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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서 자유? · 9장 / 전체 41장

제사와 할례, 그리고 각각의 자리

다음에 살펴볼 주장은 성경 구절이 아니라 반론이며, 대화를 단번에 끝내려고 던지는 말입니다.

“토라를 지키려거든 제사도 드리고, 할례도 행하고, 사람도 돌로 쳐야 하지 않습니까? 입맛대로 골라서 지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타당합니다. 안식일과 음식 규례는 지키면서 제단과 법정의 규례는 슬그머니 모른 체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내어 자기만의 종교를 만든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다룰 권리는 없습니다.

“입맛대로 골라서 지킬 수 없다”라는 말은 맞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토라가 무엇을, 어디에서, 누구의 손으로 행하라고 정해 두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사와 할례와 형벌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이며, 토라는 각각에 고유한 규례를 줍니다. 이 장에서는 앞의 두 가지를 다루고, 다음 장에서는 세 번째를 다루겠습니다.

집안의 규칙

냉장고 문에 집안 규칙을 붙여 둔 가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자기가 먹은 접시는 스스로 치웁니다. 카펫 위에는 신발을 신고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규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비큐 그릴에 불을 붙이는 일은 오직 아버지만, 그것도 뒷마당에서만 합니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집안 규칙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키기로 결심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릴에 불을 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릴에 관한 규칙에는 그것을 행할 사람과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여덟 살 아이가 그 규칙을 지키는 길은 성냥에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 가족이 뒷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한다면 아무도 그릴에 불을 붙이지 않을 텐데, 이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모든 규칙을 다 지킨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 규칙을 그 규칙이 정해 놓은 방식대로 지킨다는 뜻입니다.

제사에는 정해진 주소가 있습니다

토라는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리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2:5-6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 곧 그분의 처소를 너희가 찾아 그리로 나아가라.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제물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과 너희 자원제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그리로 가져오라.

예물은 오직 한 곳,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 택하실 그곳」으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몇 구절 뒤에서 모세는 그 밖의 길을 금합니다.

신명기 12:13-14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보는 아무 곳에서나 네 번제를 드리지 말라. 오직 여호와께서 네 지파 중 하나에서 택하실 그곳에서 네 번제를 드리고, 거기서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행하라.

번제는 자기 집 뒷마당이나 거룩해 보이는 아무 언덕에서나 드릴 수 없었고, 오직 「여호와께서 네 지파 중 하나에서 택하실 그곳에서」만 드려야 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집이었습니다. 유월절 제물조차도 「네 성문 어디에서나」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신명기 16:5).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무너졌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곳에는 제단도 없고, 거기서 섬기는 제사장 직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토라를 온전히 다 지키고 싶어 하는 신자에게 토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다른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성전이 없으면 제사도 없습니다. 이것이 토라가 직접 정해 놓은 규례입니다. 오늘날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토라를 무시하는 일이 아니라 토라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

히브리서는 두 번째 이유를 들려줍니다.

히브리서 10:11-14 또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서서 레이투르기아(제사장-섬김)를 행하며 죄를 결코 제거할 수 없는 동일한 제사들을 반복해서 드리지만, 이분은 죄들을 위한 단 하나의 제사를 드리신 후 영원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시어, 그 이후로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의 발의 발판이 되기까지 기다리신다. 그분은 단 하나의 제물로 거룩하게 됨을 받는 이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

제사장들이 날마다 드리는 제사는 「죄를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제사이지만, 메시아께서 드리신 단 하나의 제물은 「거룩하게 됨을 받는 이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한 히브리서는 실제로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7:12 제사장직이 바뀌면 반드시 노모스(법)의 변경도 생긴다.

2권 「재판정에 선 바울」에서 살펴보았듯이, 히브리서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제사장 직분과 그 직분에 속한 제사들입니다. 히브리서는 그 제사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9:9-10 이것은 현재의 카이로스(정해진-때)를 위한 비유이니, 이 카이로스(정해진-때)에 도론(예물/봉헌물)들과 제사들이 드려지나, 섬기는 이를 양심에 관해 완전하게 하지 못한다. 오직 음식들과 음료들과 여러 씻음들과 사르크스(육체)의 디카이오마(의로운-행위 / 규례를 행함)들로만, 개혁의 카이로스(정해진-때)까지 부과되었다.

이것들은 「섬기는 이를 양심에 관해 완전하게 하지 못」하는 예물과 제사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음식과 음료와 여러 씻음은 그 예물과 제사에 따르던 것들로서, 성소 봉사와 맞물려 있는 「사르크스(육체)의 디카이오마(의로운-행위 / 규례를 행함)들」입니다. 히브리서는 제사장 직분과 그 예물들을 말하고 있지, 계명 전체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식일이 바뀌었다거나 「너는 도둑질하지 마라」라는 계명이 바뀌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성전이 아직 서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8:4 그분이 땅에 계셨다면 제사장도 되지 못하셨을 것이니, 노모스(법)에 따라 도론(예물/봉헌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사는 현재 시제로 쓰였습니다. 「노모스(법)에 따라 도론(예물/봉헌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제사장들은 섬기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누구에게도 성전을 헐어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전과 그 제사들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고, 그것들이 언제나 가리키고 있던 바로 그분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할례와 율법 전체

목록의 두 번째 항목은 할례이며, 이를 반박하려고 인용하는 구절은 갈라디아서에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5:2-4 보라,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하니,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메시아(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 내가 또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니, 그는 노모스(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 노모스(법) 안에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메시아(그리스도)에게서 단절되었고 하리스(은혜)에서 떨어진 것이다.

바울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니, 그는 노모스(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주장은 이 말씀을 토라를 아예 지키지 말라는 경고로 읽습니다. 일단 지키기 시작하면 전부를 다 지켜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바울이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모스(법) 안에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입니다. 바울은 토라를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토라 전체를 다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할례를 통해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그 길을 스스로 택했으니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4절은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밝혀 줍니다. 그런 사람은 「메시아(그리스도)에게서 단절되었고」 「하리스(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사도들도 민족들의 할례 문제에 똑같이 답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어떤 이들은 「모세의 에토스(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우겼습니다(사도행전 15:1). 공의회의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바울이 경고한 것은 의롭게 되려고 받는 할례였습니다.

바울은 입맛대로 고르지 않았습니다

만일 바울이 할례 자체를 반대했다면, 가장 가까운 두 동역자에게 행한 그의 처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3 · 갈라디아서 2:3 바울이 이 사람을 함께 데려가기를 원하여 그 지방에 있는 유대인들로 인해 그에게 할례를 베풀었으니, 이는 모두가 그 아버지가 그리스인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조차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으니,

바울은 어머니가 유대인인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했고, 헬라인인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 아니었으며, 바울이 입맛대로 골라서 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에게 토라와 공의회의 결정이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제자리에 놓인 각 계명

이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반론은 무너집니다. 제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곳에만 속하며, 메시아께서는 「죄들을 위한 단 하나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히브리서 10:12). 할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갈라디아서 5장 3절은 할례를 통해 의롭게 되려는 이들을 겨냥한 말씀입니다. 성전이 없을 때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토라를 지키는 일이며,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방인 신자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안식일이나 음식 규례나 십계명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 계명들은 제단이나 제사장 직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늘날 신자가 이 계명들을 지키는 일을 막는 토라의 규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론에는 세 번째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돌로 쳐야 하지 않습니까?” 이 항목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토라는 과연 누구에게 형벌을 집행하라고 명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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