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Homes Inc.는 미국 501(c)(3) 등록 비영리 사역 단체입니다501(c)(3) 비영리 단체 연락처English
BIBLE HOMES예슈아 직역성경 (YLV) 무료로 받기
메뉴

얼굴과 얼굴로 · 39장 / 전체 41장

우리가 거할 곳을 만들 것이다

메시아의 영은 선지자들 안에 계셨고, 야곱의 마지막 말에는 그 영이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신 흔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믿는 이들에게는 무엇이 다른지 묻는 것은 당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을 때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흐릿하게 두지 않으며,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을 나란히 놓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과 지금

야곱지금
나타나신 방식잠시 취하신 모습 (창세기 32:25)영원히 취하신 사람의 본성 (요한복음 1:14)
값아직 치르지 않음, 기다림 (창세기 49:18)치름 (요한계시록 5:9)
안에 계신 분메시아의 영 (베드로전서 1:11)같은 분 (로마서 8:9)
부어 주신 범위부르신 이들에게모든 육체 위에 (사도행전 2:17)
부르는 이름하고엘 (창세기 48:16)같은 이름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어떤 것은 실제로 달라졌음을 보여 주고, 어떤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나타나신 방식과 값은 달라졌습니다. 야곱은 잠시 취하신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룻밤 그와 씨름하고는 떠나간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믿는 이들은 사람의 본성을 영원히 취하신 아들을 압니다. 야곱은 아직 값이 치러지지 않은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믿는 이들은 어린양의 피로 이미 치러진 값을 돌아봅니다.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자기를 구속하신 분을 하고엘, 곧 구속하시는 분이라 불렀고, 지금 믿는 이들은 자기 피로 사람들을 사서 하나님께 드린 어린양(요한계시록 5:9)을 같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레위기의 고엘, 곧 값을 치르는 친족입니다.

안에 계신 같은 분

안에 계신 분은 같습니다. 베드로는 선지자들 안에 계신 메시아의 영을 말했고,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바로 그 표현을 쓰면서 선을 긋습니다. 메시아의 영이 없는 사람은 누구든 “그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9 그러나 하나님의 프뉴마(영)가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여러분은 사르크스(육체) 안에 있지 않고 프뉴마(영) 안에 있다. 누구든 메시아(그리스도)의 프뉴마(영)를 가지지 않으면 그분의 사람이 아니다.

선지자들 안에 계셨던 메시아의 영이, 그분께 속한 모든 이 안에 거하시는 메시아의 영이십니다. 영은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분이십니다.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심

넓어진 것은 영을 주시는 범위입니다. 야곱의 시대에 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위해 부르신 이들, 곧 족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파라오조차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던 요셉 같은 사람들 안에서 일하셨습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일어서서 선지자 요엘의 말을 인용하여 방금 일어난 일을 풀어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프뉴마(영)를 모든 사르크스(육체) 위에 부어 주겠으니, 너희 아들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볼 것이고, 너희 노인들은 꿈들을 꿀 것이다;

“모든 사르크스(육체) 위에.” 몇몇에게 주어졌던 것이 이제는 아들과 딸, 젊은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믿는 모든 이에게 부어졌습니다. 성육신 뒤에 달라진 것은, 머무심이 약속으로 굳게 못 박혀 믿는 모든 이에게 부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와서 머물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넘겨지시던 밤에 그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3 예슈아(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아가페(사랑)하면, 내 말씀을 지킬 것이고, 내 아버지께서 그를 아가페(사랑)하실 것이며, 우리가 그에게 와서 그와 함께 모네(거할 곳)를 만들 것이다.

이 구절의 마지막 말씀은 “그와 함께 모네(거할 곳)를 만들 것이다”입니다. 헬라어 모네는 사람이 머무는 곳을 뜻합니다. 이 낱말은 요한복음 15장과 요한일서 3장에 줄곧 나오는, 머문다는 뜻의 동사 메노와 같은 어근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무는” 말씀이고, 예슈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시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은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와 아들께서 예슈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셔서 그와 함께 모네를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얍복의 그 사람이 하룻밤 나타났다가 해 뜰 무렵 절뚝거리는 야곱을 두고 떠나갔듯이 하나님께서 잠깐 나타나셨다가 가시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머무시리라는 뜻입니다. 방문이 거처가 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5:10이 하나로 묶은 것들도 함께 묶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아가페(사랑)하면, 내 말씀을 지킬 것이고.” 사랑과 지킴과 머묾이 다시 한번 나란히 있습니다. 예슈아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께서 그 안에 거처를 두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메시아

바울은 이것을 이제 알려진 신비라 부르며, 한 줄로 그 이름을 밝힙니다.

골로새서 1:27 하나님은 이방인들 가운데 이 뮈스테리온(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셨으니, 그 뮈스테리온(신비)은 여러분 안에 계신 메시아(그리스도), 곧 영광의 엘피스(소망)이시다.

그 신비는 “이방인들 가운데” 알려졌습니다. 그 영이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안에 계셨던 바로 그 메시아께서, 이제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믿는 사람들 안에 거하십니다. 요한계시록 5:9의 노래가 말한 그대로, 모든 지파와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입니다.

한 몸 안의 두 삶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거하심이 안에서 보면 어떤 모습인지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20 나는 메시아(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 이제 내가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시제가 중요합니다. 두 동사가 모두 현재형입니다. 메시아께서 그의 안에 사시고, “이제 내가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사는 것”도 이어집니다. 바울은 메시아께서 한때 자기 안에 사셨으나 이제는 떠나셨다고 하지 않고, 자기가 더 이상 육체 안에서 살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두 동사가 동시에 나란히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그 안에 사시는 삶과,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육체 안에서 사는 삶, 이 두 삶이 같은 몸 안에서 함께 이어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구절의 마지막 말씀에서 이 모든 것의 바탕을 밝힙니다. 그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 안에 거하시는 분은 먼저 그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붙잡는 순서의 모든 단계와 같은 순서입니다. 값이 먼저 치러졌고, 거하심은 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에 계신 영도 같고, 이름도 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나타나신 방식과 값을 치르심, 그리고 선물이 미치는 범위입니다. 그 선물은 이제 떠나지 않는 약속으로 믿는 모든 이 위에 머뭅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어떤 사람 안에 사신다면, 그 삶은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사람 전체, 곧 그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들어 그 전부를 위해 기도합니다.

함께하기

성경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운동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