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전 · 37장 / 전체 45장
민족들에게 열린 절기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랑네나 신부네 가운데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들과 성씨도 내력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부의 아버지가 친필로 쓴 청첩장을 보내왔고, 거기에는 당신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식장 밖에 서서 “이 잔치는 저 사람들의 잔치지, 내 잔치가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의 절기를 두고 그와 아주 비슷한 말을 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근거로 삼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절기를 다루는 큰 장인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절기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고, 민족들 가운데서 온 신자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지키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들 합니다.
신중하고 겸손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구절은 끝까지 읽어 보아야 합니다.
내 정해진 때들
레위기 2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으로 선포할 여호와의 정해진 때들(모에딤), 이것들이 내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는 말씀은 누가 그 말씀을 먼저 들었는지를 알려 줄 뿐, 이 절기들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물음에는 구절 자체가 스스로 답하며, 그것도 두 번이나 답합니다. 「여호와의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라 하고, 다시 「이것들이 내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쓰인 낱말은 모에드(정한 때)이고, 복수형은 모에딤입니다. 이 말은 정한 때, 정해 놓은 만남, 하나님께서 달력에 적어 넣으신 약속을 뜻하며, 이 약속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위기 23장에서는 이를 이스라엘의 절기라거나 유대인의 명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약속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은 그것을 선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청첩장은 아버지의 친필로 쓰여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를 초대하셨습니까?
식탁에 앉은 거류민
토라는 명백하게 답합니다. 토라는 절기 자리에서 거류민을 한 번 이상 부르며, 유월절을 두고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12:49 본토인에게나 너희 가운데 머무는 나그네에게나 한 토라가 있을 것이다.
민수기 9:14 또 너희 가운데 머무는 나그네가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키려거든, 유월절의 규례(후카)와 그 판결(미쉬파트)에 따라 그렇게 행할 것이다. 나그네에게나 그 땅의 본토인에게나 너희에게는 한 규례(후카)가 있을 것이다.
토라는 「한 토라」와 「한 규례(후카)」를 말씀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거류민은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과 똑같은 규례를 따라 유월절을 지킵니다.
속죄일을 두고 토라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레위기 16:29 이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규례(후카)가 된다. 일곱째 달 그달 열흘에 너희는 너희 자신(네페쉬)을 괴롭게 하고 어떤 일도 하면 안 되니, 본토인이든 너희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이든 그러하다.
그날은 「본토인이든 너희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이든」 모두의 날입니다.
초막절을 두고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신명기 16:14 네 절기(하그)에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 안에 있는 레위 사람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기뻐하라.
기뻐하는 사람들의 명단에서 레위 사람과 고아 사이에 「객」이 이름을 올립니다.
토라는 절기를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가두어 둔 적이 없으며, 선지자들은 그 문을 더욱 넓게 열었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들을 이렇게 그립니다.
이사야 56:6-7 여호와를 섬기고 그 이름을 사랑하여 그 종이 되려고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들, 샤밭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내 언약(베리트)을 굳게 붙드는 모든 자를, 내가 내 거룩한 산으로 데려와 내 기도의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겠다. 그들의 번제와 제물이 내 제단 위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내 집은 모든 백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샤밭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내 언약(베리트)을 굳게 붙드는 모든 자」를 두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산으로 데려오시고 당신의 집에서 기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민족들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그리지 않습니다. 민족들이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때를 지키며 기꺼이 영접받는 모습을 그립니다.
공의회가 적지 않은 것
사도행전 15장에 절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는 피해야 할 네 가지를 들었을 뿐이고, 절기는 거기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를 한 걸음만 더 밀고 나가 보십시오. 그 편지에는 살인도 들어 있지 않고, 도둑질이나 거짓 맹세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방인 신자들이 그런 계명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결론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편지는 처음부터 전체 목록을 적어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14장에서 보았듯이, 야고보는 같은 자리에서 바로 이어 그 까닭을 밝혔습니다. 모세가 「매 사바톤마다 회당에서 낭독되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5:21). 네 가지는 당장 버려야 할 일이었고, 나머지는 모세의 글이 읽히는 것을 매주 들으면서 하나씩 배워 갈 일이었습니다. 레위기 23장은 그들이 듣던 말씀의 일부였습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한 일
교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이 사실이 확증됩니다. 핵심 구절은 7장에서 이미 읽었지만, 이 편지를 누가 받았는가 하는 물음을 마음에 품고 다시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바울은 대다수가 민족들 가운데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고린도 교회에 「그러므로 …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고린도전서 5:8)라고 썼습니다. 여기서 쓰인 동사는 헤오르타조(절기를 지키다)입니다. 바울은 그 계절에 누룩과 무교병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아는 사람들을 대하듯 헬라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절기가 이방인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면, 바울은 그들에게 그런 문장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가의 기록을 보면 바울 자신도 레위기 23장의 달력을 지켰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여정 하나를 두고 「무교절이 지난 후」라고 날짜를 적으며, 바울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닿으려고 서둘렀다고 알려 줍니다(사도행전 20:6, 16; 16장과 33장). 그보다 앞서 에베소를 떠나면서 바울 자신도 같은 취지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1 그들에게 작별하며 “나는 반드시 다가오는 헤오르테(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하고 에베소를 떠났다.
「나는 반드시 다가오는 헤오르테(절기)를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이미 끝났다고 믿는 절기에 맞추어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골로새서 2:16에서 바울은 대다수가 이방인인 교회에 「… 헤오르테(절기)나 새달이나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의 일부에 대해 아무도 여러분을 크리노(심판/결정하다)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지키지도 않는 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골로새 신자들은 절기를 지키고 있었고, 그 일로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32장에서 보았듯이 로마서 14:5에는 「절기」라는 낱말 자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4:10에 쓰인 동사는 파라테레오(적의를 품고 살피다)입니다. 거기서 바울이 꾸짖는 대상은 예전에 섬기던 우상에게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정한 때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이지, 토라의 절기를 지키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이 본 미래
절기를 지키지 않고 남겨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 마지막 답을 주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입니다.
스가랴 14:16-19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이방 민족 가운데 남은 자마다 해마다 올라와 왕이신 만군(째바오트)의 여호와께 경배하고, 장막의 절기(하그)를 지킬 것이다. 땅의 가문들 가운데 누구든지 왕이신 만군(째바오트)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않으면, 그들에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 가문이 올라오지 않거나 나오지 않으면 그들에게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며, 장막의 절기(하그)를 지키러 올라오지 않는 이방 민족들을 여호와께서 치시는 그 재앙이 임할 것이다. 이것이 이집트의 죄에 대한 벌이요, 장막의 절기(하그)를 지키러 올라오지 않는 모든 이방 민족의 죄에 대한 벌이다.
민족들은 모두 「해마다 올라와 … 장막의 절기(하그)를 지킬 것이다」. 땅의 가문들 가운데 올라오지 않는 가문이 있으면 「그들에게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스가랴는 그렇게 거부하는 일에 이름을 붙입니다. 「올라오지 않는 모든 이방 민족의 죄」라고 부릅니다.
어떤 일이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면서 동시에 죄일 수는 없습니다. 스가랴가 내다본 시대에 초막절을 멀리하는 일은 어느 쪽을 택해도 상관없는 개인의 기호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될 것이고, 가뭄이 그 결과로 따라올 것입니다.
이사야도 같은 말씀으로 책을 맺습니다.
이사야 66:23 모든 살(바사르)이 초하루마다, 샤밭마다 내 앞에 경배하러 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살(바사르)이 초하루마다, 샤밭마다 내 앞에 경배하러 올 것이다.」 나아오는 이들은 모든 살이지,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결혼식장으로 돌아옵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여호와의 것이며, 그분의 초대는 그분께 연합한 모든 사람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그 달력에는 정확히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그날들은 어느 날이며, 날마다 어떤 쉼이 속해 있고, 그날에는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됩니까? 레위기 23장은 이를 매우 정밀하게 펼쳐 보이며, 천천히 읽는 사람에게 풍성한 유익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