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에 선 바울 · 38장 / 전체 47장
두 언약의 약속과 조건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때 사람들이 흔히 드는 비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둘 다 기억하기 쉽고, 이 설교에서 저 설교로 손쉽게 옮겨 다닙니다.
첫째는 계약에 빗댄 이야기입니다. “십계명은 쌍방 계약입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습니다. 계명들을 보십시오. 모든 계명의 주어는 ‘너’입니다. 너는 하라, 너는 하지 말라. 반면에 새 언약은 일방 계약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집에 빗댄 이야기입니다. “새 언약에서 하나님은 ‘내가 집을 사 줄 테니 마음 편히 살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옛 언약에서 하나님은 ‘계약금은 내가 보태 주마. 나머지는 네 힘으로 갚아라. 못 갚으면 집을 빼앗길 줄 알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비유 모두 은혜에 관하여 참된 면을 짚어 내지만, 동시에 옛 언약에 대해서도 어떤 주장을 펼칩니다. 이 장에서는 성경 본문에 비추어 그 주장을 저울질해 보겠습니다.
첫마디는 “나”입니다
모든 계명의 주어가 정말로 “너”입니까?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하신 첫마디가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다.
히브리어 본문의 첫 낱말은 “너”가 아니라 「아노키(나)」입니다. “너는 ~하라”라는 말씀이 한마디도 나오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미 이루신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분이십니다.
우리는 7장과 29장에서 구원이 계명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짚고자 하는 바는 훨씬 더 단순합니다. 첫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고, 동사는 과거형입니다. 계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구원하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한 장 앞에서도, 이스라엘이 산에 처음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4-5 내가 이집트에 행한 일과,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내게로 데려온 것을 너희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잘 듣고 내 언약(베리트)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온 땅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4절은 “나”라는 말로 가득합니다. 「내가 이집트에 행한 일」, 「내가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 「내게로 데려온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나서야 5절에서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잘 듣고」라고 하십니다. 이 「~하면」이라는 말은 이미 독수리 날개에 업혀 온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로부터 거의 사십 년이 흐른 뒤, 모세는 왜 그 모든 일이 일어났는지 이스라엘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신명기 7:7-8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모하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모든 백성보다 많아서가 아니었으니,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 가장 적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하던 집, 곧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속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크거나 무슨 자격이 있어서 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그들을 택하셨고, 그리하여 「종살이하던 집, 곧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옛 언약은 “이 계명들을 지켜라,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구속받은 백성에게 주신 삶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하겠다”라고 하시는 일
비유의 다른 한쪽을 보면, 사람들은 새 언약을 두고 하나님이 “내가 너를 위해 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시는 일방적인 약속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는가인데, 우리가 36장에서 읽은 히브리서 8장 10절이 그 답을 들려줍니다. 「내 노모이(법들)를 그들의 디아노이아(생각) 안에 두며, 그들의 카르디아(마음들, 혼적영역들)에 기록하겠고」. 하나님께서 자기 편에서 하시는 일은 자기 율법을 자기 백성 안에 두시는 것입니다.
이 책 8장에서 읽은 에스겔의 말씀도 똑같습니다. 「너희가 내 규례(호크)대로 행하고 내 판결(미쉬파트)을 지켜 행하게 하겠다」(에스겔 36:27). 후킴(규례들)과 미쉬파팀(판결들)은 새로운 낱말이 아닙니다. 토라가 자기 계명들을 일컬을 때 쓰는 바로 그 낱말들입니다(신명기 4:5, 8; 6: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일은, 그들이 바로 그것들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일방적인 약속은 새 언약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토라에 나와 있습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씨(제라)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어, 네가 마음을 다하고 혼(네페쉬)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살게 하실 것이다.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거기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곧 「네가 마음을 다하고 혼(네페쉬)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이 말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마음을 바꾸어 주시겠다는 약속은, 새 언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이미 옛 언약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 조건도 없는 언약인가?
또한 계약에 빗댄 비유는 새 언약에 아무런 조건도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피를 말하는 바로 그 서신이 순종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29절의 경고를 읽었는데, 여기 메시아 자신에 관해 말하는 또 다른 구절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5:9 완전하게 되시어,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순종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파쿠오(귀 기울여 듣고 따르다)입니다. 구원은 그분이 주시는 선물이며, 성경은 그 선물을 받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분께 순종하는 이들이라고 부릅니다.
집은 이미 지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두 번째 비유인 집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평생 좁은 셋방을 전전하며 살아온 한 가족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느 날 누군가 그들에게 열쇠와 주소를 건네줍니다. 차를 몰고 가 보니 다 지어진 집 한 채가 서 있습니다. 가구가 다 들어가 있고, 식료품실은 가득 차 있으며, 뒤뜰에는 나무마다 이미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계약금도 없고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도 없습니다. 그 집은 그냥 그들 것입니다. 부엌 조리대 위에 쪽지가 한 장 놓여 있는데, 거기에는 “매달 1일에 집세를 내시오”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누가 이 집을 주었는지 잊지 마십시오.”
이 그림은 새 언약의 예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거의 글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신명기 6:10-1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에게 주겠다고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땅으로 너를 들이시고, 네가 짓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과, 네가 채우지 않은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한 집들과, 네가 파지 않은 우물들과, 네가 심지 않은 포도원과 올리브 나무를 주셔서 네가 먹고 배부를 때에, 너는 스스로 삼가,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
이스라엘은 「네가 짓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과 「네가 채우지 않은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한 집들」을 받았고, 자기들이 파지 않은 우물들과 자기들이 심지 않은 포도원과 올리브 나무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계약금이 아닙니다. 이미 다 지어졌고 이미 가득 채워진 집을 거저 주신 것이며, 그 집이 보여 주는 은혜는 옛 언약에서나 새 언약에서나 똑같습니다.
조리대 위의 쪽지
하지만 하나님이 그 선물에 덧붙이신 말씀은 “마음 편히 살아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스스로 삼가 … 여호와를 잊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두 장 뒤에서 모세는 여호와를 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쉬운 말로 풀어 줍니다.
신명기 8:11 너는 스스로 삼가, 내가 오늘 너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미츠바)들과 판결(미쉬파트)들과 규례(후카)들을 지키지 않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라.
선물을 주신 분을 잊는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일을 그만둔다는 뜻입니다. 「잊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샤카흐(잊다, 무시하다, 등 뒤에 버려두다)입니다.
집은 선물이었고, 그 선물에는 하나님이 주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당부가 따라왔습니다. 나를 기억하고, 내 길로 걸어가라.
비유의 양면
두 비유를 성경 본문 옆에 나란히 놓아 보면, 둘 다 설 자리를 잃습니다.
옛 언약은 “너”를 주어로 삼는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옛 언약의 첫마디는 “나”였고, 첫 문장은 이미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말했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토라를 마음에 기록하시는데, 마음에 할례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은 이미 토라 자체가 한 약속이었습니다.
옛 언약은 계약금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다 지어서 거저 주신 집이었습니다. 두 언약 모두에서 선물에는 똑같은 말씀이 따라옵니다. 나를 잊지 말고, 내 계명들 안에서 걸어가라.
여전히 어려운 구절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첫 언약을 두고 「낡아지고 늙어가는 것은 사라지기에 가깝다」라고 말합니다. 무언가가 정말로 사라져 가고 있다면, 하나님이 왜 그것을 사람의 마음에 기록하시는지 묻는 것은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