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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31장 / 전체 45장

골로새의 판단자들

안식일이나 절기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본 분이라면 이 구절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흔히 가장 먼저 인용되는 구절이고, 많은 이들에게는 마지막 말이 되는 구절입니다.

골로새서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이나 헤오르테(절기)나 새달이나 사바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들의 일부에 대해 아무도 여러분을 크리노(심판/결정하다)하지 못하게 하라.

얼핏 보면 뜻이 꽤 분명해 보입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절기, 새달, 안식일은 이제 중요하지 않으니, 골로새 신자들은 그것들을 버렸다고 누가 죄책감을 주더라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바울은 그들에게 그만 지켜도 된다고 허락하는 셈입니다.

이것은 진심에서 나온 읽기이며,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읽기는 좀처럼 점검하지 않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누가, 왜 판단하고 있었는지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구절 자체는 그들을 밝히지 않지만, 바울은 앞뒤 구절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려 줍니다. 바울이 골로새 사람들에게 무엇을 흘려들으라고 했는지 정하기 전에, 누구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라고 했는지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문법이 말해 주는 것

헬라어로 「아무도 여러분을 크리노(심판/결정하다)하지 못하게 하라」는 메 운 티스 휘마스 크리네토입니다. 동사는 3인칭 명령형입니다. 바울은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지 않으며, 골로새 사람들에게 무엇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판결을 어떻게 대할지 일러 주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 날들을 그만 지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런 일들로 그들을 정죄하고 있으니, 그 정죄가 서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 장 전체가 한 가지 물음에 달려 있습니다. 정죄하던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골로새에서 들리던 목소리들

바울은 이미 골로새 신자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골로새서 2:8 아무도 필로소피아스(철학)와 빈 속임으로, 곧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스토이케이온(기초)들을 따라 메시아(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여러분을 포획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필로소피아스(철학)와 빈 속임 … 사람들의 전통 … 세상의 스토이케이온(기초)들.」 바울은 여기서 모세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원리에서 나와 「메시아(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16절 조금 뒤에서 바울은 이 교사들이 신자들에게 밀어붙이던 규칙들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골로새서 2:20-23 여러분이 메시아(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스토이케이온(기초)들로부터 죽었다면, 왜 세상에 사는 것처럼 도그마티조(교령을 따르다)하느냐?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잡지도 말라” — 이것들은 모두 사용으로 소멸되는 것들이니, 사람들의 엔탈마타(명령들)와 가르침들을 따른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에텔로드레스케이아(자의적 경배)와 겸손함과 몸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 안에서 소피아(지혜)의 모양은 있으나, 사르크스(육체)의 플레스모넨(충족)에 대해 어떤 귀한 가치도 없다.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잡지도 말라.」 이것은 토라의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것들을 교령이라고 부르며(「도그마티조(교령을 따르다)」), 그 출처도 밝힙니다. 「사람들의 엔탈마타(명령들)와 가르침들」입니다. 그 뒤에 있는 정신도 그려 줍니다. 「에텔로드레스케이아(자의적 경배)와 겸손함과 몸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바울이 답하던 가르침은 이것이었고, 그 가운데 모세에게서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래된 표현

「사람들의 엔탈마타(명령들)와 가르침들.」 이 표현은 바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이사야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사야 29:13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으로 내게 가까이 오고 입술로 나를 공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고, 나를 경외함이 사람의 명령을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명령을 배운 것.」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멀리 둔 채, 신앙이 습관처럼 되풀이하는 사람의 규칙이 되어 버린 백성을 꾸짖고 계셨습니다. 예슈아께서도 바리새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며 제자들을 비난했을 때 같은 말씀을 가져다 쓰셨습니다.

마가복음 7:7 그들이 사람의 계명들을 가르침으로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사람의 계명들을 가르침으로.」 그러므로 바울이 골로새의 규칙들을 「사람들의 엔탈마타(명령들)와 가르침들」이라고 부를 때, 그는 오랜 역사를 지닌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같은 뜻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얹어 놓은 규칙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계명을 뜻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판단했는지 보십시오

이제 조각들을 맞추어 16절을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교사들은 골로새 신자들을 「먹고 마시는 것이나 헤오르테(절기)나 새달이나 사바톤들의 일부에 대해」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인 저녁 식탁을 떠올려 보십시오. 식탁에는 구운 양고기, 빵, 포도주, 파이가 가득합니다. 한쪽 끝에는 요즘 엄격한 식단을 시작한 친척이 앉아, 설탕은 독이고 포도주도 독이라며 모두의 접시를 보고 고개를 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가 접시들을 나무라는 것은 그 위에 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먹지도 않는 파이 때문에 잔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골로새에서도 같은 이치가 통합니다. 몸을 억눌러야 한다고 믿던 엄격한 교사들이 먹는 일, 마시는 일, 절기, 새달, 안식일을 두고 신자들을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먹고 마시며 그 날들을 지키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지키지도 않는 절기 때문에 판단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기를 그만 지켜도 된다는 허락으로 그토록 자주 읽히는 이 구절은, 제 자리에서 읽으면 골로새 신자들이 절기를 지키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지키고 있었고, 누군가 그 때를 지킨다고 그들을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답은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지켜 주려던 것

이렇게 읽으면 그 장의 나머지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을 토라로부터 지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전통」으로부터,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잡지도 말라」는 말로부터, 지혜로워 보이지만 몸을 혹독하게 다룰 뿐인 종교로부터 지키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절기와 안식일은 신자들 쪽에 서 있고, 사람이 만든 규칙은 판단하는 자들 쪽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이 구절이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를 바꿉니다. 누군가 안식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이 구절을 인용한다면, 정직한 대답은 바울이 안식일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이 말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문장은 16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곧바로 이 날들을 「앞으로 올 것들의 스키아(그림자)」라고 부릅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실체가 오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말하는 것은 사뭇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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