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15장 / 전체 41장
물러선 친족
레위기 25장은 고엘의 두 가지 조건을 율법으로 주었습니다. 그는 같은 살에서 난 살붙이여야 하고, 그의 손이 값을 치를 만큼 미쳐야 합니다. 룻기는 한 가정의 삶 속에서 그 두 가지 조건을 그대로 보여 주며, 첫 번째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상속자가 없는 밭
이야기는 상실과 함께 시작됩니다. 기근이 들자 유다 베들레헴의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모압 들로 갔습니다.
룻기 1:1-5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절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유다 베들레헴의 한 남자(이쉬)가 자기 아내(이샤)와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들에 머물러 살려고 떠났다. 그 남자(이쉬)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그의 아내(이샤)의 이름은 나오미였으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의 에브랏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모압 들로 가서 거기 머물렀다. 그런데 나오미의 남편(이쉬) 엘리멜렉이 죽고, 그녀와 두 아들만 남았다.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이샤)로 맞았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오르바, 다른 사람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그 뒤 말론과 기룐 두 사람도 죽어, 그 여자(이샤)는 두 자식과 남편(이쉬)을 다 잃고 홀로 남았다.
엘리멜렉이 죽고, 그의 두 아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을 모두 잃은 채 모압 사람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다에 남겨진 것은 엘리멜렉의 소유였던 한 조각 밭이었으며, 그의 집에는 그 밭을 지키거나 이름을 이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고엘 법은 바로 이런 상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가문은 낮아졌고, 기업은 손에서 넘어가려 하며, 이 가문에 필요한 것은 와 줄 만큼 가깝고 값을 치를 만큼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를 무를 친족 가운데 하나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나갔고, 그녀가 이른 밭은 보아스라는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나오미는 그의 이름을 듣고 그가 누구인지 룻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룻기 2:20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인애(헤세드)를 거두지 않으신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 주시기를! 그리고 나오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남자(이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으로, 우리를 무를 친족 가운데 하나란다.
나오미가 “우리를 무를 친족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때 쓴 낱말이 고엘입니다. 보아스는 첫 번째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친족입니다. 본문은 이미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엘리멜렉 집안의 유력하고 재력 있는 남자(이쉬)”이며(룻 2:1), 우리가 그를 처음 볼 때 그는 베들레헴에서 일꾼들이 일하고 있는 자신의 밭으로 옵니다(룻 2:3-4). 룻기는 그를 그 집안 사람이자 재력 있는 사람으로 보여 줍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나오미가 언급하지 않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룻기 3:12-13 이제, 내가 무를 친족인 것은 참말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가까운 무를 친족이 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묵어라. 아침에 그가 너를 무르겠다면 좋다, 무르게 하여라. 그러나 그가 너를 무르려 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니 내가 너를 무르겠다. 아침까지 누워 있어라.
율법이 정한 순서로는 더 가까운 친족에게 첫째 권리가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그 순서를 제쳐 두지 않았습니다. 더 가까운 사람이 구속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요, 그가 원하지 않을 때만 보아스 자신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그 일에 자기를 묶었습니다.
성문에서의 아침
다음 날 아침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갔습니다. 성문은 성읍의 장로들이 그곳의 일을 처리하던 자리였습니다. 그는 거기 앉았습니다. 더 가까운 친족이 지나가자, 보아스는 그를 불러 앉히고 장로 열 사람을 증인으로 모았습니다.
룻기 4:1-4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 거기 앉았다.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그 무를 친족이 지나갔다. 보아스가 말했다: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시오. 그가 와서 앉았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열 사람을 데려다가 여기 앉으십시오 하니, 그들이 앉았다. 그가 무를 친족에게 말했다: 모압 들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몫인 그 밭을 팔려고 내놓았소. 그래서 내가 당신 귀에 알려 드리려 했소.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시오. 당신이 무르겠으면 무르고, 무르지 않겠으면 내게 말해 주시오. 그러면 내가 알겠소. 당신 말고는 무를 사람이 없고, 그다음이 나요. 그가 말했다: 내가 무르겠소.
더 가까운 친족에게는 구속할 첫 번째 권리가 있었고, 그의 대답은 즉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첫 번째 조건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까웠고, 의향이 있었으며, 권리를 가졌고 그것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나머지를 일러 주었습니다.
룻기 4:5 보아스가 말했다: 당신이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 죽은 이의 아내(이샤)인 모압 여인 룻에게서도 사서, 그 죽은 이의 이름을 그의 유산 위에 세워야 하오.
그 구속은 밭뿐만 아니라 가문의 이름을 위한 것이어서, 죽은 자의 계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를 수 없소
이제 더 가까운 친족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룻기 4:6 무를 친족이 말했다: 나는 그것을 무를 수 없소. 내 유산을 망칠까 싶소. 내 무를 권리를 당신이 무르시오. 나는 무를 수 없소.
그는 문장의 처음과 끝에서 두 번 말합니다. “나는 무를 수 없소.” 히브리어로는 로 우칼, 곧 “나는 할 수 없다”입니다. 그는 거절한다고 말하지 않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유를 하나 듭니다. “내 유산을 망칠까 싶소.” 본문은 다른 이유를 대지 않으며, 우리가 이유를 보탤 필요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고엘의 권리가 있었지만, 그 일을 끝까지 해내는 데 드는 값은 자기 기업을 잃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권리를 다음 차례의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내 무를 권리를 당신이 무르시오.” 룻기는 이 일을 확정하던 관습까지 멈추어 설명합니다.
룻기 4:7-8 옛적 이스라엘에서는 무르거나 맞바꾸는 모든 일을 확정할 때, 한 사람(이쉬)이 자기 신을 벗어 상대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증거가 되었다. 그 무를 친족이 보아스에게 당신이 사시오 하고는, 자기 신을 벗었다.
신을 벗어 건네자, 그 일은 증인들 앞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이렇게 고엘의 권리는 자격은 있으나 끝까지 해낼 수 없는 사람에게서, 자격도 있고 해낼 수도 있는 사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내가 샀습니다
보아스는 이어서 장로들과 성문에 있던 온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룻기 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온 백성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오늘 증인입니다. 내가 엘리멜렉의 모든 것과 기룐과 말론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샀습니다. 또 말론의 아내(이샤)였던 모압 여인 룻을 내 아내(이샤)로 샀습니다. 죽은 이의 이름을 그의 유산 위에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와 그의 고향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증인입니다.
“내가 샀습니다.” 보아스는 값을 치렀습니다. 그는 엘리멜렉에게 속했던 모든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속했던 모든 것을 샀고, 룻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밭은 가문으로 돌아왔고, 이름은 다시 밭 위에 놓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격을 가졌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능력을 가졌습니다. 더 나은 자격을 가진 사람은 물러섰고,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구속했습니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자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고엘의 자리는 자격과 능력을 함께 요구합니다.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
룻기는 이 점을 따로 논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룻기는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밭과 가문의 이름, 그리고 모두 친족이었던 두 사람을 보여 줍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는 그 값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행동할 수 있는 두 번째 친족이 없었다면, 레위기 25장의 율법은 희년까지 그 밭을 사는 자의 손에 머물게 했을 것이며, 죽은 자의 이름을 그의 기업 위에 일으켜 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가문을 구한 사람은 더 나은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48장 16절과 이어집니다. 야곱은 그 사자가 자기를 “모든 악에서” 구속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율법이 말하는 뜻에서 참되려면, 구속하시는 분은 친족이시면서 능력도 있으셔야 합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민족에게서 구속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할 때, 과연 누구를 온 인류의 가까운 친족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노아에게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