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전 · 33장 / 전체 45장
주의 날과 사도행전 20장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켰다면, 날을 바꾸는 일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은 사도행전의 한 구절에서 답을 찾습니다. 바울과 드로아의 신자들이 빵을 떼려고 모였는데,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을 초기 교회가 일요일에 모여 예배했다는 증거로 삼습니다. 신중한 사람들이 품어 온 진지한 주장이므로, 차분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구절만 따로 떼어 내지 않고, 그날 밤의 일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그날 밤의 전모
사도행전 20:6-8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후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이르러 칠 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 사바톤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 중 하나에 제자들이 빵을 떼려고 모였을 때 바울이 이튿날 떠나려 했으므로 밤중까지 말씀을 이어갔다. 우리가 모인 다락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그때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틀에 걸터앉아 있다가, 바울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깊이 잠들어 삼층에서 떨어집니다. 바울이 내려가 청년을 안고는 사람들에게 소란스러워하지 말라고 이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20:11 올라가 빵을 떼고 먹은 후 오래 새벽까지 이야기하다가 떠났다.
이 장면을 한 걸음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는 달력입니다.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후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누가는 토라의 절기를 기준으로 여정의 날짜를 적습니다. 바울과 일행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다 지킨 뒤에야 배를 띄웠습니다.
둘째는 머문 기간입니다. 「칠 일을 보냈다.」 바울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16장에서 보았듯이, 할 수만 있다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닿고 싶어 했습니다(사도행전 20:16). 그런데도 드로아에서 꼬박 칠 일을 머물렀습니다. 칠 일을 머물면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사바톤이 지나갑니다.
셋째는 모임입니다. 「그러나 그 사바톤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 중 하나에 제자들이 빵을 떼려고 모였을 때」
넷째는 바울이 그토록 길게 이야기한 까닭입니다. 바울은 「이튿날 떠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이 그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다섯째는 시간입니다. 「다락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밤이었습니다. 바울은 「밤중까지」 말씀을 이어 갔고, 유두고를 살려 데려온 뒤에 다시 올라가 빵을 떼어 먹고 「오래 새벽까지 이야기하다가 떠났다.」
하루가 시작되는 때
누가의 첫 독자들이 읽었듯이 이 장면을 읽으려면, 성경 달력의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루는 자정이 아니라 해 질 녘에 시작됩니다. 저녁이 먼저 오고, 아침이 뒤따릅니다.
이 계산법을 따르면 드로아에서 일어난 일의 순서는 이러합니다. 사바톤에 회당 모임이 끝난 뒤, 제자들이 오후에 빵을 떼려고 모입니다. 모임은 해 질 녘을 넘겨 밤으로 이어집니다. 등불이 켜지고, 바울은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날이 밝아 바울이 길을 떠나면서 모임이 흩어집니다. 사바톤에 시작된 모임이, 첫새벽에 떠날 사람을 위한 밤샘 송별회가 된 셈입니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사하는 친구를 떠올려 보십시오.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모두가 작은 위층 방에 빼곡히 모입니다. 음식을 나누고, 친구는 끝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누군가는 꾸벅꾸벅 좁니다. 아무도 먼저 자리를 뜨려 하지 않고,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 올 때까지도 마지막 손님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제 이천 년 뒤의 역사가가 그날 밤을 기록한 글을 발견하고는, 이 모임이 주간 정례 모임 날짜를 새로운 날로 옮겼다는 증거라고 발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역사가는 자신이 미리 품고 온 결론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셈입니다.
거기에 없는 것
본문을 다시 읽으며 세 가지를 찾아보십시오.
예배를 찾아보십시오. 예배를 뜻하는 헬라어 프로스키네오(예배하다)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올라갔다고 말할 때 쓴 낱말입니다(사도행전 24:11). 이 본문에는 그 낱말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매주」라는 말을 찾아보십시오. 누가는 그들이 매주 이렇게 모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룻밤의 일을 기록할 뿐입니다.
날을 정했다는 말을 찾아보십시오. 어떤 날을 택했다거나, 지정했다거나, 옮겼다는 말은 여기에 전혀 없습니다. 어떤 사도도 날이 바뀌었다고 알리지 않으며, 누구도 “이제부터는”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식사, 긴 이야기, 창문에서 떨어진 사고, 살아 돌아온 소년, 그리고 새벽의 작별뿐입니다. 마음을 울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송별 만찬이지만, 달력을 바꾸는 자리는 아닙니다.
사바톤들 가운데 하나
누가가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쓴 헬라어 구절은 미아 톤 사바톤(사바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다수 영어 성경은 이 구절을 「그 주의 첫날」로 옮깁니다. 이 번역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바톤이라는 낱말을 쓰던 사람들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리고 미아 톤(~가운데 하나)이라는 짧은 표현이 헬라어에 나올 때마다 무슨 뜻을 나타내는지입니다.
샤밭과 샤밭톤
히브리 성경에는 서로 이어진 두 낱말이 나옵니다. 샤밭은 일곱째 날, 곧 안식일입니다. 샤밭톤은 엄숙한 쉼입니다. 샤밭톤은 히브리 성경의 열 구절에 걸쳐 열한 번 나옵니다. 출애굽기 16장 23절, 31장 15절, 35장 2절, 레위기 16장 31절, 23장 3절, 24절, 32절, 39절(두 번), 25장 4절, 5절입니다.
이 낱말이 어디에 쓰였는지 살펴보십시오. 레위기 23장 3절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입니다. 레위기 23장 24절은 나팔절입니다. 레위기 16장 31절과 23장 32절은 속죄일입니다. 레위기 25장은 땅이 쉬는 안식년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에는 한 구절에 이 낱말이 두 번 나옵니다.
레위기 23:39 일곱째 달 열닷새에 너희가 그 땅의 소출을 거둔 뒤에는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하그)를 지켜라. 첫째 날도 샤밭톤이요 여드레째 되는 날도 샤밭톤이다.
같은 낱말이 일곱째 날과 정한 때를 모두 아우릅니다.
1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 모든 날을 사바톤이라는 하나의 헬라어 낱말로 불렀습니다. 일곱째 날도 사바톤이었고, 절기 날들도 마찬가지로 사바톤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고, 신약 기록자들도 독자들이 평소 말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샤밭과 샤밭톤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둘 다 사바톤이라 적었습니다. 예슈아 직역성경(YLV)이 사바톤이 나올 때마다 「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이라고 설명을 붙여 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에드는 정한 때를 뜻하며, 레위기 23장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부터 시작하여 그 모든 날을 차례로 열거합니다.
예슈아 직역성경이 기준 본문으로 삼는 비잔틴 다수 본문(로빈슨-피어폰트 2018년 판)에서, 사바톤은 62개 구절에 걸쳐 68번 나오는데, 단수로 41번, 복수로 27번 쓰였습니다. 복수형 앞에 「~가운데 하나」가 붙으면, 사바톤들 가운데 하루, 곧 정한 때 가운데 하루를 가리킵니다.
「~가운데 하나」
이제 그 표현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아는 「하나」를 뜻하고, 톤은 「그 ~들의」를 뜻합니다. 뒤에 복수 명사가 오면, 미아 톤은 「~들 가운데 하나」, 곧 여럿 가운데서 하나를 짚어 내는 말이 됩니다. 신약성경은 이 표현을 거듭 사용하며, 영어 성경들은 이를 여럿 가운데 하나를 뜻하는 「~가운데 하나」, 「어떤 ~」, 또는 「어느 날」로 옮길 뿐, 결코 「첫째」로 옮기지 않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사바톤이라는 명사입니다.
| 구절 | 헬라어 | 뜻 |
|---|---|---|
| 마태복음 5:19 | 미안 톤 엔톨론 투톤 | 이 계명들 가운데 하나 |
| 마가복음 14:66 | 미아 톤 파이디스콘 | 여종들 가운데 하나 |
| 누가복음 5:12 | 엔 미아 톤 폴레온 | 성읍들 가운데 하나에서 |
| 누가복음 5:17 | 엔 미아 톤 헤메론 | 날들 가운데 하루에(어느 날에) |
| 누가복음 8:22 | 엔 미아 톤 헤메론 | 날들 가운데 하루에(어느 날에) |
| 누가복음 13:10 | 엔 미아 톤 시나고곤 | 회당들 가운데 하나에서 |
| 누가복음 20:1 | 엔 미아 톤 헤메론 에케이논 | 그 날들 가운데 하루에 |
| 요한계시록 6:1 | 미안 에크 톤 헵타 스프라기돈 | 일곱 인들 가운데 하나 |
| 요한계시록 6:1 | 헤노스 에크 톤 테사론 조온 | 네 생물들 가운데 하나 |
| 요한계시록 13:3 | 미안 에크 톤 케팔론 | 그 머리들 가운데 하나 |
아무도 이 구절들을 “첫째 계명”, “첫째 성읍”, “첫째 회당”으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계명들 가운데 하나는 그저 계명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언제나 같은 낱말
이제 사바톤을 같은 틀에 놓아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바톤들 가운데 하나」를 말하는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구절 | 헬라어 | YLV |
|---|---|---|
| 마태복음 28:1 | 에이스 미안 사바톤 | 사바톤들 중 하나를 향하여 |
| 마가복음 16:2 | 테스 미아스 사바톤 | 사바톤들 중 하나에 |
| 누가복음 24:1 | 테 미아 톤 사바톤 | 그 사바톤들 중 하나에 |
| 요한복음 20:1 | 테 미아 톤 사바톤 | 그 사바톤들 중 하나에 |
| 요한복음 20:19 | 테 미아 톤 사바톤 | 그날, 곧 그 사바톤들 중 하나에 |
| 사도행전 20:7 | 엔 테 미아 톤 사바톤 | 그 사바톤들 중 하나에 |
| 고린도전서 16:2 | 카타 미안 사바톤 | 사바톤들 중 하나에 |
누가복음 24:1 그러나 그 사바톤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 중 하나에, 이른 새벽에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왔고, 다른 몇 사람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법은 앞선 첫 번째 표의 모든 줄과 똑같습니다. 미아는 「하나」이고, 톤 사바톤은 「사바톤들의」입니다.
여기에는 「첫째」라는 낱말이 없습니다.
「날」이라는 낱말도 적혀 있지 않지만, 그 뜻은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미아가 여성형이고, 날을 뜻하는 헬라어 헤메라도 여성형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5장 17절에서 이 구절 전체를 다 적어 놓았습니다. 엔 미아 톤 헤메론, 곧 「날들 가운데 하루에」입니다. 따라서 미아 톤 사바톤은 「사바톤들 가운데 하루」, 곧 정하신 때들 가운데 하루를 뜻합니다.
「주간」을 뜻하는 낱말도 없습니다. 헬라어에는 한 주간을 뜻하는 헤브도마스라는 낱말이 따로 있지만, 신약 성경은 이 낱말을 한 번도 쓰지 않습니다.
다만 「첫째」라는 낱말을 쓰는 구절이 딱 하나 있습니다. 마가가 예슈아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때를 알려 주는 대목입니다.
마가복음 16:9 그런데 예슈아(예수)께서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의 프로이-프로테(이른-아침-첫째-부분)에 일어나신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나타나셨으니, 그녀는 그분이 일곱 데몬(축출 대상 개별 악령)을 쫓아내신 자였다.
여기서 헬라어는 프로이 프로테 사바투입니다. 문법을 보면 문제가 명쾌하게 풀리므로, 낱말을 하나씩 짚어 보아야 합니다.
프로이는 일찍, 곧 첫 빛이 비칠 때를 뜻하는 부사입니다. 마가는 몇 절 앞선 마가복음 16장 2절에서도 「아주 이른 때」라며 이 낱말을 썼습니다.
프로테는 「첫째」라는 뜻이며, 그 형태를 보면 문장 안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낱말은 여성 단수 여격인데, 헬라어에서 여격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때를 나타낼 때 씁니다. 곧 「첫째에」라는 뜻입니다. 그 옆에 꾸밈을 받는 명사는 적혀 있지 않으며, 이 낱말 자체로 한 시점을 가리킵니다.
사바투는 사바톤의 단수 속격으로, 「사바톤의」라는 뜻입니다. 이 첫 부분이 속해 있는 전체가 무엇인지를 밝혀 줍니다.
이제 문법상 성립할 수 없는 해석을 짚어 보겠습니다. 사바톤은 중성 명사이고, 프로테는 여성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형용사는 자신이 꾸미는 명사와 성 · 수 · 격이 일치해야 합니다. 따라서 프로테는 사바톤을 꾸미는 말이 아닙니다. 마가가 「첫째 안식일」을 뜻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 어디에도 「주간」을 뜻하는 낱말은 없습니다.
결국 프로이 프로테는 시간을 나타내는 하나의 서술 구절이자 한 덩어리로서, 이른 첫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바투는 그것이 무엇의 첫 부분인지를 알려 줍니다. 이어서 읽으면, 마가의 말은 「사바톤의 가장 이른 첫 부분에」라는 뜻입니다. YLV는 이 두 낱말이 한 덩어리임을 보여 주려고 붙임표로 이어서 사바톤의 「프로이-프로테(이른-아침-첫째-부분)」라고 옮겼습니다. 프로이는 밤이 끝나고 첫 빛이 찾아오는 시간이며, 프로테는 그 시간의 첫머리, 곧 가장 앞선 끝자락입니다. 두 낱말이 합쳐져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곧 출발점을 가리킵니다. 마가는 한 주간의 날들을 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슈아께서 사바톤의 첫 빛이 비칠 때에 이미 살아나셔서 모습을 나타내셨다고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바로 그 순간을 자신의 언어로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태복음 28:1 아직은 옵세(절기 기간의 후반부)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 중 하나를 향하여 밝아올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다.
마태가 쓴 낱말은 테 에피포스쿠세인데, 「빛나기 시작하다」를 뜻하는 에피포스코에서 나온 말로 빛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마가는 이를 가장 이른 첫 부분이라 부르고, 마태는 빛의 시작이라 부릅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출발점을 가리키고 있으며, 어느 쪽도 「그 주간의 첫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가가 사도행전 20장 7절을 적었을 때, 독자들은 헬라어 본문이 말하는 그대로를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바톤들 가운데 하나, 곧 정하신 때들 가운데 하루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날이 어느 날이었으며 부활 아침이 절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는 이 시리즈의 4권 「단 하나의 표적」에서 다룹니다. 여기서는 헬라어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따로 떼어 둔 돈
드로아의 그 밤 이야기 옆에는 흔히 두 번째 구절이 나란히 놓이곤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거룩한 이들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며 고린도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6:2 사바톤들 중 하나에 각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따로 두어, 번성한 대로 저축하라, 이는 내가 갈 때 헌금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매주 모이는 예배 자리에서 헌금 접시를 돌리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파르 헤아우토 티테토 테사우리존, 곧 「자기 곁에 두어 쌓아 두십시오」라고 적었습니다. 자기 곁에 둔다는 것은 집에서 한다는 뜻입니다. 테사우리조라는 낱말은 모아서 간직하다, 보물을 쌓아 두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이 집에서 개인적으로 조금씩 돈을 따로 떼어 두어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라는 까닭도 밝힙니다. 「내가 갈 때 헌금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목적은 모임 자리에서 돈을 거두는 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도착했을 때 아무도 돈을 거두러 다닐 필요가 없도록, 각자 집에서 미리 돈을 따로 떼어 두기를 바랐습니다. 이 구절은 예배 모임을 묘사하는 글이 결코 아닙니다.
주의 날
마지막으로 흔히들 내세우는 구절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프뉴마(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내 뒤에서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 많은 이들이 이 말을 한 주간의 특정한 요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정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주의 날」을 일요일이라 부르는 곳은 없으며, 성경은 그 둘을 이어 놓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실제로 알려 주는 것은 예슈아께서 친히 당신이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날입니다.
마가복음 2:27-28 예슈아(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사람이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의 주인이다.”
「인자는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의 주인이다.」 예슈아께서 어느 날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알고 싶다면, 그분이 직접 주신 이 대답을 보면 됩니다.
결국 날이 바뀌었음을 보여 준다는 세 구절을 살펴보니, 동틀 때까지 이어진 작별 만찬과 집에서 따로 떼어 둔 돈, 그리고 성경이 한 번도 일요일이라 부른 적 없는 「주의 날」 이야기였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구절도 안식일이 옮겨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게감 있는 반론이 하나 남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 해도 안식일은 신약 성경이 되풀이해서 말하지 않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열 가지 계명 가운데 아홉 가지는 다시 나오지만, 한 가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