴이 아니라 열심으로
어떤 이들은 이 모든 말을 듣고 규칙과 걱정뿐인 음울한 삶을 떠올립니다. 그 대신 결혼식 날 아침의 신부를 그려 보십시오. 신부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입니다. 누가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 아니라, 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그 어느 것도 짐이 아닙니다.
거룩함으로 부르는 신약성경의 마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디도서 2:14 그분께서 모든 아노미아(토라없음)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선한 행위들에 열심인 자기만의 소유된 백성을 정결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로마서 12:11 열심에서 게으르지 말고 프뉴마(영)에서 뜨겁게 하여 주를 섬겨라.
요한계시록 3:19 내가 필레오(사랑)하는 이는 누구든지 책망하고 훈육한다;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메타노에손(회개하라 / 영적영역).
이 구절들은 “모든 아노미아(토라없음)에서” 구속받아 “선한 행위들에 열심인 자기만의 소유된 백성”으로 정결하게 된 백성, “프뉴마(영)에서 뜨겁게” 섬기며 “열심을 내고 메타노에손(회개하라 / 영적영역)” 하라는 부름을 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꾸짖기만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더 높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느헤미야 때 백성이 토라 낭독을 듣고 울자, 그들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그리고 요한은 그 삶을 붙드는 소망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3:3 그분을 향해 이 엘피스(소망)를 가진 이마다 그분이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순결하게 한다.
음식 규례의 목적, 정결 규례의 목적, 그리고 3부 전체의 목적은 이 한 낱말입니다. 거룩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물음 하나가 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도록 부름받았고, 그들을 훈련하려고 거룩한 식탁과 거룩한 말씀이 주어졌다면, 어째서 교회는 같은 성경을 그토록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읽어 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