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 21장 / 전체 41장
내가 그녀의 마음에 대고 말하겠다
호세아 2장은 법정의 소송처럼 시작합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와 다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고 나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내」는 히브리어 이샤, 「남편」은 이쉬입니다. 이어서 죄목이 하나씩 이어집니다. 그녀는 “내가 내 연인들을 따라가겠다, 그들이 내 빵과 물, 내 양털과 삼베, 내 기름과 음료를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준 분, 그리고 그들이 바알을 위해 쓴 은과 금을 준 분이 여호와이심을 그녀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죄목이 나머지를 모두 한데 묶습니다.
호세아 2:15 그녀가 바알들에게 분향하던 날들을 따라 내가 그녀를 벌하겠다. 그녀가 코걸이와 패물로 단장하고 자기 연인들을 따라가며 나를 잊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나를 잊었기”라는 말 뒤에는 선고가 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며, 그 뒤에 오는 것은 당장 쏟아지는 무서운 진노가 아닙니다.
그녀를 타일러
호세아 2:16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녀를 타일러 광야로 이끌고, 그녀의 마음에 대고 말하겠다.
「타일러」로 옮긴 동사는 파타(설득하다, 마음을 얻다)입니다. 이 낱말은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꺾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정죄할 모든 권리를 가진 남편이 오히려 아내를 되찾으려고 나서며, 그녀를 광야로 이끌고 그녀의 마음에 대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일을 하십니다.
다시 광야로
왜 광야일까요? 그곳이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그때를 기억하셨는데, 그 말씀은 남편이 혼인 첫날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레미야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쳐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젊은 시절의 인애와 네 신혼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네가 광야,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르던 것이라.
“네 젊은 시절의 인애”에서 인애는 헤세드, 곧 언약의 한결같고 신실한 사랑입니다. “네 신혼의 사랑”은 아하바트 켈룰로타이크로, 신부 시절, 곧 약혼과 혼례의 때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것은 “광야,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르던” 신부입니다. 광야에는 밭도 추수도 없었고, 다른 연인들의 선물과 헷갈릴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마음을 흩뜨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녀를 먹이시는 남편과 그분을 따르는 신부만 있었습니다.
언약이 맺어지고 토라가 주어진 곳도 광야, 곧 시내 산이었습니다. 모세가 언약의 책을 백성의 귀에 낭독했을 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기억하는 신부 시절은 신부가 남편의 말씀을 받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때입니다. 광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첫 대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그녀를 그곳으로 다시 데려가실 것이며, 그곳 자체도 달라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호세아 2:17 거기서 내가 그녀의 포도원을 돌려주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 그녀가 거기서 자기 젊은 날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오던 날처럼 응답할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처음 패배한 뒤 아간이 돌에 맞은 곳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화를 끼쳤느냐? 오늘 여호와께서 네게 화를 끼치실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곳은 아골 골짜기라 불렸습니다. 아골은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바로 그 골짜기를 「소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와 심판으로 기억되던 곳이 새로운 시작의 입구가 되고, 거기서 그녀는 이집트에서 올라오던 때처럼 응답할 것입니다.
마음에 대고 말하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 세 낱말, 베디바르티 알 리바(내가 그녀의 마음에 대고 말하겠다)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거나 위로하려고 하는 말에 이 표현을 씁니다.
세겜이 디나를 데려다 욕보인 뒤에, 본문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 소녀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녀」는 히브리어 나아라입니다.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룻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룻은 그가 자기를 위로하고 “당신의 여종 마음에 닿게 말씀해 주셨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심판 뒤에 자기 백성에게 위로를 보내실 때, 선지자는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사야 40:2 예루살렘의 마음에 말하고 그에게 외쳐라. 그의 복무가 끝났고 그의 죄악이 갚아졌으며, 그가 자기 모든 죄로 인해 여호와의 손에서 갑절을 받았다고 하라.
이것은 판결문을 읽는 재판관의 말이 아니라, 마음을 되찾으려는 연인의 말입니다. 마음을 얻어야 하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까이에서 건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잊은 신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바알”이 아니라 “내 남편”
그녀가 다시 돌아오면, 그분을 무엇이라 부르게 될까요?
호세아 2:18-19 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다.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부르고, 다시는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녀의 입에서 제거하겠으니, 그들이 다시는 그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히브리어 바알은 주인 또는 소유주를 뜻하며, 남편을 가리키는 평범한 낱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섬기기도 했던 가나안 신의 이름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녀가 다시는 자기를 “내 바알”(바알리)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녀는 그분을 이쉬, 곧 “내 남편”이라 부를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내 남자」입니다.
이쉬는 창세기 2장 23절의 낱말로, 거기서 남자는 이쉬라 불리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취해졌기 때문에 이샤라 불립니다. 여호와께서는 소유주를 뜻하고 다른 신에게 붙여졌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첫 남편의 이름, 곧 한 살(바사르)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신부는 소유의 말이 아니라 혼인의 말로 그분께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더 나아가 그녀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제거하셔서, 그녀가 한때 따라갔던 연인들의 이름이 “다시는 그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가서에서 들은 바로 그 질투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남과 나누지 않는 사랑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다른 이름들을 치워 버립니다.
그 말씀이 이르는 곳
그녀의 마음에 대고 하시는 이 모든 말씀은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언약으로 끝납니다. 몇 구절 뒤 호세아 2:21-22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녀를 “영원히” 자기와 약혼시키시되, 의와 판결과 인애와 긍휼로, 그리고 신실함으로 약혼시키시며, 그 문장은 “그러면 네가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다”로 끝납니다. 광야, 소망의 문, 새 이름, 약혼이 모두 한곳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남편을 아는 신부입니다.
이렇게 이 장은 하나님께서 불신실함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분은 그것을 남김없이 드러내시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십니다. 그러고는 선고가 내려질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이끄시고, 그녀의 마음에 대고 말씀하시며, 괴로움의 골짜기에 소망의 문을 여시고, 자기를 부를 새 낱말을 가르치시고, 그녀와 다시 약혼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백성은 계속 등을 돌렸습니다. 그 세월 한가운데서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마음에 관해 하신 말씀을 기록하는데, 그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애틋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