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13장 / 전체 41장
네 형제가 가난해질 때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고 얍복에서 밤새 자기를 붙드신 분을 자기의 고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얍복에서 그분은 사람의 모습으로 야곱 앞에 서셨고, 하룻밤 입으신 모습으로도 만남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육신이 되신 말씀을 통한 구속을 말합니다(요한복음 1:14). 왜 육신이어야 할까요? 잠시 입으신 모습으로는 왜 야곱이 그분을 부른 그 이름에 모자랐을까요?
그 답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이론에서 오지 않습니다. 율법에서 옵니다. 야곱은 임종 자리에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의 이름으로 고엘이라는 낱말을 처음 썼습니다. 그 뒤에 같은 낱말이 조건이 딸린 규례로 토라에 기록되었고, 그 조건들이 왜 구속자가 육체와 피를 함께 지녀야 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율법은 형제로 시작합니다
고엘의 율법은 희년의 장인 레위기 25장에 있습니다. 그 첫 경우는 한 절에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 25:25 네 형제가 가난해져 자기 소유의 얼마를 팔거든, 그의 고엘(구속자), 곧 그에게 가까운 이가 와서 그 형제가 판 것을 무른다.
이 절은 세 걸음으로 나아갑니다.
첫째, 일이 잘못됩니다. “네 형제가 가난해져”. 히브리어 동사(무크)는 낮아지다, 살림이 기울다라는 뜻입니다. 율법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습니다. 흉년이든, 빚이든, 궂은 한 해든, 까닭이 무엇이든 그는 무너졌습니다.
둘째, 그는 무언가를 잃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얼마를 팔거든”. 이스라엘에서 한 사람의 소유란 그 가족이 받은 땅의 몫, 곧 그 집안이 먹고사는 땅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그 일부를 팔 때, 그는 자기 앞날의 일부를 팔고 있었습니다.
셋째, 누군가가 옵니다. “그의 고엘(구속자), 곧 그에게 가까운 이가 와서 그 형제가 판 것을 무른다.” 구속자로 옮긴 낱말은 고엘이며, 야곱이 손자들 위에 한 바로 그 낱말입니다. 이 절은 고엘이 형제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말하기 전에 그에게 두 가지 표를 줍니다. 그는 「그에게 가까운 이」이고, 「와서」 무릅니다. 그는 멀리서 도움을 보내지 않습니다. 형제가 쓰러진 곳으로 와서, 팔린 것을 도로 삽니다.
이것이 고엘이 하는 일입니다. 그는 가깝고, 오고, 값을 치르며, 잃은 것은 그것을 잃은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땅은 내 것이다
도대체 이스라엘에게 왜 이런 율법이 필요했을까요? 두 절 앞에서 이 장은 그 까닭을 말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까닭입니다.
레위기 25:23-24 그 땅은 영영히 팔면 안 된다. 그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요 나그네다. 너희 소유의 온 땅에서 너희는 그 땅을 무를 권리를 두어라.
여호와께서 “그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족들은 그분과 함께 있는 “거류민이요 나그네”로서 자기 몫을 지녔으므로, 어떤 땅 매매도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무를 권리가 땅 자체에 새겨져 있었고, 고엘은 그 일을 이루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절들은 고엘이 없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레위기 25:26-28 누구든지(이쉬) 무를 친족이 없으나 자기 손이 넉넉해져 무를 만큼 마련하면, 그는 판 뒤의 햇수를 계산하여 그 나머지를 산 사람(이쉬)에게 돌려주고 자기 소유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손이 돌려줄 만큼을 마련하지 못하면, 판 것이 산 자의 손에 있다가 아드 희년, 희년에 풀려나니, 그가 자기 소유로 돌아간다.
율법은 되돌아갈 길을 둘 열어 둡니다. 고엘이 오거나, 그 사람 자신이 “자기 손이 넉넉해져 무를 만큼 마련하면” 됩니다. 둘 다 아니면, 밭은 희년까지 산 사람의 손에 남습니다. 율법은 아무도 없는 사람에게도 문을 열어 두지만, 그 문을 지나려면 땅 없이 기다리는 여러 해를 치러야 합니다.
무를 수 있을 사람이 무르지 못하면, 잃은 사람은 정해진 해가 올 때까지 잃은 것 없이 지내야 합니다. 이것이 레위기에서 고엘이 지닌 무게입니다. 모든 것이, 와 줄 만큼 가깝고 그럴 힘이 있는 누군가가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밭만이 아니라 사람도
레위기 25장은 땅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장 뒷부분에서는 형제 자신이 팔립니다.
레위기 25:47-48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나그네의 손이 넉넉해지고 그 곁의 네 형제가 가난해져, 너와 함께 있는 그 거류민이나 나그네에게나 거류민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거든, 팔린 뒤에도 그에게는 무를 권리가 있으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무를 수 있다.
이것은 첫째 경우보다 더 어려운 경우입니다. 그 사람은 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그것도 자기 백성 밖의 거류민에게 팔 만큼 낮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은 밭에 대해 한 말을 그에게도 똑같이 합니다. 밭이 그렇듯 사람도 팔렸다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고엘의 일은 기업에도, 사람에게도 미칩니다.
규례보다 먼저, 고백
「무르다 · 구속하다」라는 동사 가알은 성경에서 창세기 48:16에 처음 나오며, 창세기에서는 그곳에만 있습니다. 두 번째로 나오는 곳은 출애굽기 6:6으로, 여호와께서 이집트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하겠다”는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레위기 25장에서 이 낱말은 율법이 됩니다.
그러니 이 낱말은 정해진 순서를 따라 이스라엘에게 왔습니다. 구속이 조건이 딸린 규례가 되기 전에, 누구나 설명할 수 있는 교리가 되기 전에, 그것은 죽어 가는 한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입에 올린 낱말이었습니다.
야곱은 고엘의 조건을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뒤에 주어진 레위기는 그 일에 무엇이 따르는지를 밝힙니다. 둘을 함께 읽으면 야곱이 고른 낱말의 무게가 보입니다. 율법에서 고엘은 가까이 오고, 형제가 갚지 못하는 것을 갚고, 형제가 스스로 되찾지 못하는 것을 되찾아 주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나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신 사자”를 말할 때 붙든 낱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은 야곱의 한 문장이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도 덧붙입니다. 고엘은 빚만 갚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값을 치르는 목적은 “자기 소유로 돌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팔린 것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고엘의 일은 영수증으로 끝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옴으로 끝납니다. 값을 치르시는 분은 그분이 도로 사시는 기업의 왕이심이 드러납니다.
아무나가 아닙니다
레위기 25:25는 한 가지를 더 말합니다. 율법은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서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고엘(구속자), 곧 그에게 가까운 이」라고 말합니다. 무를 권리는 정해진 누군가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물음이 더 생깁니다. 누가 가까운 사람으로 여겨질까요? 그리고 가깝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율법이 무언가를 더 요구할까요? 같은 장 더 아래, 거류민에게 팔린 형제의 경우에서 레위기는 목록으로 답하며, 그 목록 안에 조건이 둘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48:16의 사자가 채워야 할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