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 8장 / 전체 41장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모든 것은 한 가지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 사랑은 대상으로 이름이 정해지는 사랑이며, 그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시고, 그분은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 사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도 거기서부터 시작하게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먼저 말하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분명히 밝힙니다.
요한일서 4:19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니,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결코 먼저 내딛는 걸음이 아닙니다. 언제나 대답입니다.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건너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사랑하셨는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신명기 7:7-8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모하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모든 백성보다 많아서가 아니었으니,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 가장 적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하던 집, 곧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속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모하고”는 하샤크(사모하다)이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는 아하바(사랑)입니다. 4장에서 세겜의 욕망을 말하던 바로 그 두 낱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낱말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과 그 까닭입니다.
모세는 먼저 그 까닭이 무엇이 아닌지부터 말했습니다. “너희가 모든 백성보다 많아서가 아니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가 많아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모든 백성 중에 가장 적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모세는 참된 까닭을 밝히는데, 그 까닭은 온전히 하나님 쪽에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까닭은 온전히 하나님 자신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셨고, 맹세하셨기 때문에 그 맹세를 지키셨습니다.
그 사랑은 멀찍이서 품기만 하는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랑은 움직였습니다.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하던 집, 곧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두신 그때, 그 백성은 이집트에서 종이었습니다. 그분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고, 그다음에 구속하셨습니다.
영원한 사랑
예레미야 선지자는 같은 사랑을 1인칭으로 하시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예레미야 31:3 여호와께서 옛적에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노라.
“영원한 사랑”은 아하바트 올람(영원한 사랑)으로, 시간이 닿는 데까지 닿는 사랑입니다. 마지막 줄의 동사 “이끌었노라”는 마샤크(끌다)로, 끌어내다,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백성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길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그들을 이끄셨고, 그들을 이끄신 줄은 그분의 헤세드(인애), 곧 출애굽기 20장 6절과 신명기 7장 9절의 변함없는 언약의 신실함이었습니다. 그들을 택한 사랑이 그들을 계속 집으로 끌어당기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들이었을 때
신약도 아들을 보내신 사랑에 대해 같은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들이었을 때 메시아(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분 자신의 아가페(사랑)를 보여주셨다.
“보여주셨다”는 쉬니스테신(드러내 보이다)을 옮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내놓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보여 주실 때도 그분이 고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들이었을 때”입니다. 바울은 메시아께서 이미 하나님께 돌아선 사람들이나 그분을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돌아섬이 있기 전에 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모세가 말한 것과 같은 순서이며, 바울은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들은 그 영원한 사랑이 일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끗해지고 계명을 배워서 그분 앞에 나설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종들을 이끌어 내시기 전에 그들에게 사랑을 두셨고, 죄인들이 믿기 전에 그들을 위해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선물로 의롭게 되며,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고 계명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아직 죄인이었을 때 주어진 사랑을 누구도 벌어서 얻을 수 없고, 아가서가 말하듯 자기 집의 온 재물을 다 주어도 “도리어 멸시를 받으리라” 하는 사랑을 누구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은 이 모든 것을 그의 첫째 편지 몇 절에 담습니다.
요한일서 4:8-10 사랑하지 않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났으니 —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려 하심이다. 이 안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 죄들을 위한 속죄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요한은 하나님께 사랑이 있다거나, 그분이 이따금 사랑을 보이신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 그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10절 “이 안에 사랑이 있으니”는 요한일서 5장 3절의 정의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이니”와 아주 비슷하게 짜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뒤따르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우리 죄들을 위한 속죄로 그분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이 말씀은 경고로 시작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함께 서 있으며, 그분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은 할 말이 많습니다.
순서는 하나로 이어집니다
이제 이 순서를 한 줄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사랑은, 요한이 불과 몇 절 뒤에서 말하듯,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요한일서 5:3). 이 순서는 은혜와 계명을 서로 맞세우지 않습니다. 차례대로 세웁니다.
토라도 같은 순서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계명을 하나라도 주시기 전에,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셨는지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다.
구속이 먼저이고 계명이 뒤따릅니다. 신명기 7장도 그렇습니다. 8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백성을 사랑하시고 구속하셨는지 말하고, 곧바로 9절이 이어집니다. 그분은 “신실하신 신(엘)이시니,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미츠바)들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언약(베리트)과 인애(헤세드)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결코 낯선 사람들에게 내미는 요구가 아닙니다. 이미 사랑을 받았고, 수가 적을 때 이미 택함을 받았고, 종이었을 때 이미 구속을 받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이미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대답이며, 그 대답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대답은 목숨을 내놓는 데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그 어떤 사랑보다 큰 사랑을 말씀하셨고, 아가페와 필레오를 함께 묶는 말씀으로, 곧 그분이 명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과 자기 목숨을 주는 것으로 그 사랑을 정의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