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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로 · 16장 / 전체 41장

하나의 가족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기에 엘리멜렉의 밭을 구속할 수 있었습니다. 더 가까운 친족이 그보다 먼저 권리를 가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는 피로 더 가까웠습니다. 룻기에서 고엘의 테두리는 베들레헴의 한 집안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속은 한 가족의 밭을 넘어 훨씬 더 넓은 범주에 이릅니다. 야곱은 “모든 악에서” 구속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은 모든 지파와 민족에게서 구속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고엘의 율법이 그러한 구속을 이해하는 틀이라면, 그 첫 번째 조건은 훨씬 더 큰 규모에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구속하는 이는 가까운 친족이어야 하며, 구속받는 이들은 그가 속한 것과 같은 가족에 속해야 합니다. 온 인류를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하기 전에 이 질문에 답합니다. 그 대답은 홍수 뒤에서 시작됩니다.

이들에게서 온 땅에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창세기는 땅 위 모든 민족의 시작을 한 문장에 적습니다.

창세기 9:19 이 셋이 노아의 아들들이며, 이들에게서 온 땅에 사람이 퍼졌다.

이 절은 뿌리가 저마다 다른 여러 민족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 가족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나중에 온 땅을 채우게 될 모든 민족은 이 세 아들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을 통해 한 아버지에게로 이어집니다.

그 뒤를 이어 창세기 10장은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을 차례대로 열거하며,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같은 내용으로 매듭짓습니다.

창세기 10:32 이들이 노아 아들들의 가문이니, 그 내력과 그 민족을 따른 것이다.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민족들이 나뉘었다.

민족들은 땅으로, 언어로,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백성들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족에서 나뉘었습니다. 아무리 멀리 퍼지고 아무리 서로 달라졌어도, 그들은 여전히 친족이었습니다.

율법의 말 “그에게 가까운 이”가 온 인류에게 들어맞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홍수 뒤의 인류는 남남의 모임이 아닙니다. 온 땅에 퍼진 한 집안입니다.

한 혈통으로

여러 세기 뒤에 바울은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한가운데 서서 헬라 사람 청중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4-26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이분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시며 무언가가 필요하신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프노에(숨결)와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한 혈통으로 모든 민족을 만드사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정해진 카이로스(정해진-때)와 거주 경계를 작정하셨으니,

바울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헬라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부터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일러 주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민족이 한 혈통으로 지어졌습니다.

바울은 “한 생각으로” 또는 “한 설계로”라고 하지 않고 “한 혈통으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친족의 말이며, 레위기의 율법이 셰에르 바사르, 곧 같은 살에서 난 살붙이를 말할 때 요구한 바로 그것입니다. 온 인류는 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와 사도행전은 시간상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일치합니다. 창세기는 모든 민족을 노아의 세 아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바울은 모든 민족을 한 혈통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두 본문이 함께 고엘의 첫째 조건의 첫걸음을 굳혀 줍니다. 곧 구속이 필요한 사람들은 한 집안을 이룹니다.

같은 넓이가 성경의 다른 쪽 끝에도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어린 양께 새 노래를 부를 때, 그분이 사신 이들은 “모든 지파와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나라」는 헬라어 에트노스(민족, 이방 백성)입니다. 홍수 후에 나뉘었던 민족들이 바로 구속받은 이들이 모여드는 민족들입니다. 여러 민족으로 퍼져나간 가족이 그 모든 민족 가운데서 다시 사들여집니다. 그 범위는 창세기 9장 19절과 사도행전 17장 26절의 범위와 일치합니다.

이것이 먼저 오는 이유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율법의 형태 때문입니다.

레위기 25장에서 고엘은 “그에게 가까운 이”입니다. 낯선 이는 아무리 부유하거나 친절해도 구속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피를 나누지 않은 수많은 가족들이었다면, 한 가족을 위한 구속자는 결코 다른 가족을 위한 구속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구속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룻기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한 친족, 한 밭, 한 가족.

그러나 성경은 세상을 그런 식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가족을 묘사합니다. 이는 그 가족의 단 한 명의 친족이 원칙적으로 그 모든 구성원에게 가까운 친족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고엘의 첫 번째 조건이 단번에 충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이라는 가족은 하나의 처지를 공유합니다. 그 구성원 모두가 살과 피로 태어나며, 그 구성원 모두가 죽습니다. 구속이 필요한 가족은 행운을 누리는 이들과 불행한 이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한 처지 아래 있는 한 가족이며, 히브리서는 그 처지를 죽음의 두려움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가족 바깥에 계신 분

바로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야곱이 고엘이라 불렀던 분은 출생으로 이 가족에 속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꿈속에서 야곱에게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얍복에서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보았는데도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고 사람처럼 야곱과 씨름하셨지만, 11장에서 보았듯 그것은 잠시 취하신 형상이었습니다. 그분은 가족에게로 오신 것이지, 그 안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기의 율법에 따르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엘은 셰에르 바사르, 곧 같은 살에서 난 살붙이여야 하며, 하나님이신 분은 살과 피의 가족 바깥에 서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그와 말씀하시며, 그를 붙드시고, 그에게 복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조건에 따르면 그분이 친족이 되시지 않는 한 친족으로서 구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성육신을 율법과 무관하게 떠다니는 관념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그것을 친족의 말, 곧 형제와 자녀의 말, 살과 피의 말 속에 놓습니다. 한 피로부터 나온 가족은 자신들의 피를 나눈 친족을 필요로 했고, 그 바깥에 서 계시던 분이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는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동사가 우리가 살과 피에 참여하게 된 방식과 그분이 그렇게 하신 방식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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