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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5장 / 전체 47장

갈라디아서 3장 10절, 온전히 읽기

사람들은 율법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흔히 이 구절을 끌어오며, 그 말의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토라를 그저 낡았다거나, 선택 사항이라거나,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주라는 말까지 쓰기 때문입니다.

「이는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니」

여기에 기대어 내세우는 주장은 단순하고도 강력합니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 사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으니, 율법으로 돌아가 계명을 지키는 일은 곧 저주 아래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토라를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토라를 두려워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입니다.

바울이 정말로 이런 뜻으로 말했다면 반박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도 저주 아래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구절을 직접 읽어 보겠습니다. 흔히들 따오는 앞부분만이 아니라, 바울이 쓴 문장 전체를 온전히 읽어 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10 이는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니, 기록된 것처럼 — “노모스(법)의 비블리온(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해 그것들 안에 머물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

이 구절은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 주장은 오직 앞부분만 따옵니다.

칠판에 적힌 알림

월요일 아침에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 칠판에 이렇게 적는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 오후에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은 남아서 벌을 받아야 한다. 숙제를 내지 않는 사람은 남아서 벌을 받는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 앉은 학생 가운데 누가 남아서 벌을 받는지 헷갈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숙제를 낸 학생들은 오후 내내 남아 있을 채비를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장이 첫 번째 문장을 설명해 주므로,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은 곧 숙제를 내지 않은 학생들을 가리킵니다. 칠판의 글을 읽고서 숙제를 내면 벌을 받는다고 결론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선생님이 세운 규칙을 정반대로 뒤집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절도 똑같은 짜임새로 되어 있습니다. 첫 마디는 어떤 사람들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기록된 것처럼」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밝혀 주는 규칙이 뒤따릅니다.

뒷부분부터 먼저 읽기

그러므로 바울의 설명이 담긴 뒷부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기록된 것처럼」이라고 말할 때, 바울은 토라인 신명기 27장 26절을 따오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백성이 그 땅에 들어갈 때 모세가 “아멘”이라고 화답하게 한 긴 저주 목록의 맨 마지막 말씀입니다.

신명기 27:26 이 토라의 말씀을 굳게 세워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온 백성이 말하기를, 아멘 할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아루르 아셰르 로 야킴」, 곧 「세우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입니다. 여기서 「로」라는 짧은 낱말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토라의 말씀들을 행하여 세우는 사람에게 저주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립니다.

갈라디아서의 헬라어 본문도 같은 말을 합니다. 바울은 「우크 엠메네이(머물러 있지 않는다)」라고 썼는데, 예슈아 직역성경(YLV)은 이를 「그것들 안에 머물지 않는」이라고 옮겼습니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자리를 잡고 계속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기록된 말씀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에게 저주가 내립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뒷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합니다. 저주는 토라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토라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립니다.

그렇다면 앞부분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제 앞부분인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모두」라는 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헬라어로는 「호소이 엑스 에르곤 노무(법의 행위들에서 난 자들은 다)」입니다.

기존의 주장은 이 사람들을 토라를 지키는 사람들로 여깁니다. 하지만 구절 전체를 그렇게 읽으면 문장 스스로가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앞부분은 토라를 지키는 사람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하는데, 모세의 말을 따온 뒷부분은 토라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문장이 정반대되는 말을 근거로 삼는 꼴이 됩니다.

바울은 글을 그렇게 쓰지 않았으며, 신중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뒷부분이 「기록된 것처럼」으로 시작할 때는 앞부분에서 한 말의 이유를 대는 것이지, 앞부분의 말을 뒤집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이 앞뒤가 맞으려면,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실제로는 토라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들은 의롭게 되는 근거로 토라의 행위들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토라가 말하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읽어야 앞부분과 뒷부분이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게 되고, 신명기 27장 26절의 저주도 모세가 두었던 바로 그 자리에 정확히 놓입니다.

이는 그저 편리하게 맞추어 본 짐작이 아닙니다. 바울이 같은 편지 끝부분에서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직접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13 이는 할례받은 이들도 스스로 노모스(법)를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이 할례받기를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르크스(육체)로 자랑하려 함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의 믿는 이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던 바로 그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은 토라를 지키지 않았고, 다만 갈라디아 사람들의 육체를 두고 자랑거리로 삼으려 했습니다. 자신들은 토라 안에 머물지 않으면서 토라의 행위 하나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모두」라고 말할 때 가리키는 이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며, 신명기 27장 26절의 저주 아래 있는 이들도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편지 앞부분에 나온 같은 표현

바울은 바로 앞 장에서도 「행위들의 노모스(법)」라는 표현을 이미 썼으며, 그때도 같은 뜻으로 썼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그러나 사람은 행위들의 노모스(법)로 의롭게 되지 않고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메시아(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메시아(그리스도) 예슈아(예수)를 믿었으니, 이는 행위들의 노모스(법)로는 모든 사르크스(육체)가 의롭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한 구절 전체에 「의롭게 된다」는 말이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은 「행위들의 노모스(법)로 의롭게 되지 않」으며,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믿었고, 「행위들의 노모스(법)로는 모든 사르크스(육체)가 의롭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행위들의 노모스(법)」라고 말할 때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려고 내세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의롭게 된 사람이 토라를 지키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이 책 1장에서 시작한 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의롭게 되는 일은 메시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의롭게 되는 바탕으로 토라의 행위들을 내세우는 사람은 이미 그 토대에서 떠난 것이며, 바울이 밝혀 주듯 그런 사람들은 알고 보니 정작 자신들도 토라를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 구절을 읽는 두 가지 길

두 가지 읽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가 한눈에 드러납니다.

흔한 읽기본문 그대로 읽기
앞부분: 「행위들의 노모스(법)에 속한 이들은 모두」토라를 지키는 사람들실제로는 토라 안에 머물지 않으면서 의롭게 되는 근거로 토라의 행위들을 내세우는 사람들
뒷부분: 「그것들 안에 머물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아무리 애써도 다 지킬 수는 없으니 결국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신명기 27장 26절 말씀 그대로, 토라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에게 선포된 저주
저주가 내리는 곳토라를 지키는 쪽토라를 행하지 않는 쪽 (아루르 아셰르 로 야킴, 우크 엠메네이)
한 구절의 앞부분과 뒷부분앞에서는 “지키는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 하고, 뒤에서는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저주를 받는다” 하여 앞뒤가 어긋남앞부분과 뒷부분이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므로 앞뒤가 어긋나지 않음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말하지 않음갈라디아서 6장 13절, 「할례받은 이들도 스스로 노모스(법)를 지키지 않」는다

흔한 읽기는 마지막 질문을 끝내 답하지 못한 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결코 말하지 못하는데, 갈라디아서를 끝까지 읽어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고, 그들은 토라를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그대로 읽으면, 이 구절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놓은 글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주 아래 있는데, 그들은 기록된 말씀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했고, 온 백성에게 “아멘”이라고 화답하라 명했으며, 바울은 그 말씀을 그대로 따왔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두 구절에서 바울은 성경의 다른 두 본문, 곧 하박국 말씀과 레위기 말씀을 나란히 놓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바울이 두 번째 말씀을 내버리는 것처럼 이 구절들을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 보면, 이 구절들 또한 메시아께서 우리를 실제로 무엇에서 속량하셨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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