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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로 · 34장 / 전체 41장

나는 문이다

둘째 단계에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한 분을 붙들고 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마땅한 질문이 생깁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이 힘써 밀고 들어간다면, 그는 무엇을 밀고 있는 것입니까? 그 나라는 문을 부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잠긴 집입니까? 예슈아께서는 아무도 그분의 양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신 요한복음의 바로 그 장에서 이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9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며, 들어가고 나가며 꼴을 찾을 것이다.

한 분이신 문

이 짧은 구절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첫째, 문은 벽이 아닙니다. 벽은 기어오르거나 부수고 지나가야 합니다. 문은 일부러 만들어 놓고, 그리로 들어오기로 된 이들에게 열어 둔 입구입니다. 예슈아께서 자신을 문이라 하실 때, 그분은 사람들이 힘으로 이겨 내야 할 장애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련된 입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절 어디에도 그 문을 억지로 열라는 말은 없습니다.

둘째, 이 문은 물건이 아니라 한 분입니다. 예슈아께서는 「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어디 있는지 내가 알려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어떤 방법이나 의식이나 일련의 절차가 아닙니다. 예슈아 그분 자신입니다.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분을 통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11:12의 밀고 들어감을 제자리에 둡니다. 태어난 사람은 밀고 들어가고, 붙듭니다. 그러나 그가 붙드는 것은, 야곱이 얍복에서 그 사람을 붙들었듯이, 한 분입니다. 문 자체는 열려 있습니다.

구원받을 것이다

이 구절은 또 들어가는 사람에게 “구원받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동사는 수동태입니다. 들어가는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헬라어 동사는 소조입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예슈아라 하라고 하면서 “이는 그분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을 때 마태가 쓴 바로 그 동사입니다. 마태는 그 문장에 「그분 자신」이라는 뜻의 아우토스를 넣어, 그 이름 첫머리의 요드를 풀어 보여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예슈아께서, 그분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과 이 문은 같은 것을 말합니다.

구절의 나머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삶을 그립니다. 들어가는 사람은 “들어가고 나가며 꼴을 찾을 것이다.” 문을 지나 들어온 양은 우리에 갇혀 버려지지 않습니다. 목자의 돌봄 아래 드나들며 필요한 것을 찾습니다. 이 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지, 갇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대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들어가는가

문이 열려 있고 억지로 열 필요가 없다면, 사람은 어떻게 그 문을 지나 들어갑니까? 짧은 시편 하나가 답을 줍니다. YLV 에서 이 시편의 표제는 「감사의 시」입니다.

시편 100:3-4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라. 그분께서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분의 것이며, 그분의 백성이요 그분이 기르시는 양 떼다. 감사함으로 그분의 문에, 찬양함으로 그분의 뜰에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라.

3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분이 기르시는 양 떼」라고 부릅니다. 예슈아께서 그분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꼴을 찾을 것」이라고 하실 때 쓰신 것과 같은 그림입니다. 그다음에 바로 그 줄이 나옵니다. “감사함으로 그분의 문에.” 여기서 「감사」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토다로, 시편 표제에 있는 것과 같은 낱말이며, 줄의 나머지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찬양함으로 그분의 뜰에 들어가라.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라.” 이 시편은 예배하는 사람에게 성문을 쳐부수라거나 문턱에서 자기 자격을 증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며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러니 문 앞에서 요구되는 것은 힘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힘에도 순서 안에 제자리가 있습니다. 자기가 만난 그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의 붙듦입니다. 그러나 들어가는 일 자체는 감사로 합니다. 들어가는 길을 다른 분이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해 자리가 마련된 집에 도착한 손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문은 열려 있고 주인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님은 자물쇠를 부수지도 않고, 하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밀고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들어오며, 문턱을 넘으면서 하기에 알맞은 말은 「고맙습니다」입니다. 그의 감사가 문을 여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열려 있던 문에 대한 알맞은 대답입니다.

야곱의 마지막 고백

이 시편 곁에 야곱의 마지막 고백이 있습니다.

창세기 49:18 여호와여, 내가 당신의 구원(예슈아h)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문 앞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구도 아니고 흥정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돌아서서, 평생 바라 온 것이 여호와 자신의 구원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9의 문이 물건이 아니라 한 분이듯, 야곱이 기다린 것도 어떤 생각이 아니라 한 분이었습니다. 생애 끝에 야곱이 구원에 관해 한 말은 씨름이 아니라 고백이었고, 그 구원의 주인이신 분께 드린 말이었습니다.

앞을 바라본 기다림, 뒤를 돌아보는 우리

야곱의 자리와 우리의 자리 사이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야곱은 값이 치러지기 전에 앞을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돌아봅니다. 어린양은 죽임을 당하셨고, 그분의 피로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 다른 점 때문에 문 앞의 감사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집니다. 야곱은 아직 기다리면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값이 치러진 뒤에 문 앞에 나아오며, 문이신 그분이 바로 그 값을 치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셋째 단계는 분명합니다. 위로부터 태어나 자기가 만난 그분을 붙드는 사람은, 바로 그분이신 문을 통해 감사하며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는 공로로 얻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은 문이신 그분이 여셨고,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가는 것이 순서의 끝은 아닙니다. 문은 집 안으로 이어지고, 들어온 이들은 거기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예슈아께서 넘겨지시던 밤에,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한 구절의 문법은 그분의 몫과 우리의 몫을 놀라운 순서로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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