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22장 / 전체 41장
규가 떠나지 않으리니
야곱은 생의 마지막에 세 번, 아들들에게서 눈을 돌려 그들 너머에 계신 분을 바라보았고, 그때마다 다른 낱말을 썼습니다. 첫째 낱말인 창세기 48:16의 고엘(구속자)은 이미 이루어진 건지심을 돌아봅니다. 창세기 49:18의 예슈아h(구원)는 그가 평생 기다린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내다보는 이름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 이름은 유다에게 선포되며, 사자와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를 함께 데려옵니다.
야곱이 유다에게 말하다
야곱은 아들들을 한 무리로 묶어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불러 모은 뒤 한 사람씩 차례로 말했습니다.
창세기 49:1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말했다. “모여라. 너희에게 후일에 너희가 당할 일을 일러 주겠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는 엄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야곱은 넷째 아들에게 이르렀습니다.
창세기 49:8-10 유다야, 너는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자다. 네 손이 네 원수들의 목을 잡을 것이며,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너에게 절할 것이다. 유다는 사자 새끼다. 내 아들아, 네가 사냥한 것을 먹고 올라갔구나. 그가 웅크리고 엎드림이 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일으키겠느냐? 규가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니 아드 실로가 오시리라,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리라.
첫 줄은 유다라는 이름 자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레아는 그를 낳았을 때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겠다”라고 말하고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습니다(창세기 29:35). 이제 그의 아버지가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자다”라고 말합니다. 뒤따르는 낱말은 모두 통치자의 것입니다. 원수의 목을 잡는 손, 절하는 형제들, 누구도 감히 일으키지 못하는 어린 사자입니다. 그다음에 축복 전체의 무게를 실은 구절이 나옵니다.
통치의 두 도구
10절에서 중요한 첫 낱말은 셰벳, 곧 규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낱말은 문장의 주어로 홀로 섭니다. “규가 유다에게서 떠나지 않고.” 규는 왕이 손에 쥐는 막대입니다. 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무 값도 치르지 않습니다. 규는 다스립니다.
둘째는 YLV가 “통치자의 지팡이”로 옮긴 낱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메호케크이며, “새기다” 또는 “적어 넣다”라는 뜻의 어근 하카크에서 온 분사입니다. 분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므로, 이 낱말은 “새기는 자”라는 뜻이고, 이런 문맥에서는 법령을 새겨 적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의 지팡이는 법을 세우는 자의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도 규처럼 통치의 도구이며,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9절의 사자도 같은 그림에 속합니다. 사냥한 것을 먹고 올라와 웅크리고 엎드린 사자 새끼, 구절이 “누가 그를 일으키겠느냐?”라고 묻는 그 사자는 아무도 감히 맞서지 못하는 힘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래서 8절부터 10절까지 본문 전체는 한 가지 말을 합니다. 찬양, 승리, 절함, 사자, 규, 지팡이입니다. 이것은 왕권의 말입니다.
이 본문에 없는 것도 그만큼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친족, 되사기, 값, 혈연을 가리키는 낱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다의 축복 어디에도 유다를 고엘로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나오는 것은 다스릴 권리이지, 가까운 친족의 자격이 아닙니다.
까지
그 통치는 끝없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YLV는 본문 안에 작은 히브리어 낱말 하나를 그대로 남겨 둡니다. “아드 실로가 오시리라.” 아드는 “까지”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시간에 경계를 긋습니다. 규와 지팡이는 어느 때까지 유다에게 머물며, 그때는 실로라 불리는 이가 오는 때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은 막연한 바람을 훨씬 넘어섭니다. 이것은 끝이 정해져 적힌 선언입니다. 유다는 통치의 도구를 지킬 것이고, 누군가 올 때까지 그것은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야보로, 앞에 와우가 붙지 않은 미완료형입니다. 이런 꼴의 히브리어 동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바라보며, 여기처럼 약속 안에서는 앞으로 올 일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자기가 본 도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오실 분을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구절은 그가 올 때 일어날 일을 말합니다.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리라.” 이 낱말은 백성들, 곧 복수입니다. 여기까지 축복은 유다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제는 오시는 분에게 백성들이 복종한다고 말합니다. 유다가 쥔 통치는 그분께 이를 때까지 유다가 지니는 것이며, 그분께 돌아갈 복종은 그의 형제들만의 것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실로를 달리 읽는 견해
반대쪽 근거도 공정하게 밝혀야 합니다. 사본 전통은 실로라는 낱말에서 갈라집니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히브리어 본문, 곧 마소라 본문은 이 낱말을 이름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토라의 옛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은 이 낱말을 요드 없이 같은 글자로 된 셸로, 곧 “그의 것”으로 읽고, 그 줄을 “그를 위해 쌓아 둔 것들이 올 때까지”라는 뜻으로 옮깁니다. 그렇게 읽으면 실로는 이름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 차이이며, 손을 저어 넘겨 버릴 일이 아닙니다. 이 책은 YLV 구약이 번역한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으로 이 구절을 읽지만, 이 책의 논증이 이 낱말 하나에 걸려 있지는 않습니다. 논증은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가 유다에게 속하며, 누군가 올 때까지 그에게 머문다는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구절의 그 부분은 어느 읽기를 따르든 똑같습니다. 오시는 분이 이름으로 불리든, 이것들이 속한 분으로 그려지든, 규는 여전히 규이고 지팡이는 여전히 지팡이이며, 둘 다 여전히 통치를 말합니다.
두 계통
이것을 보고 나면 성경의 두 계통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은 이 두 계통이 한 분 안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두 계통은 서로 다른 물음에 답하고, 서로 다른 본문에 기대며, 서로 다른 낱말을 씁니다.
| 사자의 계통 | 고엘의 계통 | |
|---|---|---|
| 본문 | 창세기 49:8-10 | 레위기 25장, 창세기 48:16 |
| 물음 | 그분은 어느 지파에서 오시며, 누가 다스리는가? | 누가 구속할 수 있으며, 무슨 값으로 구속하는가? |
| 낱말 | 셰벳, 메호케크, 사자 | 가알, 셰에르 바사르 |
| 조건 | 유다의 혈통 | 같은 살에서 난 살붙이, 그리고 값을 치를 힘 |
| 결과 | 다스릴 권리 | 되살 권리 |
두 계통을 하나로 섞으면 창세기 49:10의 규와 구속의 값이 한 가지가 되어 버리지만, 성경 자체는 둘을 떼어 둡니다. 규는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값은 되사는 수단입니다. 성경은 이 둘을 서로 다른 낱말로 적습니다.
신약도 같은 구별을 지키며, 그것도 한 장면 안에서 지킵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한 장로가 유다 지파의 사자를 알립니다. 한 절 뒤에 요한이 바라보는데, 그가 보는 것은 사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