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 28장 / 전체 41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양들을 위해 자기 프쉬케(혼)를 내려놓으신 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갈릴리의 한 바닷가에서 그분은, 당신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가 실패한 사람에게 몸을 돌리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신약에서 이 대화만큼 자주 설교되는 대목도 드물고, 이만큼 자주 잘못 읽히는 대목도 드뭅니다.
아가페와 필레오(사랑하다)에 관한 설교를 한 번이라도 들으셨다면, 아마 이 본문에 관한 설교였을 것입니다. 그 설교는 대개 이렇게 흘러갑니다. 설교자는 처음 두 질문에서 예슈아께서 아가파오(사랑하다)를 쓰시며 가장 높은 신적인 사랑을 구하신다고 말합니다. 부인한 일로 아직 부끄러워하던 베드로는 두 번 다 필레오로밖에 대답하지 못하는데, 설교자는 그것을 한 단계 낮은 인간적인 애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질문에서 예슈아께서 베드로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네가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사람을 만나시려고 기준을 낮추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정한 설교이고, 그렇게 설교하는 이들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성경이 세우지 않은 사다리 위에 서 있습니다. 6장에서 보았듯이, 성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요한복음 5:20)과 믿는 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요한복음 16:27)에도 필레오를 씁니다. 필레오는 아가페 아래의 낮은 계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고난받으시기 전날 밤 예슈아께서 바로 그 제자들에게 이미 주신 정의를 가지고 다시 읽어야 합니다.
세 질문
요한복음 21:15-19 그들이 아침을 먹은 후에 예슈아(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 요나의 아들아, 네가 이들보다 나를 더 아가페(사랑)하느냐?”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당신을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라고 하셨다. 예슈아(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 요나의 아들아, 나를 아가페(사랑)하느냐?”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당신을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목양하라”라고 하셨다. 예슈아(예수)께서 세 번째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 요나의 아들아, 네가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예슈아(예수)께서 세 번째로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라고 하시므로 슬퍼하여 그분께 말하기를, “주여, 당신이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당신을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양들을 먹이라. 아멘 아멘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했으나, 늙으면 네 손들을 뻗을 것이고, 다른 이가 너를 묶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나타내어 말씀하신 것이었다;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처음 두 질문에는 아가파오가, 세 번째 질문에는 필레오가 쓰였고, 베드로는 세 번 모두 필레오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대답마다 뒤에 당부가 따릅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내 양들을 목양하라”, “내 양들을 먹이라.” 각 당부는 베드로가 방금 고백한 사랑에 걸맞은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질문 자체를 바르게 들어야 하는데, 이 질문들은 따로 떼어서 들을 수 없습니다. 요한이 이미 이 질문들을 다른 대화에 묶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만찬의 밤에 묶인 대화
고난받으시기 전날 밤 만찬 자리에서, 예슈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간다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요한복음 13:36-38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하니,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것이다”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그분께 말하기를, “주여, 어찌하여 지금은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까? 당신을 위하여 내 프쉬케(혼)를 내려놓겠습니다”라고 했다. 예슈아(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네 프쉬케(혼)를 내려놓겠느냐? 아멘 아멘 내가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헬라어로 베드로의 약속은 텐 프쉬켄 무 휘페르 수 테소, 곧 「내 혼을, 당신을 위하여, 내가 내려놓겠습니다」입니다. 같은 날 밤 조금 뒤에 예슈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3 이보다 더 큰 아가페(사랑)는 없으니,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프쉬케(혼)를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프쉬케(혼)를 내려놓는 것이다.” 여기서 「친구들」은 헬라어 필로스(친구)입니다. 같은 동사 티테미(내려놓다), 같은 명사 프쉬케(혼, 목숨), 같은 짧은 낱말 휘페르(위하여)가 쓰였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가장 큰 아가페, 곧 예슈아께서 겨우 몇 시간 뒤에 말씀하실 그 사랑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예슈아께서는 그의 약속에 예언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 세 번의 부인이 예고되었고, 세 번의 부인이 일어났습니다. 대제사장의 뜰, 베드로가 숯불을 쬐며 서 있던 곳에서였습니다(요한복음 18:18). 그날 밤 그는 자기 프쉬케를 지켰고,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또 하나의 숯불 곁에서(요한복음 21:9) 세 질문이 옵니다. 요한은 두 장면 모두에 그 숫자를 적어 두 장면을 묶습니다. 세 번 말을 어긴 사람이 다시 말하라는 물음을 세 번 받습니다.
두 번째 실도 있습니다. 만찬 자리에서 베드로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물었고, 대답은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것이다”였습니다. 바닷가 대화의 맨 끝 말씀은 “나를 따르라”입니다. 13장에서 약속된 것이 21장에서 주어집니다.
처음 두 질문이 묻는 것
예슈아께서는 당신을 아가파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아가페(사랑)하면, 내 계명들을 지키라.
그리고 당신의 삶으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10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나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어 그분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는 것과 같다.
그분을 아가파오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며, 그분의 계명들은 아버지의 계명들, 곧 그분이 친히 지키시며 아버지의 아가페 안에 머무신 그 계명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를 아가페(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베드로가 그 순간 그분께 따뜻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지키셨듯이 베드로도 당신의 계명들, 곧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당신은 내가 당신을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 본문 어디에도 이 대답을 거절이나 약함의 고백으로 다루는 곳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 대답을 바로잡지 않으십니다. 그 대답 뒤에 매번 베드로에게 당부를 주십니다.
세 번째 질문이 묻는 것
세 번째 질문은 “네가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입니다. 많은 설교자는 이것을 낮춘 질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가장 큰 사랑을 말씀하신 바로 그 밤에 당신의 필로이, 곧 당신의 친구들을 정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4 내가 명하는 것들을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들이다.
예슈아 당신의 정의에 따르면, 친구는 그분이 명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며, 가장 큰 아가페는 그런 친구들을 위해 자기 혼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네가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베드로가 바로 그 친구인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명하는 것을 행하는 내 친구로서, 네 혼을 내려놓기까지 가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세 번째 질문에서 기준을 낮추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할 수 없이 높이 올리시는 것이며, 본문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 바로 뒤에 그분이 하신 말씀이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늙으면 “다른 이가 너를 묶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요한은 그 뜻을 곧바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나타내어 말씀하신 것이었다.” “당신을 위하여 내 프쉬케(혼)를 내려놓겠습니다” 하고 말했다가 그날 밤 실패한 사람이, 결국 그것을 내려놓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옵니다. “나를 따르라.”
요한은 베드로가 세 번째 질문을 어떻게 받았는지도 기록합니다. “베드로가 예슈아(예수)께서 세 번째로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라고 하시므로 슬퍼하여.” 요한은 그 슬픔의 까닭을 밝힙니다. 그분이 세 번째로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대답은 처음 두 대답보다 더 많은 말로 시작합니다. “주여, 당신이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당신을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 그는 자기 대답을 주님이 아시는 것에 기댑니다.
사랑과 앞으로의 길
그러니 바닷가의 대화는 기대를 낮추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명을 맡기시는 일이며, 베드로를 죽기까지 순종하라는 부르심으로 되돌려 세우시는 일입니다. 그가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할 일이 주어지고, 마지막에는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 보여 주시며 그 길을 걸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실패했다고 해서 더 무른 사랑의 정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정의 “너희가 나를 아가페(사랑)하면, 내 계명들을 지키라”를 받았고, 그와 함께 당부를 받았으며, 만찬 자리에서 한때 약속한 것을 끝내 이루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에 세 번 양들에 관한 당부로 대답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이라, 내 양들을 목양하라, 내 양들을 먹이라. 모든 양 떼에게는 먹이가 필요하며, 그 양들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그것도 가장 어린 양들부터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는 성경이 직접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