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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로 · 40장 / 전체 41장

영과 혼과 몸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 그는 얍복에서 다친 허벅지로 절뚝거리고 있었고, 생애 마지막에는 자기가 살아온 삶을 담은 세 이름을 말했습니다. 그의 절뚝거림과 그의 말이 곧 그의 증언이었습니다. 야곱 안에 계셨던 같은 영께서 이제 믿는 모든 이 안에 거하시며, 메시아께서는 그들이 육체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동안 그들 안에 사십니다. 물음은 그 거하심이 사람의 어느 부분을 쓰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를 맺는 기도에서 이에 대답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안의 하나님 자신이 여러분을 올로텔레이스(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파루시아(오심-임재) 안에서 여러분의 프뉴마(영)와 프쉬케(혼)와 몸이 온전히 흠 없게 보전될지어다.

온전한 사람

바울은 이 구절에서 세 가지를 듭니다. 「여러분의 프뉴마(영)와 프쉬케(혼)와 몸」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뉴마, 프쉬케, 소마입니다. 그는 이 셋을 나란히 놓으며, 서열을 매기지도 않고 어느 하나를 빼지도 않습니다.

이 셋 앞에 그는 온전함을 말하는 낱말 둘을 둡니다. 첫째는 기도의 첫머리 「여러분을 올로텔레이스(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에 있으며, 헬라어 올로텔레이스는 온전히, 속속들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세 명사 바로 앞에 있는 홀로클레론으로, YLV는 이를 「온전히」로 옮겼습니다. 어느 부분도 빠짐없이 모든 부분이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뜻은 분명합니다. 셋 가운데 하나만 쓰이고 나머지는 밀려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만 거룩하게 하시고 몸은 내버려 두시지 않으며, 혼이 제 갈 길을 가는 동안 몸만 지키시지도 않습니다. 주 예슈아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그 전체가 거룩하게 되고 그 전체가 보전됩니다.

바울의 기도는 사람의 어느 부분도 하나님의 일하심 밖에 두지 않습니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손발로 하는 일은, 하나는 하나님께 속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맡겨진 별개의 두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셋을 하나로 묶으며, 안에 거하시는 메시아께서는 사람 전체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질그릇 속의 보물

사람 전체가 쓰인다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어떤 그릇인지 묻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고린도후서 4:6-7 이는 어둠에서 빛이 비추라 하신 하나님께서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 영광의 그노시스(지식)의 빛을 주시려고 우리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 속에 비추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지고 있으니, 이는 뒤나미스(능력)의 뛰어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게 하려 함이다.

보물은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비추신 빛이며, 그것을 담은 그릇은 질그릇, 곧 금이 가고 이가 빠지고 닳아 없어지는 흔한 흙으로 빚은 그릇입니다.

바울은 그 까닭을 말합니다. 「뒤나미스(능력)의 뛰어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게 하려 함이다」. 약한 것에서 큰 것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 큰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잘못 알 수 없습니다.

야곱도 같은 가르침을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자기 힘으로 얻어 낸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 주는 절뚝거림이었습니다. 믿는 이들도 같은 그릇에 보물을 담고 다니며, 그들을 통해 드러나는 능력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숨길 수 없는 빛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 거하심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요? 예슈아께서는 산에서 가르치시기 시작할 때 이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있는 도시는 숨길 수 없다.

마태복음 5: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서 비추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한 행실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는 누가 가리키든 말든 멀리서도 보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바로 그런 빛이며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서 비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그 빛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선한 행실들」입니다. 제자들에게서 비치는 빛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보입니다. 또 그 빛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선한 행실은 그것을 하는 사람에게 눈길을 끌지 않습니다. 그를 지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붙잡는 순서의 모든 단계와 같은 순서입니다. 행실은 무엇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삶이 비쳐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는 이들이 그분의 작품이며, 그들이 그 안에서 행하도록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들을 위해 지음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슈아께서는 다른 이들이 보는 그 행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증인이 되는 능력

들려 올라가시기 전에 예슈아께서는 이 증언의 능력이 어디서 올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 그러나 하기오(거룩한) 프뉴마(영)가 너희 위에 임하시면 너희는 뒤나미스(능력)를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능력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영과 함께 오며, 그 목적은 증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는 증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4:7에서 쓴 낱말, 뒤나미스와 같은 낱말입니다. 능력의 뛰어남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 능력은 질그릇을 통해 일하며 그들을 증인으로 만들고, 그 증언은 선물이 미치는 곳까지, 곧 모든 육체에게, 모든 지파와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까지 이릅니다.

야곱의 증언과 우리의 증언

야곱은 얍복의 그 밤을 두 가지로 증언했습니다. 평생 지니고 다닌 절뚝거림과, 마지막에 말한 세 이름입니다. 그의 몸과 그의 말이 모두 그가 만난 분을 증언했습니다.

이제 그 증언에 쓰이는 것은 영과 혼과 몸 전체입니다. 우리가 안에 모신 예슈아께서 영과 혼과 몸을 통해 직접 일하시고, 그 일하심이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며, 그 빛이 예슈아 메시아를 증언합니다.

이 가운데 공로로 얻는 것은 하나도 없고, 놀고 있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선물로 위로부터 태어납니다. 자기가 만난 그분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감사함으로 문을 지나 들어가고, 먼저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신 분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거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처를 두신 분께서 그의 전부를 통해 빛을 비추시어, 다른 이들이 보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야곱이 처음으로 한 그 말은 그의 임종 자리에서부터 지금 같은 구속자를 부르는 모든 이의 삶에까지 이르며,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놓인 그 줄 전체는 그 이름으로 돌아갑니다. 하고엘, 곧 구속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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