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서 자유? · 8장 / 전체 41장
디모데전서 1장에 나오는 바울의 목록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구절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율법이 폐지되었거나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구절은 그보다 한결 부드럽게 말하며,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습니다. 율법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고, 율법이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노모스(법)는 의로운 자를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니라 아노모이스(토라없는 이들)와 … 위한 것이다(디모데전서 1:9).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다.”
논리가 빈틈없어 보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의롭다 부르십니다. 바울은 율법이 의로운 자를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니라고 하니, 율법은 악하고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나에게는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는 길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 보면 됩니다. 바울의 문장을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8-11 그러나 만일 누가 노모스(법)를 노미모스(합법적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것 곧 노모스(법)는 의로운 자를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니라 아노모이스(토라없는 이들)와 불순종하는 이들과 경건하지 않은 이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이들과 세속적인 이들과 아버지를 죽인 이들과 어머니를 죽인 이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이들과 아르세노코이타이스(남자와 동침하는 이들)와 인신매매하는 이들과 거짓말하는 이들과 위증하는 이들과 그 밖에 건전한 가르침에 반하는 것들을 위한 것이다. 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 것이니, 내가 이것을 맡겼다.
목록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의로운 자를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니라」에서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곧바로 율법이 누구를 위해 놓여졌는지 이어서 말하며 목록을 하나 제시합니다. 그 목록의 가운데 부분은 이러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이들과 어머니를 죽인 이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이들과 아르세노코이타이스(남자와 동침하는 이들)」 「인신매매하는 이들」 「거짓말하는 이들과 위증하는 이들」.
이 목록을 십계명의 후반부와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출애굽기 20:12-16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주는 흙(아다마) 위에서 네 날이 길어질 것이다. 너는 살인하지 마라. 너는 간음하지 마라. 너는 도둑질하지 마라. 너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인이 되지 마라.
순서가 똑같습니다.
| 바울의 목록 (디모데전서 1:9-10) | 계명 (출애굽기 20장) |
|---|---|
| 아버지를 죽인 이들과 어머니를 죽인 이들 |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
| 살인자들 | 「너는 살인하지 마라」 |
| 음행하는 이들과 아르세노코이타이스(남자와 동침하는 이들) | 「너는 간음하지 마라」 |
| 인신매매하는 이들 | 「너는 도둑질하지 마라」 |
| 거짓말하는 이들과 위증하는 이들 | 「너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인이 되지 마라」 |
인신매매하는 이들은 아무렇게나 끼워 넣은 항목이 아닙니다. 토라는 사람을 훔치는 일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죄로 규정합니다. 「사람을 훔쳐서 팔거나 …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출애굽기 21:16). 여기서 「사람」은 히브리어 이쉬입니다.
율법을 제쳐 두려고 인용하는 바로 그 대목에서, 바울은 십계명으로 율법을 정의합니다. 또한 그 목록의 앞뒤에서 율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밝힙니다. 목록 앞에서는 노모스(법)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만」이라고 말합니다. 목록 뒤에서는 이 모든 것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 것이니, 내가 이것을 맡겼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과 거리를 두지 않습니다. 율법을 선하다고 부르며, 자신이 전하도록 받은 복음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지키고 있는 제한 속도
시속 55마일 표지판이 서 있는 2장의 고속도로로 다시 가 봅시다. 이번에는 당신이 시속 55마일로 달리고 있습니다. 길가에 순찰차가 서 있지만, 당신이 지나가도 경찰관은 고개조차 들지 않습니다.
참된 의미에서 그 법은 당신을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닙니다. 시속 90마일로 달리는 운전자를 겨냥해 놓여진 것이며,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추궁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한 속도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거나, 이제 마음대로 달려도 좋다고 결론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표지판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당신이 그 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법이 당신을 거슬러 할 말이 없을 뿐입니다.
바울이 한 말이 바로 그 뜻입니다. 「놓여진」으로 옮긴 말은 케이타이(놓여 있다, 세워져 있다)입니다. 「의로운 자를 위해 놓여진 것이 아니라」라는 말은 의인에게 율법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이 그것을 어기는 자들을 겨냥해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너는 살인하지 마라」라는 계명은 살인자를 거슬러 서 있으며, 살인하지 않는 사람은 고발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율법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이 그를 고발할 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같은 말을 두 번 더 합니다
바울은 통치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이치로 말합니다. 「통치자들은 선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악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로마서 13:3). 이 말이 선량한 시민을 나라의 법에서 해방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칼끝이 그를 향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권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여전히 칼을 차고 있지만, 오직 「악을 행하는 자에게 오르게(진노) 안에서 복수하는」 이로서만 그러합니다(로마서 13:4). 10장에서 이 두 구절 전체를 읽을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도 다시 같은 이치로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그러나 프뉴마(영)의 카르포스(열매)는 아가페(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친절함, 선함, 믿음, 온유함, 절제이니, 이러한 것들에 대항하는 노모스(법)는 없다.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거슬러 놓여진 법은 없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계명을 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 안에서 걷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거슬러 할 말이 없으며, 디모데전서 1장 9절이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더 깊은 질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바울은 누구를 의인이라 부릅니까?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 문제에 답을 내렸습니다.
로마서 2:13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은 노모스(법)를 듣는 자들이 아니라 노모스(법)를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의인이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의인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 되어 문장 자체가 무너져 내립니다. 의인은 바로 율법이 말하는 바를 따라 걷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 그를 고발할 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토라가 놓여진 이유
바울의 목록에서 첫 번째 낱말은 「아노모이스(토라없는 이들)」입니다. 헬라어 기본형은 아노모스로, 노모스가 없는 자, 곧 토라가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그 명사형인 아노미아로 죄를 정의합니다.
요한일서 3:4 죄를 행하는 이마다 또한 아노미아(토라없음)를 행하니; 죄는 아노미아(토라없음)이다.
「죄는 아노미아(토라없음)이다.」 불의와 법 없음과 죄는 모두 토라를 거스르는 반역이며, 그 모든 것의 뿌리는 토라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아노미아입니다. 토라가 주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토라는 아노모이스(토라없는 이들)를 겨냥해 놓여져서, 그들이 하는 일을 이름 지어 부르고 그것을 거슬러 섭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은 믿는 사람에게서 토라를 거두어 가기는커녕, 애초에 토라가 왜 놓여졌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디모데에게 남긴 바울의 마지막 말
두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시 글을 썼습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그라페(기록된-성경)는 데오프뉴스토스(하나님의 호흡으로 된)이며, 가르침과 꾸짖음과 에파노르도신(교정/바로잡음)과 디카이오쉬네(의로움) 안에서의 파이데이아(훈육/교육)에 유익하니,
그 앞 구절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알았던 글, 곧 이스라엘의 성경인 「히에라 그라마타(거룩한 문서들/성경)」를 가리킵니다(디모데후서 3:15). 바울은 그 글들이 믿는 사람을 의로움 안에서 훈련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의인을 거슬러 놓여진 것이 아닙니다. 토라가 없는 자들을 거슬러 놓여졌으며, 의롭게 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훈련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신자는 계명들 밖에 서 있지 않습니다. 계명들 안에 서 있으며, 계명들은 그를 거슬러 할 말이 없습니다.
음식에 관한 구절들도 이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많은 영어 성경이 “이러므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 하셨다”라고 찍어 내는 마가복음 7장, 이어서 베드로의 환상, 그리고 로마서 14장입니다. 이 구절들은 한 장보다 더 넓은 자리가 필요하므로, 이 책의 3부에서 그 자리를 내어 다룹니다.
그 구절들에 앞서 한 가지 반론이 먼저 나옵니다. 토라를 지키려면 토라 전체를 지켜야 한다는 반론입니다. 「토라 전체」가 무슨 뜻인지는 토라가 직접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