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표적 · 23장 / 전체 47장
마태, 마가, 누가, 바울이 한목소리로
한 기록에 한 낱말이 쓰였다면 우연일 수 있습니다. 기자가 별생각 없이 느슨한 낱말을 골랐을 수도 있으니, 신중한 독자라면 그 위에 많은 것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만찬에서 예슈아께서 빵을 드신 순간은 한 번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바울이 네 번 전합니다. 그들 모두 같은 두 헬라어 낱말, 곧 보통 빵을 가리키는 아르토스와 누룩 없는 빵을 가리키는 아주모스 가운데서 골라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검증은 네 증인을 모두 불러 저마다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듣는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마태의 말은 이미 들었습니다. “예슈아(예수)께서 빵을 취하시고”(마태복음 26:26). 헬라어는 아르토스의 한 형태인 톤 아르톤입니다. 이제 마가입니다.
마가복음 14:22 그들이 먹을 때 그분이 빵을 가지시어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으라 — 이것이 내 몸이다.”
헬라어는 라본 호 이에수스 아르톤, 곧 「예슈아께서 빵을 드시고」입니다. 여기서도 낱말은 아르토스입니다. 마가도 마태처럼 같은 장 앞부분(마가복음 14:1)에서 이미 절기 이름 타 아주마를 썼습니다. 그는 「누룩 없는」을 뜻하는 낱말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 누가입니다.
누가복음 22:19 그분께서 빵을 가져다가 감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희를 위해 주어지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
헬라어는 라본 아르톤, 곧 「빵을 가져다가」로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낱말은 아르토스입니다. 누가도 같은 장 첫머리(누가복음 22:1)에서 절기를 제 이름 헤 헤오르테 톤 아주몬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그 낱말을 알았고, 식탁에서는 아르토스라고 썼습니다.
바울
넷째 증인은 앞의 세 사람과 조금 떨어져 서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그의 증언에 무게를 더합니다. 바울은 그 식탁에 있던 열둘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받아,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헬라 도시 고린도의 교회에 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3-24 이는 내가 주로부터 받은 것을 또한 여러분에게 전했으니 — 주 예슈아(예수)께서 넘겨지시던 밤에 빵을 받으시고, 감사를 드리신 후 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떼어지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
바울은 헬라어로 호 퀴리오스 이에수스 … 엘라벤 아르톤, 곧 「주 예슈아께서 … 빵을 받으시고」라고 씁니다. 낱말은 아르토스입니다. 바울이 민족들 가운데 있는 교회들에 전한 전승도 복음서와 같은 낱말을 담고 있습니다. 이 낱말이 어느 한 기자의 버릇이나 어느 한 지역의 관습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기록 자체에 속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날 밤 주께서 하신 일을 전할 때, 그 기록 속의 빵은 보통 빵이었습니다.
| 증인 | 헬라어 | 낱말 |
|---|---|---|
| 마태복음 26:26 | 라본 호 이에수스 톤 아르톤 | 아르토스 |
| 마가복음 14:22 | 라본 호 이에수스 아르톤 | 아르토스 |
| 누가복음 22:19 | 라본 아르톤 | 아르토스 |
| 고린도전서 11:23 | 엘라벤 아르톤 | 아르토스 |
기록은 넷이고, 넷 모두 아르토스를 씁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독자를 위해 글을 쓴 네 사람이 저마다 예슈아의 손에 들린 빵을 가리킬 낱말을 골라야 했는데, 누구도 누룩 없는 빵을 가리키는 낱말을 고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기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어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주의 식탁에 나아오는 법을 가르칠 때에도 같은 낱말을 지킵니다.
고린도전서 11:26 이는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라고 쓰는데, 헬라어는 톤 아르톤 투톤, 곧 「이 아르토스」입니다. 그는 이어지는 두 절(고린도전서 11:27-28)에서도 이 낱말을 다시 씁니다. 만찬 이야기에서부터 교회를 향한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주의 식탁의 빵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르토스라고 부릅니다.
같은 기자들, 다른 곳에서
그래도 누군가는 신약 기자들이 이 낱말들을 그저 느슨하게 쓴 것은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답은 그들이 다른 곳에서 아주모스를 어떻게 쓰는지에 있습니다. 절기의 누룩 없는 빵이나 그 절기 자체를 부를 때 그들은 아주모스를 씁니다.
마가복음 14:1 유월절과 무교절이 이틀 후였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간계로 그분을 잡아 죽일까 했는데;
헬라어는 토 파스카 카이 타 아주마, 곧 「유월절과 누룩 없는 것들」입니다.
누가복음 22:1 무교절, 곧 파스카(유월절)라 불리는 헤오르테(절기)가 가까이 왔다.
헬라어는 헤 헤오르테 톤 아주몬, 곧 「누룩 없는 것들의 절기」입니다.
사도행전 12:3 그것이 유대인들에게 기뻐할 일임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했다. 그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헬라어는 하이 헤메라이 톤 아주몬, 곧 「누룩 없는 것들의 날들」입니다.
사도행전 20:6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후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이르러 칠 일을 보냈다.
여기서도 타스 헤메라스 톤 아주몬, 곧 「누룩 없는 것들의 날들」입니다. 이것은 바울을 드로아로 데려간 항해이며, 1권 「거룩한 성전」에서 보았듯이 드로아에서 믿는 이들이 사바톤에 모였습니다.
절기를 가리킬 때마다 기자들은 아주모스를 씁니다. 절기를 말하면서 아르토스로 슬쩍 바꾸어 쓰지 않습니다.
바울의 누룩과 누룩 없는 것
바울은 누룩과 유월절을 함께 말하는 한 본문에서도 똑같이 세심합니다.
고린도전서 5:7-8 새 덩어리가 되도록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여러분이 무교병인 것처럼; 이는 우리의 유월절이신 메시아(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으로도,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아니고, 성실함과 알레데이아(진리)의 무교병으로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
이 절들에는 아르토스라는 낱말이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성실함과 알레데이아(진리)의 무교병”에서 「빵(병)」에 해당하는 말은 번역자들이 채워 넣은 것이고, 바울의 헬라어는 엔 아주모이스, 곧 「누룩 없는 것들로」입니다. 바울이 맞세우는 것은 누룩을 뜻하는 쥐메와 누룩 없음을 뜻하는 아주모스입니다. “새 덩어리가 되도록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여러분이 무교병인 것처럼.” 바울은 누룩 없는 것을 말할 때 아주모스를 쓰고, 그것을 누룩과 정면으로 맞세웁니다.
네 증인이 하는 말
신약 기자들은 이 두 낱말의 차이를 알았고 그 차이를 지켰습니다. 누룩 없는 빵이나 누룩 없는 절기를 말할 때는 아주모스라고 썼습니다. 보통 빵을 말할 때는 아르토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만찬에서는 모든 기록이 아르토스라고 말합니다.
다르게 읽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따져 볼 만합니다. 식탁의 빵이 누룩 없는 빵이었다면, 아주모스라는 낱말을 알고 절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낱말을 썼던 네 기자가, 그 낱말이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순간에 저마다 그것을 제쳐 두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보통 빵을 뜻하는 낱말을 집어 들었어야 합니다. 신중한 기자들은 그렇게 쓰지 않으며, 이 기자들은 신중했습니다.
마지막 만찬이 14일이 시작될 때 먹은 유월절 식사였다면, 식탁의 빵은 율법에 따라 누룩 없는 빵이었을 것이고, 그 낱말을 알고 그것이 들어갈 다른 모든 자리에서 그것을 쓴 기자들은 아주모스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아르토스라고 썼습니다. 본문 자체가 이 식사는 유월절이 아니라, 누룩 없는 빵의 명령이 효력을 내기 전 13일이 시작될 때 먹은 집안의 마지막 누룩 든 식사였다고 증언합니다.
빵은 요한의 처음 두 표지와 들어맞습니다. 요한에게는 표지가 하나 더 있는데, 그는 빌라도의 재판석 장면에서 만찬 이튿날 아침에 이름을 붙입니다. 빌라도가 예슈아를 백성 앞에 데리고 나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요한은 걸음을 멈추고 헬라어 세 낱말로 그날의 이름을 밝힙니다. 그 세 낱말이 다음 장의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