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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41장 / 전체 47장

같은 방식으로 걸으라

이 주장은 깊은 감사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니, 듣는 사람도 그 마음으로 들어야 마땅합니다. “예슈아께서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모든 것을 다 지키셨고, 그것이 믿는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 가운데 일부는 그대로 사실이며, 바로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예슈아께서는 실제로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키셨고,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애써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점도 사실입니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죄인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값없는 선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물음은 예슈아께서 계명들을 지키셨느냐가 아닙니다. 분명히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물음은 왜 지키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지키신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을까요. 앞의 주장은 한 가지 답을 내놓지만, 신약성경은 여러 차례에 걸쳐 그와 다른 자기의 답을 들려줍니다.

그와 같이

먼저 계명을 지키신 일에 관해 예슈아께서 친히 하신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10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나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어 그분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는 것과 같다.

이 구절은 2장에서 구원의 셋째 단계를 다룰 때 이미 나왔습니다. 여기서는 이 구절을 하나로 묶어 주는 짧은 말 「같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어로는 카토스(같은 방식으로, 같은 정도로)입니다.

예슈아께서는 두 문장을 나란히 놓으십니다. 첫째 문장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나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니」는 제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둘째 문장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어 그분의 아가페(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예슈아 자신에 관한 말씀입니다. 「같다」라는 말이 이 둘을 묶어,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키신 그 모습이 제자들이 예슈아의 계명들을 지키는 본이 되게 합니다.

예슈아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켰으니, 너희는 내 계명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슈아께서 지키신 일이 제자들이 지키는 일의 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지키신 일은 우리가 지킬 것을 대신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킬 모양을 보여 주려고 주신 것입니다.

따라 쓸 글씨본

베드로는 같은 말을 더 쉬운 말로 합니다.

베드로전서 2:21 이를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메시아(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며, 너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본을 남겨 주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고난에 관해 쓰면서 메시아께서 받으신 고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메시아께서 남기셨다고 그가 말하는 것은 「본」이며, 그 본은 「너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남기신 것입니다.

「본」에 해당하는 말은 휘포그람모스(글씨본)인데, 학교에서 쓰던 말입니다. 아이가 글씨를 배울 때 선생님이 서판 맨 위에 글자를 써 주면, 아이는 그 아래에 한 획 한 획 따라 썼습니다. 서판 맨 위에 적힌 그 본이 바로 휘포그람모스였습니다.

그 아이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선생님이 흠잡을 데 없는 글씨로 한 줄을 써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이 완벽하게 쓰셨어요. 그걸로 충분해요. 저는 아무것도 안 써도 돼요”라고 말한다고 해 봅시다. 어느 선생님이든 빙그레 웃으며 연필을 다시 쥐여 줄 것입니다. 그 완벽한 한 줄은 아이가 연필을 내려놓으라고 쓴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연필을 어떻게 쥐어야 할지 알게 하려고 쓴 것입니다.

베드로의 둘째 그림인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도 같은 점을 말합니다. 「발자취」에 해당하는 말은 이크노스(발자국, 자취)입니다. 누군가 깊이 쌓인 눈 속을 앞서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고, 뒤따르는 사람은 그 발자국에 제 발을 디딥니다. 발자국은 그 안을 딛고 걸으라고 생긴 것입니다.

그분이 걸으신 길

요한은 셋째 증언을 덧붙입니다.

요한일서 2:6 그분 안에 머문다고 말하는 이는 그분이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하신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무가 있다」에 해당하는 말은 오페일로(빚지다)로, 빚을 진 것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메시아 안에 머문다고 말하는 사람은 메시아께서 걸으신 대로 걸어야 할 빚을 진 것이며, 요한은 이것을 그저 권하는 말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예슈아께서 어떻게 걸으셨는지는 이미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켰다고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슈아께서는 토라를 두고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노모스(법)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이 구절은 1권에서 살펴보았으니, 여기서는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는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그분처럼 걸으라는 말을 듣는 그분은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의 말대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문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걸으신 대로 걸어야 할 빚을 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밝힙니다.

로마서 8:29 이는 그분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이 되도록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프로토토코스(처음 난 분)로 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들은 순종하는 삶을 살고 다른 자녀들은 예전 모습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녀들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프로토토코스(처음 난 분)」이신 아들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처음 난 이가 앞서가면 형제들이 같은 집안의 모습을 지니고 그 뒤를 따릅니다. 그분의 형상과 같이 된다는 것은 그분이 걸으신 대로 걷는 것입니다.

받고, 그리고 걷고

그렇다면 앞의 주장은 어디서 어긋날까요. 감사하는 마음에서도, 구원은 받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데서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받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마지막 말에서 어긋납니다.

바울은 받는 일과 걷는 일을 한 대목 안에 함께 두었습니다. 많은 독자가 1장에서 읽은 에베소서 2:8-9를 압니다.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았고,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바로 다음 절이 이어집니다.

에베소서 2:10 이는 우리는 그분[하나님]의 포이에마(만드신 작품)로서, 하나님이 우리가 그 안에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하도록 미리 준비하신 선한 행위들을 위해 메시아(그리스도) 예슈아(예수)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두 부분을 함께 읽어 보십시오. 8절과 9절에서 우리는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1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그 안에서 페리파테오(걷다/행하다)하도록 미리 준비하신 선한 행위들을 위해」 메시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행위가 구원을 낳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그 행위들을 위해 지어진 사람을 낳습니다. 그 행위들도 우리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셨고, 우리 몫은 그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진리의 두 반쪽은 이렇게 맞물립니다. 누군가 “메시아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으니, 이제 우리는 받은 사랑 안에서 온 힘을 다해 그분을 따릅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멘 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일은 완전하며, 우리가 무엇을 해도 거기에 보탤 것은 없습니다. 앞의 주장이 놓친 단 한 가지는, 그분이 그 길을 걸으신 것은 우리가 집에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분은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알도록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서판 맨 위의 한 줄은 완벽하게 쓰였고, 이제 연필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흔히 한 걸음이 더 나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좋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쓰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 말입니다. 십계명이 아니라 그것이 참된 법입니다.” 따뜻하고 마음을 울리는 생각이며, 이 생각은 성경 자체가 사랑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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