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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20장 / 전체 47장

하나님의 몫과 우리의 몫

이번 주장은 앞의 것보다 조용하고, 겸손하게 들립니다. “우리에게 계명을 지킬 힘이 있어서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실 것이고, 그다음에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맞는 부분이 많고, 그 점은 분명히 말해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8장에서 보았듯이, 그분은 자기 백성 안에 그분의 영을 두어 그들이 그분의 규례대로 행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나서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미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진리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이 주장은 거기서 한 가지 결론을 끌어내는데, 그 결론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아직 행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른 결론을 끌어냅니다. 성경은 “그 일이 일어나면 그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니 지금 행하라고 합니다.

자동차와 연료

누군가 여러분의 차에 연료를, 그것도 가장 좋은 연료를 가득 채워 주고 열쇠를 건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연료는 여러분이 스스로 살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이 없으면 차는 어디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연료가 차를 몰지는 않습니다. 연료가 열쇠를 돌리거나 운전대를 잡거나 페달을 밟지는 않습니다. 조수석에 올라앉아 차가 저절로 출발하기를 기다린다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것입니다. 연료는 여러분이 운전할 수 있게 하려고 준 것이지, 운전하지 않아도 되게 하려고 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순서입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너는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너는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둘을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습니다. 2장에서 읽은 구절인데, 여기서는 그 앞뒤 순서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빌립보서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받는 이들이여, 여러분이 항상 순종한 것처럼 — 나의 현존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제 나의 부재 가운데서 더욱 — 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라. 이는 하나님 자신이 에우도키아(선한 뜻)를 위해 여러분 안에서 원함과 행함을 일으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두 절을 작은 말 하나가 잇습니다. 「이는 … 때문이다」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라, 「이는 하나님 자신이 … 여러분 안에서 원함과 행함을 일으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을 까닭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움직이기 시작할 까닭으로 주어집니다.

「일으키시는」에 해당하는 낱말은 에네르게오(작용하다)로, 작용하다, 힘을 내다는 뜻이며, 우리말의 「에너지」도 여기서 왔습니다. 「원함과 행함」의 힘을 대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바울은 바로 그분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12절을 여는 바울의 첫마디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항상 순종한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께서 먼저 움직이시기를 기다렸다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줄곧 순종해 온 사람들에게 쓰면서, 계속하라고, 이제는 전보다 더욱 그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미 주셨다

베드로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1:3 그분의 신성한 뒤나미스(능력)가 자신의 영광과 탁월함으로 우리를 부르신 분의 에피그노시스(신령한, 온전한 지식)를 통해, 조에(생명)와 경건함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시제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베드로는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주셨으니」라고 씁니다. 뒤나미스(능력)는 능력, 곧 일을 해내는 힘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아직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어졌다고, 경건한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움직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 따르면 그분은 이미 움직이셨습니다.

너무 어렵지도, 멀지도 않다

바울과 베드로보다 훨씬 전에 모세도 계명 자체를 두고 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명기 30:11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네게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어려운」에 해당하는 낱말은 팔라(놀랍다 · 어렵다)입니다. 놀랍다는 뜻도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손이 닿지 않는다, 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뜻입니다. 「멀리 있는」에 해당하는 낱말은 라호크(멀다)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이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절들에서 모세는 그 계명이 하늘에 있지도 않고 바다 건너에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매우 가까워, 네 입과 네 마음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신명기 30:14)고 말합니다.

마지막 말은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시고 나서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더 하기 전에는 이것을 해 보려 하지 말라”고 덧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가깝다고, 행하라고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을 한 문장에

이 주장 안에는 조용한 전제가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이 주장은 흔히 「예슈아께서 주신 계명」과 토라를 서로 다른 것으로 다룹니다. 마치 예슈아께서 다른 지침을 가져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의 한 문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너희도 그들에게 행하라, 이것이 곧 노모스(법)와 선지자들이다.

사람들이 황금률이라고 부르는 말씀인데, 예슈아께서는 이 말씀을 두고 「이것이 곧 노모스(법)와 선지자들이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노모스는 토라를 뜻합니다. 예슈아께서는 그분의 이 규칙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대신한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한 문장에 모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슈아의 계명과 토라가 서로 다른 것이었다면,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토라와 맞서지 않고 토라를 요약합니다.

동사도 중요합니다. 「너희도 그들에게 행하라」. 황금률은 기다렸다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음번에 누군가에게 말을 건널 때부터 시작할 일입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듣고서, 그것을 신앙생활의 나중 단계로 미루어 두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른 순서

그러니 성경이 실제로 주는 순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행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니 우리가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운전하는 사람과 옆에 탄 사람의 차이입니다. 둘 다 연료를 믿지만, 운전대를 잡은 사람만 집 앞을 떠납니다.

그러나 어떤 독자에게는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지켜 보려 했을 때 겪은 일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지켜 보려고 했는데, 그것에 거의 짓눌려 버릴 뻔했습니다.” 그 경험은 따로 한 장을 들여 다룰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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