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Homes Inc.는 미국 501(c)(3) 등록 비영리 사역 단체입니다501(c)(3) 비영리 단체 연락처English
BIBLE HOMES예슈아 직역성경 (YLV) 무료로 받기
메뉴

얼굴과 얼굴로 · 11장 / 전체 41장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야곱이 본 것은 모두 실제였고, 모두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사자는 꿈에서 말했고, 꿈은 끝났습니다. 그 남자는 밤새 씨름하고 동이 틀 무렵 자기를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해가 떠오를 때 야곱은 여전히 절뚝거리고 있었고, 창세기는 그런 만남이 다시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이와 다른 종류의 일을 말합니다. 그 이름은 성육신입니다.

낱말 자체

성육신이라는 낱말은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인카르나티오는 「안으로」를 뜻하는 인과 「살」을 뜻하는 카로(카르니스)로 이루어졌습니다. 살, 곧 육신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께서 잠시의 나타나심을 넘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으로서 온전한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을 영원히 취하신 일입니다.

이 정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영원하신 아들: 육신이 되신 분은 태어나실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잠시의 나타나심을 넘어: 이것은 창세기의 나타나심들 같은 또 하나의 나타나심이 아니라 그것들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온전한 사람의 영과 혼과 몸: 한동안 걸쳐 입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의 전부입니다. 영원히: 하룻밤이나 한 번의 만남 동안이 아니라 영원히입니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 그분은 사람이 되시려고 하나님이기를 그치신 것이 아니며, 하나님으로만 계시면서 사람인 듯 보이기만 하신 것도 아닙니다.

요한의 문장

이 용어가 기대는 구절은 요한복음 1:14이며, 요한은 그 바탕을 복음서 첫 줄에서 놓습니다.

요한복음 1:1-2 태초에 로고스(말씀이신 분)께서 계셨고, 로고스(말씀이신 분)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함께 계셨으며, 로고스(말씀이신 분)께서는 하나님이셨다. 이분께서 태초에 하나님을 향하여-함께 계셨다.

열세 절 뒤에서 요한은 그 말씀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말합니다.

요한복음 1:14 그리고 로고스(말씀이신 분)께서 사르크스(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으니,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오신 독생자의 영광으로, 하리스(은혜)와 알레데이아(진리)가 충만했다.

요한은 말씀이 잠시 육신으로 나타나셨다거나 육신의 모습을 입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사르크스는 살아 있는 몸의 살, 곧 뼈를 덮고 있는 부드러운 살을 가리키는 평범한 낱말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늘 있는 바로 그 살이며, 누구나 지니고 있는 똑같은 살입니다.

이어 요한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헬라어 동사는 에스케노센이며, 장막을 뜻하는 스케네에서 왔습니다. 말씀께서 우리 가운데 자기 장막을 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았는데”라고 덧붙입니다. 그는 꿈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을 보고 듣고 그분 곁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서 쓰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

이 용어가 기대는 둘째 구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6 고백되는 것처럼 에우세베이아(경건함)의 뮈스테리온(신비/비밀)은 크니, 하나님께서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나타나셨고, 프뉴마(영) 안에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어지셨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워지셨다.

YLV는 「하나님께서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나타나셨고」라고 읽습니다. YLV의 기준 본문인 비잔틴 다수 본문(로빈슨–피어폰트 2018)도 여기에 테오스(하나님)라고 적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큰 신비라 부르고, 짧은 여섯 줄의 고백으로 펼쳐 보입니다. 사르크스(육체) 안에서 나타나심, 프뉴마(영) 안에서 의롭게 되심, 천사들에게 보이심,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되심, 세상에서 믿어지심, 영광 가운데서 올리워지심입니다. 그 가운데 첫 줄이 이 용어가 기대는 줄입니다. 구약에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보이셨던 그분이 이제는 사람의 몸 안에서 알려지셨습니다.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정의의 두 쪽, 곧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셨다”(요한복음 1:1)는 그 로고스가 “사르크스(육체)가 되어”(요한복음 1:14) 오신 바로 그분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 안에서 요한과 그와 함께한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오신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바울도 자기 말로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 육신은 실제였고, 그 안에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잠시 입으신 모습, 영원한 본성

벧엘과 얍복의 나타나심은 잠시 입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성육신은 사람의 본성과 하나 되심이며, 되돌아가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얍복의 그 남자에게는 실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어긋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동이 트자 그분은 가겠다고 하셨고, 가셨습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은 그 육신을 내려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태어나시고, 자라시고, 사람들 가운데 사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 그분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요한복음 20:25-27). 그분은 취하신 육신을 남겨 두고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차이가 앞선 만남들을 하찮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만남들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구약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테오파니를 통해, 불꽃과 구름으로, 사자와 사람의 모습으로 조금씩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아들께서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자와 로고스

여기서 창세기에서 요한복음까지 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48:16의 사자는 요한복음 1:14의 로고스다」라는 문장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는 조각들은 그쪽으로 강하게 이끕니다.

하란에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분은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얍복에서 그와 씨름하신 분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임종 자리에서 그분을 “나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신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말씀께서 태초에 하나님을 향하여-함께 계셨고, 말씀께서 하나님이셨으며, 말씀께서 육신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 사자는 하나님이라 불리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으며,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으나 아들께서 그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고엘이라 부른 그 사자를 뒤에 육신이 되신 로고스로 읽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 조각들은 고엘이라는 낱말에도 중요합니다. 율법이 뒤에 정한 대로, 고엘은 가까운 친족, 곧 같은 살을 나눈 혈육이어야 합니다. 하룻밤 입은 모습으로는 이 조건을 채우지 못합니다. 육신은 채웁니다. 그래서 신약이 말하는 구속은 육신이 되시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말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가 자녀들이 함께 지닌 육체와 피에 대해 “그분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에 함께 참여하셨으니”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히브리서 2:14).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성육신이 이 용어들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육신이 되신 것이 한 가지 일이라면, 말씀께서 그 육신으로 하신 일은 또 다른 일입니다. 빌립보서는 그분이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셔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르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분이 자기를 보내신 분에 대해 거듭거듭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함께하기

성경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운동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