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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서 자유? · 1장 / 전체 41장

에베소서 2장과 규례들

2권에서 우리는 밤사이에 저절로 판올림을 마치고 이전 판을 지워 버리는 휴대전화를 예로 들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도 이와 비슷하게 여깁니다. 구약은 1.0 판이고 신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판올림 안내문, 곧 토라가 삭제되었다고 말하는 본문 속의 그 한 줄을 찾아보았습니다. 바울이 직접 쓴 글을 읽어 보았지만 그런 줄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바울은 “오히려 노모스(법)를 세운다”(로마서 3:31)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독자의 마음속에는 아직 아껴 둔 구절이 몇 개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가장 강력한 구절들, 율법이 끝났다고 그대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입니다. 이 책은 그 구절들을 하나씩, 저마다 본래 자리에서 펼쳐 본 뒤, 토라를 지키라고 말하는 구절들을 읽습니다.

앞선 두 권과 마찬가지로 이 책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일은 은혜로, 메시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선물로 이루어지며 결코 행위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합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물음이며 대답도 각기 다릅니다. 풀어 가는 방식 또한 같습니다. 장마다 흔히 하는 주장을 가장 강한 형태로 공정하게 제시한 뒤, 본문을 펼칩니다.

흔히 하는 주장

첫 번째 주장은 에베소서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규례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에베소서 2:15). 율법은 십자가에서 끝났다.”

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 구절 하나로 논의가 끝나는 듯합니다. 바울은 「폐하셨으니」라고 말하고, 「계명들의 노모스(법)」를 분명히 짚습니다. 이 일은 메시아의 육체 안에서 일어났고, 다음 절에는 십자가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앞뒤 구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4-16 이는 그분[메시아]이 우리의 평안이시니, 그분은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 — 곧 적대심 — 을 허물어 버리셨다. 그분은 자신의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도그마(교령)들이 된 계명들의 노모스(법)를 폐하셨으니, 이는 둘로 자신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여 평안을 이루시려 함이고, 또한 십자가를 통해 그[십자가] 안에서 적대심을 죽이심으로 둘 모두를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 함이다.

무엇이 폐해졌는지 묻기에 앞서, 이 단락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보십시오.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둘로 자신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여」. 「둘 모두를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헤이스(하나)라는 낱말이 단락 전체를 꿰뚫고 흐릅니다. 바울은 하나가 된 두 무리의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두 무리가 누구인지는 이미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2:11-12 그러므로 기억하라. 여러분은 전에 사르크스(육체)로는 이방인들로서, 손으로 행한 사르크스(육체)의 이른바 할례에 의해 이른바 무할례라 불렸으나, 그 카이로스(정해진-때)에 여러분이 메시아(그리스도) 없이 이스라엘의 폴리테이아(시민권)에서 소외되고, 약속의 디아데카이스(언약들)에 낯설며, 엘피스(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

한쪽에는 이스라엘이 서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이스라엘의 폴리테이아(시민권)에서 소외되고」, 「약속의 디아데카이스(언약들)에 낯설」었던 민족들이 서 있습니다. 바울은 그 둘 사이에 「중간에 막힌 담」이 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칙령에 쓰인 낱말

바울은 폐해진 것을 「도그마(교령)들이 된 계명들의 노모스(법)」라고 설명합니다. 이 명령들이 어떤 종류였는지 알려 주는 낱말은 도그마이며, 복수형은 도그마타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도그마는 사람이 내린 칙령입니다.

누가복음 2:1 그런데 그 날들에 온 세계를 아포그라포(호적-등록)하라는 도그마(칙령)가 황제 아우구스토스로부터 나왔다.

호적을 등록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도그마입니다.

사도행전 16:4 각 성읍을 지나가면서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크리노(심판/결정하다)한 도그마(교령)들을 지키도록 그들에게 전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내린 결정도 도그마타라고 부르며, 사도행전 17장 7절의 「황제의 도그마(칙령)들」도 그렇습니다. 이 구절들과 에베소서 2장 15절, 골로새서 2장 14절이 이 낱말이 나오는 곳의 전부입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토라를 도그마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바울이 폐해진 것을 「도그마(교령)들이 된」 계명이라고 말했을 때, 바울은 우리가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일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계명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사람의 칙령들 가운데서 찾아야 합니다.

글씨가 새겨진 담

이스라엘과 민족들을 갈라놓은 사람의 규정 가운데 하나가 성전 안에 서 있었습니다.

1권에서 살펴보았듯이 예루살렘 성전에는 안쪽 뜰들을 둘러싼 낮은 돌담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 담을 따라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경고판이 서 있었고, 그 담을 넘는 이방인에게는 죽음이 따른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헬라어 경고판 가운데 두 개가 후대에 발견되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는 이스탄불에 있고, 다른 하나의 조각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훗날 기록된 미쉬나는 그 담을 소렉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토라에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에 새기고 죽음을 형벌로 내건 사람의 규정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규정을 사람들이 얼마나 엄중하게 여겼는지 보여 줍니다. 바울이 성전에서 붙잡혔을 때 무리는 「또 그리스인들을 성전으로 데려다가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랬습니다(사도행전 21:28-29). 드로비모는 이 편지를 받은 도시인 에베소 출신이었습니다(에베소서 1:1). 드로비모는 그 담을 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바울이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그 짐작만으로도 「온 성이 뒤흔들리」기에 충분했습니다(사도행전 21:30).

메시아가 허무신 것을 가리켜 바울이 쓴 낱말은 메소토이콘(가운데를 가르는 담)입니다. 그 담은 민족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은 사람의 규칙들로 쌓여 있었고, 메시아는 그 담을 허무셨습니다. 「둘로 자신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여」 평안을 이루시려 함이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민족들을 하나님의 백성 바깥에 머물게 했던 사람의 규정이었습니다.

같은 동사, 반대 방향

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놓치기 쉬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폐하셨으니」로 옮긴 낱말은 카타르게오(힘을 잃게 하다, 무효로 하다)입니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토라 자체를 두고 글을 쓸 때도 바로 이 동사를 썼는데, 거기서 「폐하는가」가 카타르게오입니다.

로마서 3: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노모스(법)를 폐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모스(법)를 세운다.

그러니까 바울은 한 낱말로, 메시아가 무효로 하신 것과 믿음이 무효로 하지 않는 것을 함께 일러 준 셈입니다. 적대의 담을 쌓았던 사람의 칙령들은 무효가 되었고, 하나님의 노모스는 굳게 섭니다. 만약 에베소서 2장 15절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무효가 되었다는 뜻이라면,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바로 그 물음에 이 편지에서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셈이 됩니다.

네 장 뒤

두 번째 시험은 같은 교회에 보낸 같은 편지 안에서 나옵니다.

에베소서 6:1-3 자녀들이여,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이것이 의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 위에서 오래 살게 하려 함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을 지나간 시대의 정다운 추억처럼 인용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의 자녀들에게 이 계명을 명령하고,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덧붙입니다.

만약 2장에서 하나님의 계명들이 폐해졌다면, 바울은 네 장 앞에서 폐한 것을 6장에서 명령하는 셈이 됩니다. 신중한 저자라면 한 장에서 법전을 무너뜨려 놓고 몇 쪽 뒤에서 그 법전을 지켜야 할 것으로 인용하지 않습니다. 이 편지가 앞뒤가 맞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2장에서 폐해진 것은 사람의 칙령이고, 6장에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집을 고치는 일

오래된 집을 산 한 가족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래전에 누군가가 거실 한가운데에 칸막이벽을 세워 놓았습니다. 원래 설계에는 없던 벽이었고, 거실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새 주인은 건축업자를 부르고, 칸막이벽이 헐리고, 거실은 본래 의도대로 다시 하나가 됩니다.

기초에 쇠망치를 휘두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건축업자는 누군가가 덧붙인 벽과 집을 떠받치는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압니다.

바울도 같은 구분을 합니다. 담이 무너진 바로 뒤에, 바울은 그 집이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 말합니다.

에베소서 2:19-20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낯선 이들도 나그네들도 아니라, 거룩한 이들과 함께 시민들이고 하나님의 가족이니,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머릿돌이 되신다.

「더 이상 낯선 이들도 나그네들도 아니라, 거룩한 이들과 함께 시민들이고」. 여기서 「거룩한 이들」은 헬라어 하기오이(거룩한 이들)입니다. 「이스라엘의 폴리테이아(시민권)에서 소외되고」 있던 민족들이 이제 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온 집안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머릿돌이 되신다」. 선지자들이 그 기초의 일부이며, 바울은 이어서 그 건물이 「주 안에서 거룩한 나오스(성전)로 자라가며」라고 말합니다(에베소서 2:21).

칸막이벽은 내려왔고 기초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민족들은 빈터로 불려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오기 훨씬 전에 이미 기초가 놓인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

제자리에서 읽으면, 에베소서 2장 15절은 토라가 십자가에서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죽으심으로 민족들을 바깥에 머물게 했던 사람의 칙령의 담을 허무셨고, 그래서 이스라엘과 민족들이 한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그마타라는 낱말은 무엇이 폐해졌는지 알려 주고, 로마서 3장 31절과 에베소서 6장은 무엇이 폐해지지 않았는지 알려 줍니다.

같은 낱말 도그마타가 바울의 편지에 한 곳 더 나옵니다. 무엇인가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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