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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30장 / 전체 47장

안디옥에서 물러선 베드로

어떤 성경 구절은 워낙 자주 인용되다 보니 아예 정해진 해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합니다. 다음 구절도 그렇습니다.

갈라디아서 2:18 이는 내가 허물었던 것들을 다시 세우면, 나 자신이 범법자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는 흔히 이런 주장이 따라붙습니다. 바울은 한때 토라 아래에서 살았으나 메시아를 만난 뒤 토라를 헐어 버렸고, 따라서 믿는 이가 다시 토라를 지키기 시작하면 바울이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는 셈이어서 스스로 범법자임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 구절을 그렇게 읽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다가 민족들을 위한 사도가 된 사람이니, 「내가 허물었던 것들」이라는 말은 얼핏 자기가 살아온 옛 삶을 가리키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무언가를 헐어 버렸다고만 할 뿐, 무엇을 헐어 버렸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헐었는지 알려면 다른 글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앞뒤 문장을 함께 읽어 보아야 합니다.

썩은 들보와 집터

오래된 집을 고치던 건축업자가 공사를 절반쯤 마쳤을 때 집주인에게 “제가 뜯어낸 것은 다시 끼워 넣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단호하고도 분별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뜯어냈느냐에 따라 그 뜻은 전혀 달라집니다. 썩은 들보를 뜯어냈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집터를 뜯어냈다면 집주인은 마땅히 크게 놀라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의 핵심 낱말들은 건축가의 말입니다. 「허물었던」에 해당하는 동사는 카탈뤼오(헐다, 해체하다, 무너뜨리다)이고, 「다시 세우다」에 해당하는 동사는 오이코도메오(집을 짓다, 건물을 세우다)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말한 그 집 안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무엇이 무너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디옥

이 단락은 안디옥에서 벌어진 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4장에서는 바울이 형제를 어떻게 꾸짖었는지 보려고 이 장면을 살폈지만, 이번에는 어떤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2:12 이는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오기 전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자 할례파를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서고 자신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민족들 가운데서 믿게 된 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이르자 물러섰고,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물러섰으며, 심지어 바나바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맞서며 말했습니다. “어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는가?”(갈라디아서 2:14).

문제는 베드로가 토라를 지키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민족들 가운데서 믿게 된 이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지, 아니면 먼저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바울이 던진 질문은 베드로가 물러선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정확히 짚어 줍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네 번 나오는 의롭다 하심

이어서 바울은 왜 그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2:16-17 그러나 사람은 행위들의 노모스(법)로 의롭게 되지 않고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메시아(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메시아(그리스도) 예슈아(예수)를 믿었으니, 이는 행위들의 노모스(법)로는 모든 사르크스(육체)가 의롭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메시아(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우리 자신도 죄인으로 발견된다면, 메시아(그리스도)는 죄의 디아코노스(일꾼)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5장에서 16절 한 문장 안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이 세 번 나오는 것을 세어 보았습니다. 17절은 여기에 네 번째 표현을 더합니다. 「메시아(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쓰인 동사는 디카이오오(의롭게 만들다, 의롭다고 선언하다)입니다.

이 단락에서 다루는 문제는 믿는 이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하는지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가입니다. 5장에서 보았듯이, 이 편지에서 말하는 「행위들의 노모스(법)」는 할례파가 줄기차게 강요하던 바로 그것, 곧 의롭다 인정받는 조건으로 내세운 토라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18절은 그 바로 뒤에 이어지며, 문장을 여는 「이는」이라는 낱말이 앞 내용과 18절을 곧바로 묶어 줍니다. 바울이 헐어 버렸던 것은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던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이력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가망을 다 버렸고, 「메시아(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메시아를 믿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이제 와서 민족들에게 속한 사람들을 대할 때 마치 할례를 받아야만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 그 옛길로 돌아가 그것을 다시 세운다면, 자기가 허물어뜨린 바로 그 건물을 다시 짓는 셈이 됩니다. 베드로가 안디옥 식탁에서 하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범법자」를 뜻하려고 쓴 낱말에는 한 가지 세부적인 뜻이 더 담겨 있습니다. 그 낱말은 파라바테스(선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단락의 맺음말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은 같은 내용을 반대편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6장에서 읽었습니다. 「노모스(법)를 통해 디카이오쉬네(의로움)가 있다면 메시아(그리스도)는 도레안(헛되이) 죽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2:21). 그 바로 앞에서 바울은 「나는 하나님의 하리스(은혜)를 무효로 만들지 않으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쓰인 동사는 아테테오(제쳐 두다, 물리치다)입니다. 바울이 제쳐 두기를 거부하는 것은 은혜이며, 메시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율법을 통해 얻는 의입니다. 단락의 처음과 끝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바울이 헐어 버린 건물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였습니다.

바울 자신의 증언

만일 바울이 토라 자체를 헐어 버렸다면, 어딘가에서는 그렇게 말했을 법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말했고,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모세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친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졌을 때, 장로들은 바울에게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의 비용을 대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 관해 들은 것들이 아무 근거 없음을 모두 알게 될 것이고, 당신도 노모스(법)를 지켜 행하는 사람임이 드러날 것입니다」(사도행전 21:24)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19장에서 읽었습니다. 「아무 근거 없음」이란 그 소문이 헛소문이라는 뜻이며, 바울은 장로들이 요청한 대로 행했습니다.

총독 벨릭스 앞에 섰을 때에도 바울은 자기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노모스(법)와 예언자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사도행전 24:14). 로마서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노모스(법)를 폐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모스(법)를 세운다”(로마서 3:31). 우리는 이 구절을 4장에서 읽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메아리를 더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8절에 나오는 카탈뤼오라는 동사는 예슈아께서 산 위에서 쓰신 바로 그 동사입니다. “내가 노모스(법)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마태복음 5:17). 바울이 무엇을 헐어 버렸든, 그의 주님께서 폐하러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그것을 헐어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바닥에 무너져 있는 것

그러니 다시 그 집 안으로 들어가서 바닥에 무엇이 무너져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집터가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조상들의 하나님, 토라, 선지자들의 글, 그리고 바울이 지키고 굳게 세웠던 계명들이라는 집터는 그대로 서 있습니다. 산산조각 나 바닥에 뒹구는 것은 썩은 들보입니다. 사람이 자기 행위로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있다거나, 민족들 가운데서 믿게 된 이들이 식탁에 함께 앉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 썩은 들보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헐어 버렸고 다시는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또한 그래야 합니다.

시내산 언약이 폐해졌다는 결정적 증거로 많은 독자가 꼽는 본문이 갈라디아서에 하나 더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바울은 「노모스(법) 아래에 놓여 있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로 눈을 돌려 두 여인과 두 언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갈라디아서 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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