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얼굴로 · 4장 / 전체 41장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야곱이 그 사자를 임종 자리에서 처음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그분을 「나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신 사자」라고 불렀을 때, 그는 여러 해 전에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에는 그분이 누구신지에 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려면 야곱의 생애 한가운데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 해 전, 그는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가는 길에 그가 벧엘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그는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꿈에 보았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창세기 28:13). 잠에서 깬 그는 베고 잔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 서원했습니다.
창세기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말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어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옷을 주시며, 내가 평안히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당신이 나에게 주시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 뒤 하란에서 긴 세월이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라반에게 「내가 당신 집에서 보낸 이 이십 년」(창세기 31:41)이라고 말합니다. 그 세월이 끝날 무렵, 여호와께서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들의 땅, 네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창세기 31:3)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들로 불러내어 떠나는 까닭을 말했고, 그 말 가운데 한 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인칭으로 말씀하시는 사자
창세기 31:11-13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에게 ‘야곱아’ 하고 부르기에, 내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였소. 그가 말했소. ‘네 눈을 들어 보아라. 양 떼에게 오르는 모든 숫양이 줄무늬 있고 점 있고 얼룩진 것이니, 라반이 너에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다. 나는 네가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서원한 벧엘의 하나님이다. 이제 일어나 이 땅에서 나가 네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
11절에서 말하는 이는 「하나님의 사자」이고, 13절에서 같은 이가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라는 낱말에 무게가 있습니다. 사자는 대명사 아노키(「나」)로 문장을 시작하고, 그 말로 자신을 밝힙니다. 아노키 하-엘 베이트-엘, 곧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입니다. 그는 벧엘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서원도 그렇습니다.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께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라고 서원했습니다. 이제 사자는 야곱이 그 서원을 「나에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가 섬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한 서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서원이 자기에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보통의 사자는 다르게 말합니다. 창세기의 다음 장에서 야곱은 에서에게 사자들을 앞서 보내며, 할 말을 그대로 일러 줍니다.
창세기 32:5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했다. “너희는 내 주인 에서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당신의 종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라반과 함께 머물러 지금까지 지체하였습니다.
이것이 다른 이를 대신해 전하는 말의 형식입니다. 사자가 말하지만, 그 말 속의 「나」는 보낸 이의 것입니다. 창세기 31장의 하나님의 사자는 그런 형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으로서 말하며, 자기가 바로 그 서원을 받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명령 「네 친족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여호와께서 창세기 31:3에서 하신 명령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만나실 때 대리인 뒤로 물러나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자로 오신 분이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 말씀을 얍복 강에 이르기 전에, 임종 자리보다는 훨씬 전에 들었습니다.
창세기의 다른 곳에 나오는 같은 사자
이런 말씀 방식은 야곱의 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는 그 전에 이미 두 번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하갈입니다. 사래를 피해 광야로 달아나던 그녀를 샘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만나, 네 번 말씀하십니다(창세기 16:7-11). 그 말씀 가운데 하나는 그분 자신으로서 하신 약속입니다.
창세기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여, 너무 많아 셀 수 없게 하겠다.”
이어서 본문은 하갈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려 줍니다.
창세기 16:13 그녀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당신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엘 로이)이십니다” 하고 불렀으니, “내가 여기서 나를 보시는 분을 뵙고도 살아 있는가?”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말씀하신 분은 여호와의 사자였습니다. 그런데 하갈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세기는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기록합니다.
둘째는 산 위의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아들 위로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창세기 22:11-12 그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가 말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고 아무 짓도 하지 마라.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을 나에게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고 있었는데, 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들을 「나에게 아끼지 않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제물이 자기에게 드려졌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부르실 때 그분은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하십니다(창세기 22:15-16).
하갈, 아브라함, 야곱. 세 사람, 세 번의 만남에서, 하나님의 사자 또는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하시고, 하나님 자신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말라크라는 낱말을 공정하게
반대쪽 말도 다 들어야 합니다. 히브리어 낱말 말라크는 구약성경에 213번 나오며, 그 가운데 대부분은 지음받은 사자나 사람 사절을 뜻합니다. 평범한 낱말입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사람들에게도 이 낱말을 씁니다. 창세기 32:4는 그들을 말라킴, 곧 사자들이라고 부릅니다. (YLV는 히브리어 절 번호를 따르는데, 창세기 32장은 대부분의 영어 성경보다 절 번호가 하나씩 큽니다. 이 절은 그런 성경에서 3절이고, 25절의 씨름은 24절입니다.)
그러니 말라크라는 낱말만으로는 이 사자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습니다. 2장에서 인정했듯이, 창세기 48:16의 단수 동사도 그것만으로 이 물음을 매듭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자체가 이 사자를 따로 구별합니다. 창세기 16:13, 22:11-16, 31:11-13에서 말씀하시는 사자는 하나님으로 불리거나, 스스로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시거나, 하나님께 드린 것을 받으십니다. 창세기 안에서 이것은 한 번 있는 이상한 예외가 아닙니다. 한결같은 한 무리의 대목이며, 야곱의 꿈에 나온 사자도 그 무리에 속합니다.
창세기 48:16은 바로 이 바탕 위에서 읽어야 합니다. 야곱이 생애 끝에 「나를 모든 악에서 구속하신 사자」를 조상들의 하나님 곁에 두고 「그가」 아이들을 축복하시기를 구했을 때, 그는 지음받은 종을 하나님과 뒤섞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러 해 전에 자기에게 「나는 … 벧엘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자의 말씀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꿈이 있은 지 오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창세기의 다른 누구도 만나지 못한 방식으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밤에 야곱은 얍복 강가에 홀로 있었습니다. 가족은 먼저 강을 건너보냈고, 형 에서는 사백 명을 거느리고 그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