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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33장 / 전체 47장

적의를 품고 지켜보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갈라디아서 4장 10절부터 11절을 대략 이렇게 옮깁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여기서 흔히 펼치는 주장은 단순해 보입니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는 달력을 가리키는 듯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달력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가 담긴 토라의 달력뿐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그 달력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쏟은 수고가 헛되이 돌아갈까 봐 두려워했으며, 따라서 절기를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구절은 짧고 논리는 깔끔하지만, 이 주장은 우리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두 가지에 기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구절이 앞뒤 어느 문맥에 이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지키다」로 번역된 동사가 본래 무슨 뜻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선 문장

10절은 새로운 주제를 꺼내는 문장이 아닙니다. 두 절 앞에서 시작한 생각을 마무리하는 구절입니다. 지난 32장에서 우리는 8절을 읽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한때 「본래 신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했음을 일깨웠습니다. 이어지는 세 구절을 나란히 읽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9-11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아니 오히려 하나님에게 알려진 바 되었으니, 어찌하여 약하고 가난한 스토이케이온(기초)들에게 다시 돌이키려 하느냐? 다시 새로 그것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여러분이 날들과 달들과 카이로스(정해진-때)와 해들을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수고한 것이 혹시 헛된 것이 될까 두렵다.

흐름을 끊지 않고 따라가면 생각의 줄기는 이러합니다. 그들은 한때 신이 아닌 신들에게 종노릇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압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가난한 스토이케이아(기초)로 돌아가 또다시 종노릇하려 합니까? 그들은 날과 달과 정해진 때와 해를 살피고 있으며, 바울은 자기가 헛되이 수고했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9절의 핵심 낱말은 스토이케이아인데, 스토이케이온(어떤 것의 첫째 되는 것, 곧 글자가 글쓰기의 첫걸음이듯 사물의 기본 요소)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구절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다시 돌아가다」, 「다시 종노릇하다」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이전에 섬기던 무언가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이 이전에 섬기던 대상은 토라가 아니라 신이 아닌 신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시내산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 아니라, 옛 종살이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0절은 바로 그 호흡 그대로 이어집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날과 달을 두고 무슨 일을 했든, 바울은 그 일을 바로 그 되돌아감의 한 부분으로 보았고, 바로 그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누구의 날인가?

본문의 목록은 「날들과 달들과 카이로스(정해진-때)와 해들」입니다. 가운데 놓인 카이로스는 정해진 때나 정한 시기를 뜻하며, YLV 는 이 낱말에 하나님의 정해진 때를 뜻하는 히브리어 모에딤을 함께 적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날과 달과 정해진 때와 해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넷째 날에 광명체들을 지으시고 그것들이 「표(오트)와 정해진 때(모에드)와 날과 해를 위한 것」이 되게 하셨을 때(창세기 1:14) 이 때들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토라에서 그 이름을 밝히셨습니다.

레위기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으로 선포할 여호와의 정해진 때들(모에딤), 이것들이 내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다.

그렇다면 갈라디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든, 그들이 주시하던 때는 하나님께 속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동사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바울이 고른 동사

「지키다」로 번역된 낱말은 테레오(지키다, 보호하다)가 아닙니다. 테레오는 무언가를 소중히 여겨 지키거나 보호하고 붙드는 일을 가리키는 평범한 낱말입니다. 예슈아께서 「너희가 나를 아가페(사랑)하면, 내 계명들을 지키라」(요한복음 14:15)라고 말씀하실 때 쓰신 낱말이 바로 테레오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 낱말을 쓰지 않고 파라테레오(적의를 품고 지켜보다)를 씁니다. 1권에서 이 낱말을 짧게 언급했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모두 여섯 번 나오는데, 나머지 다섯 곳이 이 낱말이 어떤 종류의 지켜봄인지를 정확히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3:2 그들이 그를 고발하려고, 그가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에 그를 고쳐 줄지를 보려고 그를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6: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고발할 빌미를 찾으려고, 그가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에 고쳐 줄지를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14:1 그분께서 빵을 먹으러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에 바리새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들이 그분을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었다.

누가복음 20:20 그들이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다가, 자신들을 의인인 척하는 밀정들을 보냈으니, 이는 그의 말에서 빌미를 잡아 총독의 아르케(통치)와 엑수시아(권세)에 그를 넘겨주려 함이었다.

사도행전 9:24 그런데 그들의 음모가 사울에게 알려졌고, 그들은 그를 죽이려고 낮과 밤으로 성문들을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었다.

차례대로 읽어 보면 이 구절들은 한목소리를 냅니다. 어떤 이들은 예슈아를 고발하려고 지켜보았고, 어떤 이들은 고발할 빌미를 찾으려고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바톤에 식사 자리에서 그분을 감시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의 말에서 빌미를 잡으려고 밀정들을 보냈고,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킨 이들도 있었습니다.

구절지켜보는 사람이유
마가복음 3:2예슈아의 적대자들「그를 고발하려고」
누가복음 6:7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그를 고발할 빌미를 찾으려고」
누가복음 14:1한 지도자의 집에 모인 바리새인들식탁에서 그분을 감시함
누가복음 20:20밀정들을 보낸 자들「그의 말에서 빌미를 잡아」
사도행전 9:24사울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자들「그를 죽이려고」
갈라디아서 4:10갈라디아 사람들날과 달과 정해진 때와 해

여섯 곳 가운데 다섯 곳에서 파라테레오는 남의 흠을 잡거나 고발하거나 죽이려는 사람이 엿보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같은 낱말이 유독 여섯 번째 자리에서만 「경건하게 지키다」라는 뜻으로 바뀔 이유는 없습니다.

오래된 예배당 건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한 사람은 관리인입니다. 건물을 아끼기에 날마다 아침이면 둘레를 돌며 계단을 쓸고 빗물받이를 고치며 건물을 든든히 보살핍니다. 다른 한 사람은 건물을 철거하려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길 건너편에 세워 둔 차 안에 앉아 쌍안경을 들고 신고할 만한 균열을 찾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건물을 유심히 바라보지만, 건물을 지키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입니다. 관리인은 테레오이고, 차 안에 있는 남자는 파라테레오입니다.

바울이 「여러분이 날들과 달들과 카이로스(정해진-때)와 해들을 파라테레오(적대시, 적대적 감시)하고 있다」라고 쓸 때, 갈라디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탐꾼이 건물을 감시하듯, 그들이 적의를 품고 하나님의 정해진 때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약하고 가난한 스토이케이아와 예전에 겪던 종살이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문장 안에서 이 말을 합니다. 절기를 지키는 행동이 아니라 바로 그 모습이 바울로 하여금 자기의 수고가 헛될까 봐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태도를 짚어 줄 뿐, 갈라디아 사람들이 한 일을 하나하나 늘어놓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목록을 지어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은, 절기 자체가 금지되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절기를 어떻게 말했는가

만일 바울이 절기를 없애고 싶어 했다면, 그 증거를 찾기에 바울 자신의 삶만큼 어색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절기를 지켰을 뿐 아니라, 민족들로 이루어진 교회에도 절기를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권면할 때 바울은 전혀 다른 낱말을 썼습니다.

고린도전서 5:8 그러므로 묵은 누룩으로도,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아니고, 성실함과 알레데이아(진리)의 무교병으로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

여기서 쓰인 동사는 헤오르타조(절기를 지키다, 축제를 열다)입니다. 바울은 민족들 출신의 사람들로 가득한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다루는 대목에 이 낱말을 씁니다. 절기를 지킨다고 할 때 쓰는 낱말은 헤오르타조이지 파라테레오가 아닙니다.

바울은 또한 스스로 절기를 지켰습니다.

사도행전 18:21 그들에게 작별하며 “나는 반드시 다가오는 헤오르테(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고 에베소를 떠났다.

뒤이어 누가는 바울이 「할 수 있으면 오순절(펜테코스테) 날에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서두르고 있었다」(사도행전 20:16)라고 전해 주는데, 이는 1권에서 이미 살펴본 구절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0절을 쓴 바로 그 사람이 토라의 절기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짰습니다.

그렇다면 절기를 금지하는 듯이 보이던 이 구절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정해진 때를 적대적인 눈으로 감시하면서 옛 종살이로 되돌아가던 사람들을 두고 두려워했습니다. 문제는 달력이 아니라 바라보는 눈이었습니다.

파라테레오라는 낱말 맨 앞에는 파라라는 작은 접두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 접두사는 신약성경의 다른 두 낱말에도 붙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영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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