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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표적 · 46장 / 전체 47장

누룩 있는 것과 없는 것, 동방과 서방

아시아의 교회들은 날짜로 십자가를 기억했습니다. 그 주간이 교회의 삶에 자국을 남긴 곳이 또 한 군데 있는데, 그것은 달력이 아닙니다. 식탁 위의 빵입니다.

식탁 위의 낱말

22장과 23장에서 우리는 복음서에 빵을 가리키는 낱말이 두 가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쥐모스는 누룩 없는 빵, 곧 절기의 빵입니다. 아르토스는 보통 빵, 곧 날마다 먹는 빵입니다. 네 증인이 마지막 만찬에서 예슈아께서 손에 드신 것을 적을 때, 넷 모두 아르토스라고 쓰며, 바울은 그 일이 언제였는지 덧붙입니다. 그분이 “넘겨지시던 밤에” “빵을 받으시고”(고린도전서 11:23). 그때는 열사흗날을 여는 저녁, 집안의 마지막 누룩 든 식사였고, 그분의 손에 있던 빵은 보통 빵이었습니다.

동방 교회

오늘날까지 동방 정교회는 주의 만찬에 누룩 든 빵, 곧 보통 빵을 씁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복음서의 헬라어 본문과 그 낱말 아르토스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그 말을 적힌 그대로 읽고, 식탁에 보통 빵을 올립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은 만찬과 십자가의 날짜를 지켰습니다. 동방 교회들은 빵을 지켰습니다. 둘 다 유월절 전에 먹은 한 식사를 가리킵니다.

서방의 변화

서방 교회들은 누룩 없는 빵을 쓰게 되었습니다. 중세에 이르러 그것은 굳어진 관습이 되었고, 그 차이는 동방과 서방 사이의 아픈 쟁점이 되었습니다. 1054년 직전에 오흐리드의 대주교 레오는 라틴 교회가 누룩 없는 빵을 쓰는 것을 반박하는 글을 썼고, 1054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서로 교제를 끊었을 때 빵은 드러난 쟁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의 식탁의 빵, 그리고 그와 함께 복음서의 낱말 아르토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열의 쟁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서방은 어떻게 그 관습에 이르렀을까요?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장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답을 내놓았습니다. 1845년 영어 번역본에서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로마의 주교 알렉산데르의 시대 이전에는 누룩 든 보통 빵이 쓰였습니다. 누룩 없는 빵을 처음으로 좋아한 사람이 그였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건전한 신앙으로 훈련하기보다는, 새로운 광경으로 대중의 놀란 눈을 끌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기독교 강요』 4.17.43).

알렉산데르는 2세기 초의 초기 로마 주교였습니다. 칼뱅은 역사가 자기에게 알려 준 것을 전한 것입니다. 알렉산데르의 시대 이전에는 식탁에 보통 빵이 있었고, 누룩 없는 빵은 그와 함께 들어왔는데, 칼뱅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서방 교회의 변화를 그보다 더 늦은 때로 봅니다. 어느 쪽이든, 첫 교회들은 보통 빵을 떼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에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서방 교회의 한 종교개혁자가, 첫 교회들은 복음서가 예슈아께서 하셨다고 말하는 대로 보통 빵을 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왜 중요한가

빵을 가리키는 낱말 하나가 왜 한 장을 차지할 만할까요? 그 안에 시간표 전체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만찬이 열나흗날의 유월절 식사였다면, 식탁 위의 빵은 토라가 그 밤에 명하는 대로 누룩 없는 아쥐모스였을 것입니다. 복음서는 아르토스라고 말합니다. 아르토스는 어떤 덩어리 빵이든 가리킬 수 있으므로 이 낱말만으로는 문제가 판가름 나지 않겠지만, 이 낱말은 요한의 말과 맞습니다. 만찬은 유월절 전, 열사흗날이 시작될 때에 있었습니다.

그 빵에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25장에서 보았듯이, 이 식사는 문턱의 식사, 곧 집안이 무교의 날들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누룩 든 만찬이었습니다. 바로 그 식사에서 예슈아께서는 보통 빵을 드시고 “취하여 먹어라. 이것이 내 소마(몸/육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지만, 절기의 시간표 안에서 끝나고 치워져야 할 것과 자신을 하나로 여기셨습니다. 바로 그 열사흗날 낮에 있었던 그분의 죽음은 묵은 누룩을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23장에서 읽은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이신 메시아(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고린도전서 5:7-8). 그분의 죽음 뒤에 이어진 절기는 누룩 없는 빵으로 지켰으며, 믿는 사람은 그 절기를 “성실함과 알레데이아(진리)의 무교병으로” 지키도록 부름받았습니다.

5부의 끝

이 부는 큰 날로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십자가 뒤의 사바톤을 「큰 날」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읽었고, 히브리어 샤밭과 샤밭톤이 헬라어 한 낱말에 담겼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잇달아 오는 세 사바톤, 곧 유월절, 무교절의 큰 안식일, 첫 단의 날을 세었습니다. 미아 톤 사바톤을 “그 사바톤들 중 하나”로 읽었고, 옵세 데 사바톤을 이어지던 절기들의 끝 무렵, 그 가운데 하나를 향하여 밝아 오는 때로 읽었습니다. 첫 단을 흔들어야 했고 메시아께서 첫 열매로 살아나신 샤밭 이튿날에 서 보았고,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마다 그 영이 먼저 살아나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다음 사흘 낮과 사흘 밤을 세었습니다. 익숙한 번역을 그것이 맺은 열매 때문에 마땅히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열나흗날을 날짜로 지키고 식탁에서 보통 빵을 뗀 초대 교회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을 말합니다.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의 정한 때를 날짜와 시각까지 지키셨고, 그분이 주신 표적은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요나의 표적을 날짜와 시각까지 세어 보았습니다. 2부는 그분이 태어나시기 전에 받으신 이름을 열어 보였고, 그 뒤의 부들은 그분이 채우신 날들을 따라왔습니다. 만찬, 십자가, 무덤, 그리고 새벽의 빈 무덤입니다. 마지막 장은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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