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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표적 · 22장 / 전체 47장

아르토스와 아주모스

영어의 「bread(빵)」라는 낱말은 부드러운 빵 덩이부터 납작한 크래커까지 화덕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신약의 헬라어는 이보다 정확합니다. 보통 빵을 가리키는 낱말과 누룩 없는 빵을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있고, 신약 기자들은 이 둘을 가려 썼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슈아께서 손에 드신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을 때, 기자마다 고른 낱말이 정확한 답을 줍니다.

아르토스와 아주모스

첫째 낱말은 아르토스입니다. 빵을 가리키는 흔한 일상의 낱말, 평범한 식사의 빵입니다. 보통 쓰임에서는 누룩을 넣어 만든 빵, 곧 집집마다 한 해 어느 날에나 구워 먹던 빵을 뜻합니다. 어떤 빵 덩이든 가리킬 수 있기에, 헬라어 성경은 누룩 없는 빵 덩이를 말할 때 둘째 낱말을 덧붙입니다. 토라의 헬라어 번역 출애굽기 29장 2절의 아르투스 아주무스, 곧 「누룩 없는 빵 덩이들」이 그 예입니다. 아르토스의 복수는 아르토이, 곧 빵들 또는 빵 덩이들입니다.

둘째 낱말은 아주모스입니다. 「누룩 없는」을 뜻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누룩을 뜻하는 헬라어 쥐메에 「아니」를 뜻하는 접두사가 붙어 만들어졌으므로, 낱말 생김새 자체가 「누룩 없는」이라고 말합니다. 누룩 없이 만든 납작한 빵, 유대인들이 마차라고 부르는 빵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그 중성 복수 타 아주마, 곧 「누룩 없는 것들」은 무교절 자체의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낱말뜻쓰임
아르토스빵빵을 가리키는 흔한 일상의 낱말; 보통은 누룩 넣은 빵
아주모스누룩 없는누룩 없는 빵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 복수 타 아주마는 무교절

이 두 낱말은 기자가 변화를 주려고 바꿔 쓸 수 있는 느슨한 동의어가 아닙니다. 복음서 기자가 그 빵이 누룩 없는 빵이라고 말하려 했다면 아주모스를 골라야 했습니다. 보통 빵을 뜻했다면 아르토스를 골랐습니다. 언어는 그에게 두 낱말을 다 주었고, 그 둘 사이의 경계는 토라가 절기의 날들을 위해 그토록 단단히 그어 둔 바로 그 경계였습니다.

히브리어도 자기 낱말 한 쌍으로 같은 선을 긋습니다. 누룩 든 음식은 하메츠이고, 누룩 없는 납작한 빵은 마차입니다. 토라가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명령할 때 쓰는 낱말은 마차의 복수 마초트입니다. 1세기에 헬라어를 쓰던 유대인들에게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아주모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예슈아께서 일상의 삶을 두고 아르토스를 쓰신 곳들을 보면 이 낱말이 얼마나 평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빵을 주시고”(마태복음 6:11)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는데, 헬라어는 톤 아르톤, 곧 날마다 먹는 빵입니다. 시험하는 자에게 답하실 때는 토라를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마태복음 4:4). 여기서도 낱말은 아르토스입니다. 이것이 집안 식탁의 빵, 사람들이 한 해 내내 날마다 먹던 빵입니다.

절기를 말할 때

복음서 기자들은 자기들이 그 차이를 알았음을 보여 줍니다. 무교절을 말할 때는 정확히 아주모스를 씁니다. 마지막 주간에 대한 마태의 기록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준비할 곳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이 있었던 때를 절기 이름으로 밝힙니다.

마태복음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슈아(예수)께 나아와 말했다. “어디서 당신을 위해 파스카(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헬라어 첫마디는 테 데 프로테 톤 아주몬, 곧 「누룩 없는 것들의 첫날에」입니다. 톤 아주몬은 아주모스의 속격 복수입니다. 마태는 「빵의 첫날」이라고 쓰지도, 그 무렵을 가리키는 막연한 낱말을 쓰지도 않습니다. 그는 누룩 없는 빵의 절기 이름인 전문 용어를 아주 정확하게 씁니다. 그는 그 낱말이 무슨 뜻이며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와 누가도 같은 장면을 같은 이름으로 밝힙니다.

마가복음 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그분께 말했다: “우리가 어디 가서 당신이 파스카(유월절)를 잡수실 것을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누가복음 22:7 무교절의 그날이 왔으니, 파스카(유월절)가 희생되는 것이 요구되었다.

토라는 누룩 없는 빵을 14일 저녁부터 시작하는데, 제자들이 준비하러 간 날을 어떻게 “무교절의 첫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답은 4장에서 본 하루를 세는 두 방식에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의 한 사람의 「오늘」에는 성경의 날이 둘 들어 있습니다. 서기 33년,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인 3월 30일의 낮은 니산월 12일이었고, 그 낮에 제자들이 보내져 준비를 마쳤습니다(마태복음 26:19, 누가복음 22:13). 그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되자 13일이 시작되었고, 그 저녁에 만찬을 먹었습니다. 복음서는 낮은 12일이고 저녁은 13일인 그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무교절의 첫날”이라고 부릅니다.

마가가 예슈아를 해치려는 음모의 때를 밝힐 때도 그렇게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 이틀 후였다.”(마가복음 14:1) 여기서 헬라어 낱말은 타 아주마입니다. 누가도 그렇게 합니다. “무교절, 곧 파스카(유월절)라 불리는 헤오르테(절기)가 가까이 왔다.”(누가복음 22:1) 헬라어로는 헤 헤오르테 톤 아주몬입니다. 다음 장에서 이 구절들과 이와 비슷한 구절들을 모읍니다. 절기와 그 누룩 없는 빵을 말할 때마다 기자들은 아주모스를 집어 듭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것들은 서로 다른 네 절기가 아니었습니다. “무교절의 첫날”, “무교절의 그날이 왔으니, 파스카(유월절)가 희생되는 것이 요구되었다”, 유월절 절기가 다가옴, 그리고 “무교절, 곧 파스카(유월절)라 불리는 헤오르테(절기)”는 모두 같은 한 시기를 부르는 여러 방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때는 저마다 제멋대로 절기를 지키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얼마나 엄격하게 붙들었던지, 지도자들이 그것을 근거로 예슈아까지 죽음에 넘긴 시대였습니다.

요한복음 19:7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에게 노모스(법)가 있고, 우리 노모스(법)에 따르면 그는 죽어야 한다, 이는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런 시대에 절기를 부르는 낱말들은 신중하게 쓰였으니, 그 시대 사람들이 쓴 뜻대로 읽어야 합니다. 그 시대의 삶을 제쳐 두고 오늘날의 습관으로 복음서를 재는 읽기는 바로 이 대목에서 길을 잃습니다.

식탁 위의 빵

이제 제자들이 질문한 날짜에서 식탁 자체로 눈을 돌려 봅시다. 마태는 방금 절기를 가리켜 아주모스를 썼습니다. 몇 절 뒤에 그는 예슈아께서 만찬에서 빵을 드신 일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26:26 그들이 먹을 때 예슈아(예수)께서 빵을 취하시고 에우카리스테사스(감사드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취하여 먹어라. 이것이 내 소마(몸/육체)이다.”

헬라어는 라본 호 이에수스 톤 아르톤, 곧 “예슈아(예수)께서 빵을 취하시고”입니다. 낱말은 아르톤, 아르토스의 한 형태입니다. 방금 절기를 가리켜 톤 아주몬이라고 쓴 마태가 여기서는 아주모스를 쓰지 않습니다. 보통 빵을 가리키는 보통 낱말 아르토스를 씁니다.

마태가 독자에게 그 식탁의 빵이 누룩 없는 빵이었다고 알리려 했다면, 그 낱말은 바로 그의 앞에 있었습니다. 불과 몇 줄 앞에서 그것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 보통 빵을 뜻하는 낱말을 골랐습니다. 평범한 저녁에 한 집안이 먹던 빵, 이제 곧 예루살렘의 모든 집에서 치워질 빵입니다.

영어가 가리는 것

영어 번역 대부분은 두 낱말을 모두 같은 영어 낱말 「bread」로 옮기고, 헬라어가 아주모스를 쓴 곳에만 「unleavened(누룩 없는)」를 덧붙입니다. 영어 독자는 「예슈아께서 빵을 드셨다」를 읽으면서, 유월절 식탁에 올랐으리라 상상하는 어떤 빵이든 떠올립니다. 평범한 낱말은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며, 헬라어 독자라면 곧바로 보았을 차이를 놓치기 쉽습니다.

YLV 는 이 집안의 다른 낱말들도 눈에 보이게 살려 둡니다. 바울이 누룩을 말하는 곳에서는 헬라어 낱말을 뜻과 함께 「쥐메(누룩, 부패)」(고린도전서 5:6)라고 적어, 독자가 아주모스가 부정하는 그 뿌리 낱말을 볼 수 있게 합니다. 헬라어에 빵을 가리키는 낱말이 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물음은 단순해집니다. 기자들은 마지막 만찬의 빵을 어떤 낱말로 적었습니까? 그 답은 의견의 문제도, 교회 전통의 문제도 아닙니다. 확인해 보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헬라어 본문에 적혀 있습니다.

마태는 아르토스를 썼습니다. 이것이 한 증인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마태 한 사람에게만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마가, 누가, 바울이 저마다 같은 순간을 전했고, 저마다 두 낱말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같은 선택 앞에 있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네 증인을 모두 식탁으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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