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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34장 / 전체 45장

신약에 나타난 넷째 계명

성경 공부 자리에서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제법 그럴듯한 주장이 하나 있습니다. 십계명을 손에 들고 신약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를 비롯한 다른 계명들은 모두 예슈아나 사도들이 다시 언급합니다. 열 개 가운데 아홉 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넷째 계명인 「샤밭의 날을 기억하여 그것을 거룩하게 하여라」(출애굽기 20:8)는 명령의 형태로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 개 가운데 아홉 계명은 새 언약으로 넘어왔고, 안식일만 홀로 뒤에 남았다고 주장합니다.

얼핏 보면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결론을 받아들이기 전에, 숫자를 세는 그 바탕에 어떤 규칙이 깔려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규칙

이 주장은 한 가지 원칙을 전제로 삼습니다. 구약의 계명은 신약이 다시 언급해야만 효력을 유지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이 없다면, 계명이 몇 번 나오는지를 세어 본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원칙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다시 언급되지 않으면 시효가 끝난다고 말하는 구절은 성경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슈아께서는 정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19 내가 노모스(법)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노모스(법)에서 한 이오타(아주 작은 글자)나 한 케라이아(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장 작은 계명들 가운데 하나라도 어기고 또 그렇게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는 하늘들의 바실레이아(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나, 그것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들의 바실레이아(왕국)에서 크다 불릴 것이다.

「노모스(법)에서 한 이오타(아주 작은 글자)나 한 케라이아(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한이 언제까지입니까?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입니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의 일반 법률도 똑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법은 폐지되기 전까지 효력을 유지합니다. 입법자들이 회기가 바뀔 때마다 기존의 모든 법을 살려 두려고 매번 다시 가결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변호사가 특정 법률이 두 번 제정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판사는 그 법이 어디에서 폐지되었는지부터 입증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계명이 서 있는 까닭은 그것이 반복해서 언급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폐지한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관해서는 폐지한다는 말씀이 아예 없습니다.

여섯 개만 부르시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시다

일부 계명만 언급했다고 해서 나머지 계명이 취소되는 것이 아님은 예슈아께서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예슈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17-19 그러자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는가?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조에(생명)에 들어가고자 하거든 계명들을 지켜라.” 그가 그분께 말했다. “어떤 것들을요?” 예슈아(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계명들을 지켜라」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이 「어떤 것들을요?」라고 묻자 예슈아께서는 여섯 가지를 꼽으셨는데, 모두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계명이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마라」는 말씀은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우상이나 하나님의 이름이나 안식일도 언급하지 않으셨고, 열째 계명인 「탐내지 마라」 역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슈아께서 이 계명들을 빼놓으셨다고 해서 그것들을 폐지하신 것입니까?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서 이제는 다른 신들을 숭배해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번의 대화에서 어떤 계명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 계명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첫 세 계명이 그렇다면, 넷째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여기에 중요한 사실을 덧붙입니다. 계명은 우리가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도록 낱개의 규칙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10-11 온 노모스(법)를 지키다가 한 부분에서 실족하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게 된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살인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으니; 만약 간음하지 않더라도 살인하면 노모스(법)의 범법자가 되었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살인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십계명은 한 분의 음성에서 나왔습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샤밭의 날을 기억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아홉 계명은 지키면서, 한 호흡에 함께 말씀하신 나머지 한 계명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반복되는 안식일

결국 그 주장의 바탕에 깔린 원칙은 성경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장이 기대고 있는 사실관계마저 틀렸습니다. 안식일은 신약 성경에 분명히 나오며, 십자가 이전 시기에만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예슈아께서 숨을 거두신 날,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왔던 여인들은 그분이 어디에 놓였는지 보았습니다. 이어서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23:56 돌아가서 아로마타(향품)와 뮈라(향유)를 준비했고,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에는 계명에 따라 쉬었다.

「계명에 따라 쉬었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부활 사건이 있고 나서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이 글을 썼습니다. 그는 이를 두고 옛 습관이라거나 곧 시효가 끝날 계명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바로잡으려는 말 한마디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예슈아께서는 장차 다가올 날들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4:20 너희의 도망가는 일이 겨울에나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예슈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그날에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리라 내다보셨습니다. 그렇기에 안식일에 도망치는 일을 두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만큼 큰 어려움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1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이방인들은 「다음 사바톤」에도 말씀을 더 들려 달라고 간청했고, 「다음 사바톤에는 거의 온 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다」(사도행전 13:42-44). 고린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사도행전 18:4 바울은 매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했다.

「매 사바톤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이 함께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4:9-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바티스모스(안식-쉼)가 남아 있다.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들로부터 쉬신 것처럼, 그도 자신의 행위들로부터 쉬었다.

「사바티스모스(안식-쉼)가 남아 있다」라고 합니다. 사바티스모스라는 낱말은 안식일을 지키는 일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남아 있다」고,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금도 여전히 거기 있다고 말합니다.

안식일마다

선지자들은 훨씬 더 먼 앞날까지 내다봅니다. 이사야는 민족들 가운데서 사람들이 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연합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사야 56:6-7 여호와를 섬기고 그 이름을 사랑하여 그 종이 되려고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들, 샤밭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내 언약(베리트)을 굳게 붙드는 모든 자를, 내가 내 거룩한 산으로 데려와 내 기도의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겠다. 그들의 번제와 제물이 내 제단 위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다. 내 집은 모든 백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방인들은 누구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분을 섬기고, 「샤밭을 지켜 더럽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민족들이 안식일을 뒤에 남겨 둔 채 하나님께 나아온다고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산으로 나아와, 그분의 기도의 집에서 기쁨을 얻는다고 그립니다.

이사야는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이사야 66:23 모든 살(바사르)이 초하루마다, 샤밭마다 내 앞에 경배하러 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살(바사르)이 … 샤밭마다 내 앞에 경배하러 올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살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모든 살이 여전히 「샤밭마다」 나아와 경배합니다.

계명이 반드시 다시 언급되어야만 유효하다는 규칙은 성경에 없습니다. 예슈아께서는 하늘과 땅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한 획도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십자가 이후에도 지켜졌고, 장차 올 날들에도 지켜질 것으로 예고되었으며, 사도들이 「매 사바톤마다」 지켰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선언되었으며, 이사야가 본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작 성경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바뀐 날입니다. 숫자를 세어 보면 열 개 가운데 아홉이 아닙니다. 열 개 모두입니다.

이제 반론이 하나 더 남았는데, 예슈아 자신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무엇보다도 무거운 반론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슈아께서 「사바톤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라고 기록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예슈아께서 친히 안식일을 어기셨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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