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28장 / 전체 41장
구속할 만큼 부요한
예슈아라는 이름은 「그」, 곧 행하시는 분을 말하는 요드로 시작합니다. 앞에 와우가 붙은 꼴은 그분이 이미 행하셨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 그러나 고엘의 율법은 구속자에게 행하려는 뜻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함께 붙들린 두 조건
레위기 25장의 고엘 율법은 형편이 어려워진 한 형제로 시작하며, 그에게 오는 이는 “그의 고엘(구속자), 곧 그에게 가까운 이”입니다(레위기 25:25). 이것이 첫째 조건입니다. 그는 친족이어야 합니다. 몇 절 뒤에 율법은 둘째 조건을 더합니다. 자기 몸을 판 사람을 구속할 수 있는 이들 가운데 마지막 경우는 이렇습니다. “그의 손이 넉넉해지면 그는 무름을 받는다”(레위기 25:49). 거기 쓰인 히브리어 동사 히시가는 “닿다”라는 뜻의 나사그에서 왔고, 그 주어는 손입니다. 그의 손이 닿았다, 곧 그에게 값을 치를 만큼 멀리 미치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두 조건을 나란히 둡니다. 구속자는 가까워야 하고, 값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룻기는 첫째 조건만 채워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줍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은 집안에서 마땅한 자리에 서 있었으나 “나는 무를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룻기 4:6). 교훈은 분명합니다. 값을 감당할 힘 없이 자리만 있어서는 아무도 구속하지 못합니다. 고엘의 자리는 신분과 능력을 함께 요구합니다.
욥기와 이사야에 있는 같은 세 글자
4권 「단 하나의 표적」에서 우리는 예슈아라는 이름의 뒤쪽 절반이 신, 와우, 아인이라는 히브리어 자음 셋으로 쓰는 슈아이며, 슈아가 그 자체로 한 이름으로 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 자음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가지 방식으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 전체에서 모아 보면, 이 자음들로 쓴 낱말은 세 갈래로 나뉩니다. 구원의 낱말,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낱말, 그리고 부와 지위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고엘과 맞닿는 것은 셋째 갈래입니다. 같은 세 자음으로 쓰고 모음만 조금 달리 읽는 낱말 쇼아입니다. 이 낱말은 구원하는 행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신분을 가리킵니다. 두 구절이 그 뜻을 보여 줍니다.
욥기 34:19 그는 고관의 낯을 보지 아니하시고,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나니, 다 그의 손이 지으신 자들이기 때문이니이다.
YLV는 여기서 쇼아를 “부자”로 옮기며, 이 구절은 그를 달, 곧 “가난한 자”와 맞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넉넉히 가진 사람을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 더 높이 보지 않으십니다. 이 구절에서 쇼아는 풍족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사야 32:5 어리석은 자가 다시는 고귀하다 불리지 않고, 비열한 자가 존귀하다 일컬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쇼아는 구절의 마지막 낱말이며, YLV는 이것을 “존귀하다”로 옮깁니다. 이 구절은 서로 짝을 이루는 두 부분으로 짜여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더 이상 “고귀하다” 불리지 않습니다. 뒷부분에서는 비열한 자가 더 이상 쇼아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쇼아는 앞부분에서 “고귀하다”가 차지한 자리에 서 있고, 성품이 낮은 사람인 비열한 자와 맞세워져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쇼아는 존귀하고 너그럽고 고귀한 사람입니다.
한 구절에서는 이 낱말이 가난과 맞서고, 다른 구절에서는 비천함과 맞섭니다. 쇼아라는 낱말 하나가 풍족함과 고귀함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름에 담긴 둘째 조건
구속자는 가까워야 하고, 그의 손은 넉넉히 닿아야 합니다. 구속은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값을 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그는 그 값을 치를 만한 신분이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형제를 아무리 사랑해도 형제의 밭을 되살 수 없습니다.
예슈아라는 이름 뒤쪽의 세 자음은 쇼아, 곧 넉넉히 가진 사람이요 고귀한 사람을 가리키는 낱말의 자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의 뒤쪽 절반은 구원하는 일과, 그 일을 끝까지 해낼 만큼 부와 지위를 넉넉히 가지신 분을 함께 붙듭니다. 앞의 요드와 함께 놓으면 이 이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구원하시며, 구원하시는 그분은 그 일을 하실 만큼 부요하고 고귀하십니다.
여기가 고엘의 둘째 조건이 이름 자체 안에 서 있는 자리입니다. 룻기 4장의 친족은 자리는 있었으나 값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기다린 분의 이름은 그분이 둘 다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2장의 친족 됨, 곧 그분이 육체와 피에 함께 참여하신 것은 첫째 조건에 답합니다. 슈아에 담긴 풍족함과 존귀함은 둘째 조건에 답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과 살아 계신 구속자
이 자음들로 쓴 둘째 갈래의 낱말은 성경의 한 장 안에서 고엘과 나란히 섭니다.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낱말은 욥기에 자주 나옵니다. 동사가 욥기에 여덟 번 나오고,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뜻하는 명사 슈아는 욥기에만 나옵니다. 19장에서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 19:7 보라, 내가 ‘포악하다’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고, 도움을 외쳐도 미쉬파트가 없도다.
“도움을 외쳐도”에 해당하는 동사는 같은 세 자음에서 온 샤바입니다. 욥은 부르짖지만, 그를 위한 미쉬파트(판결)는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 열여덟 절 뒤에서 같은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나의 고엘이 살아 계시니”라고 말합니다(욥기 19:25). 거기 나오는 낱말이 바로 고엘, 곧 구속자입니다.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으나 응답을 얻지 못한 사람이, 같은 장에서 살아 계신 고엘을 말합니다. 욥은 그 구속자가 자기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실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속자가 살아 계시며, 마지막에 그분이 티끌 위에 서시리라는 것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름 뒤쪽의 자음들은 본문이 늘 눈앞에 두는 세 가지를 한데 모읍니다. 구원, 구원이 필요한 이의 부르짖음, 그리고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의 부와 존귀입니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이 글자들로 쓴 낱말들이 히브리어 본문에서 실제로 쓰이는 방식입니다.
이름의 앞머리는 「그」라고 말합니다. 뒤쪽은 구원을, 그리고 그 구원을 감당할 수 있는 풍족함과 고귀함을 말합니다. 히브리어 글은 그 글자 속에 그림 하나를 더 담고 있으며, 그 그림은 두 이름 안에 있습니다. 규의 지파인 유다, 그리고 그 지파의 왕인 다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