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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로 · 10장 / 전체 41장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실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 사람(아담)이 나를 보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애굽기 33:20).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야곱의 경우에는 무언가를 붙잡고서, 자기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을 안 순간들이 가득합니다. 어떻게 둘 다 참일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용어로 그 답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각 용어는 그것이 기대는 구절들로부터 뜻을 정합니다. 이 용어들은 성경의 말씀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구절들이 이미 보여 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테오파니

첫째 낱말은 테오파니(신현)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 두 낱말, 「하나님」을 뜻하는 테오스와 「나타나다」를 뜻하는 파이네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테오파니란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감각, 곧 눈과 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임재와 영광을 느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불꽃, 구름, 바람, 바위처럼 전혀 인격이 아닌 것들을 통해서도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것들은 그분의 임재를 느끼게 한 비인격적 수단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구름 기둥, 광야의 바위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가 가장 분명한 예입니다.

출애굽기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보라, 떨기나무가 불에 타는데도 떨기나무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모세가 본 것은 불에 타는데도 사그라지지 않는 떨기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떨기나무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출애굽기 3:4-6 그가 보려고 돌이키는 것을 여호와께서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며 말씀하셨다. 모세야, 모세야.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그곳은 거룩한 흙(아다마)이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여 자기 얼굴을 가렸다.

2절에서 불꽃 가운데 나타난 이는 “여호와의 사자”이고, 4절에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6절에서 그분은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신 분이 1인칭으로,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꿈에서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창세기에서 본 틀이 출애굽기 첫머리에 다시 나타납니다.

구름 기둥도 그런 수단입니다.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 앞에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출애굽기 13:21). 이스라엘은 구름과 불을 보았고, 본문은 그 안에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가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위가 있습니다. 호렙에서 백성에게 물이 없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호렙의 바위 위 거기서 네 앞에 서겠다”고 말씀하셨고(출애굽기 17:6), 모세가 바위를 치자 바위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편지하면서 광야의 이스라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0:4 모두 같은 프뉴마티콘(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 이는 그들을 따르는 프뉴마티케(영적)인 바위에서 마셨기 때문이며, 그 바위는 메시아(그리스도)이셨다.

바울은 그 바위가 메시아와 같았다거나 메시아를 떠올리게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마신 그 근원이 바로 메시아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신약성경이 직접, 이런 비인격적 수단 가운데 하나를 통해 누가 함께 계셨는지를 밝힙니다.

그러므로 테오파니는 넓은 범주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불이나 구름이나 바위나 음성이나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하실 때마다, 그것은 테오파니였습니다.

크리스토파니

둘째 낱말은 더 좁습니다. 크리스토파니는 메시아, 곧 기름 부음 받은 이를 뜻하는 헬라어 크리스토스와, 같은 동사 파이네인(나타나다)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사자의 모습으로 인격적으로 나타나신 일을 가리키며, 이를 아들이 육신이 되시기 전에 잠시 나타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2세기부터 이 나타나심들을 이렇게 읽어 왔습니다. 이 낱말 자체는 성경에 없고, “그 사자는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구절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절들은 그쪽을 강하게 가리킵니다.

이런 인격적 나타나심은 테오파니의 한 갈래입니다. 이것을 구별하는 점은, 나타나시는 분이 불꽃이나 구름이 아니라 말씀하시고, 경배를 받으시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밝히시는 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나타나실 때 쓰이는 칭호가 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입니다.

첫째 예는 창세기 31:11–13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야곱에게 말하는데, 1인칭으로 “나는 네가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서원한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밝히는 인격적 나타나심입니다.

둘째 예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바로 뒤에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에 있을 때 칼을 빼 들고 자기 맞은편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았고, 그에게 누구 편이냐고 물었습니다.

여호수아 5:14-15 그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으로서 이제 왔다.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말했다: 내 주님께서 종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요?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그곳은 거룩하다.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였다.

그 남자는 이스라엘 편도, 원수 편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할 때 사령관은 그 경배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주신 것과 같은 명령, 곧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이 거룩하다는 명령을 여호수아에게 내립니다(출애굽기 3:5 참고). 그분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경배를 받으셨으며, 그분이 여호수아와 함께 서신 그곳은 거룩했습니다.

야곱의 만남은 어디에 속하는가

이 낱말들을 손에 들고 나면, 성경이 야곱에 대해 기록한 것을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벧엘에서는 꿈에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28:13). 하란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1인칭으로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얍복에서는 한 남자가 밤새 그와 씨름했고, 야곱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들은 불꽃이나 구름 속의 나타나심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란과 얍복에서의 일은, 사자나 사람으로 오셔서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분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요한은 얍복을 이름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 만남들과 관련된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요한복음 1:18 하나님을 아무도 일찍이 본 자가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하신 아들께서 그분을 나타내셨다.

첫걸음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합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보았는데도…”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32:31). 호세아는 그가 겨룬 분을 하나님이라 부르고, 그 사자는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어 요한은 하나님을 아무도 일찍이 본 자가 없고 독생하신 아들께서 그분을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광야의 바위에 대해 “그 바위는 메시아(그리스도)이셨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들을 나란히 놓으면 강한 논증이 됩니다. 야곱에게 자신을 보이신 하나님은 육신이 되시기 전에 나타나신 아들, 예슈아이십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말하는 구절은 없으므로 이것은 해석입니다. 그러나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이며, 그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시 입으신 모습

구약의 인격적 나타나심에는 모두 한 가지가 공통됩니다. 잠시 동안이었다는 것입니다. 얍복의 그 남자는 동이 틀 무렵 자기를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마노아에게 나타난 사자는 제단의 불꽃 가운데서 올라갔고,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는 마노아흐와 그의 아내(이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사사기 13:21).

그분이 입으신 모습은 실제였습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잠시 입으셨다가 내려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은 하룻밤 동안이나 어느 성읍 가까이에서 나눈 한 번의 대화 동안에 그친 일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그대로 계신 일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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