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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23장 / 전체 47장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

아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말들이 있는데, 적그리스도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음 주장은 공정하게 들어 볼 만합니다.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적그리스도는 그저 예슈아께서 메시아이심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무서운 말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내놓는 정의도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나온 정의이며, 요한이 쓴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정의를 두고 다투지 않겠습니다. 요한이 같은 편지에 쓴 나머지 말과 나란히 놓고 읽겠습니다.

정의 조항

제대로 된 계약서에는 앞쪽에 「정의」라는 제목이 붙은 조항이 있습니다. “이 계약에서 「임차인」이란 … 을 말한다.” “이 계약에서 「임차 건물」이란 … 을 말한다.” 거기서 한번 낱말의 뜻이 정해지면, 계약서 안에서 그 낱말이 무슨 뜻인지 정하려고 보통 사전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쓴 사람이 이미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다툼이 법정까지 가면, 판사는 그 조항부터 펼칠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도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 낱말을 스스로 정의하고 한결같이 씁니다. 요한이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알려면,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 요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거짓말쟁이가 누구냐

그 주장이 기대는 구절은 이것입니다.

요한일서 2:22 거짓말쟁이가 누구냐? 예슈아(예수)가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가 아니냐? 이 사람이 안티크리스토스(적그리스도)이니,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이다.

요한의 질문은 「적그리스도가 누구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누구냐?」입니다. 낱말은 프세우스테스(거짓말쟁이)입니다. 안티크리스토스(적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이의 적, 곧 메시아에 맞서는 자이며, 그를 드러내는 행동은 아르네오마이(부인하다)입니다.

그러니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거짓말쟁이, 곧 부인하는 자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다음 질문은 요한이 누구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가이고, 요한은 우리가 짐작하게 두지 않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세 번 더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데, 그때마다 문장의 꼴이 같습니다.

요한일서 1:6 우리가 그분과 코이노니아(사귐/교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어두움 안에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한다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고 알레데이아(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요한일서 2:4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이는 거짓말쟁이고, 그 안에 알레데이아(진리)가 없다.

요한일서 4:20 누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니;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느냐?

틀이 뚜렷합니다. 세 번 모두 누군가 말은 이렇게 하고 삶은 저렇게 삽니다. 입은 사귐이 있다고 하는데 발은 어둠 속을 걷습니다. 입은 「나는 그분을 안다」고 하는데 삶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입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형제를 미워합니다. 요한에게 거짓말쟁이란 이런 사람, 곧 말은 하되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부인

이제 판사가 계약서를 읽듯 요한의 정의들을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이는 거짓말쟁이입니다(요한일서 2:4). 거짓말쟁이는 부인하는 이이며, 이 사람이 안티크리스토스입니다(요한일서 2:22).

그러니 요한에게 예슈아께서 메시아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예슈아는 메시아가 아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것도 요한이 거짓이요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울도 같은 말을 합니다.

디도서 1:16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들로써는 부인하니, 가증스럽고 불순종하며 모든 선한 행위에 아도키모스(검증되지 않은) 자들이다.

부인한다는 낱말은 요한이 쓴 것과 같은 아르네오마이입니다. 사람은 입술로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삶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 부인이 말로 나왔다고 하지 않습니다. 「행위들로써」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

성경은 마지막 날의 그 사람에게도 이름을 붙입니다. 바울은 그를 「죄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3). 몇 줄 뒤에서 그는 「아노미아(토라없음)의 뮈스테리온(신비)이 이미 에네르게이타이(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니」라고 말하고, 그 사람 자신을 「아노모스(토라없는 자)」라고 부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7-8). 헬라어로 호 아노모스, 곧 법 없는 자입니다. 이 구절들은 27장에서 자세히 보겠습니다. 3장에서 보았듯이 아노미아는 토라 없음이고, 요한은 그것을 한 줄로 말했습니다. 「죄는 아노미아(토라없음)이다」(요한일서 3:4). 그러므로 죄의 사람과 법 없는 자는 서로 다른 두 이름이 아니라, 한 이름을 두 가지로 말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곧 그가 하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토라가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살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오스(성전)에 하나님으로 앉아」 있게 됩니다(데살로니가후서 2:4).

「주여 주여」

예슈아께서도 마지막 날에 내보내시는 사람들을 말씀하실 때 같은 낱말을 쓰십니다. 그 본문은 26장에서 다 읽을 것이니, 여기서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만 보면 됩니다. 그들은 그분을 「주여 주여」 하고 부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예언했고, 귀신들을 내쫓았고, 「많은 뒤나미스(능력)의 일들」을 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 그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내보내는 선고는 이것입니다. 「아노미아(토라없음)를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마태복음 7:23).

요한도 자기 경고를 덧붙입니다.

요한일서 3:7-8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행하는 이는 의로운 이이니, 그분이 의로우신 것과 같다. 죄를 행하는 이는 디아볼로스(마귀, 참소자/중상가)에게 속한 것이니, 디아볼로스(마귀, 참소자/중상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이를 위해 — 디아볼로스(마귀, 참소자/중상가)의 행위들을 파괴하려 하심이다.

의로운 사람은 의로움을 행하는 사람이지,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이 붙인 이름만

이 공부는 어떤 사람에게도 딱지를 붙이지 않으며, 누구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본문이 스스로 붙인 이름만 읽습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이는 거짓말쟁이입니다(요한일서 2:4). 거짓말쟁이는 적그리스도입니다(요한일서 2:22). 마지막 날의 그 사람은 죄의 사람, 법 없는 자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3, 8). 마지막 날에 쫓겨나는 이들은 토라 없음을 행하는 자들입니다(마태복음 7:23).

이 네 구절 옆에 “계명은 어차피 지킬 수 없으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가르침을 놓고, 그 가르침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 답은 우리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 네 구절이 이미 답을 정해 놓았습니다.

읽기 힘든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곧바로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면 이것을 더 부드럽게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을 것이고, 잘못 가르치는 사람들을 바로잡기보다 품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그 반론은 따로 들어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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