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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바울 · 1장 / 전체 47장

의롭다 함을 얻고, 그다음에 걷기

어느 날 밤, 휴대전화 화면에 새 운영체제를 설치할 준비가 되었다는 알림이 뜹니다. “설치”를 누르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아이콘과 메뉴가 바뀌었고, 1.0 버전의 낡고 어설픈 코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무도 옛 버전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따로 복사본을 남겨 두지도 않습니다. 새 체제가 옛 체제를 대신한 것입니다. 업데이트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도 이와 같다고 여깁니다. 구약은 1.0 버전, 곧 계명과 절기와 음식 규례를 담은 모세의 율법, 토라였습니다. 그러다가 메시아께서 오셨고, 2.0 버전인 은혜가 새로 설치되었습니다. 낡은 코드는 말끔히 지워졌고, 이제 우리는 더 나은 체제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구도에서 은혜는 율법을 대신합니다.

이 그림은 명쾌하고 마음에도 위안을 줍니다. 또한 복음의 핵심이 참으로 은혜이기에, 든든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생 이 그림을 믿어 온 사람을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이치에 딱 들어맞아 보이는 그림을 건네받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실제 업데이트에는 반드시 기록이 남습니다.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더했는지 적어 둔 변경 내역이 어딘가에 있기 마련입니다. 토라가 삭제되었다고 받아들이기 전에, 그 변경 내역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성경 본문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오며, 어느 구절이 옛 코드가 삭제되었다고 알립니까?

이 책은 장마다 바로 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단 한 번이라도 던지기 전에 먼저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오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길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오직 은혜로, 믿음을 통해, 메시아의 피로 말미암은 것이며,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로마서 3:24-25 그분의 하리스(은혜)로 도레안(값없이) 의롭게 된다. 메시아(그리스도) 예슈아(예수) 안에 있는 아폴뤼트로시스(속량/대속-해방)를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분의 피 안에서 믿음을 통한 힐라스테리온(속죄-제물)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인내 가운데 미리 지은 죄들의 용서에서 그분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나타내려 하심이며

이 대목에서 세 낱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레안(값없이)」입니다. 선물로,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준다는 뜻입니다. 받는 사람은 지금이든 나중이든 그 값을 치르지 않습니다.

둘째는 「아폴뤼트로시스(속량/대속-해방)」입니다. 바울이 살던 시대에 이 말은 포로의 자유를 사들이는 일을 가리켰습니다. 전쟁 포로나 종은 가진 것이 없기에 스스로 몸값을 치를 수 없습니다. 누군가 대신 값을 치러 주어야 비로소 문이 열립니다.

셋째는 「힐라스테리온(속죄-제물)」입니다. 속죄소, 곧 속죄가 이루어지는 자리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바로 그 자리로 세우셨고, 그리로 들어가는 길은 「그분의 피 안에서 믿음을 통한」 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말합니다.

에베소서 2:8-9 이는 여러분이 하리스(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고,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론(선물)이니,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이 선물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며, 포로가 스스로 치를 수 있는 몸값은 몸값이 아닙니다.

이 책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 진리를 굳게 지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으로 요약했는데, 이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경이 꾸짖는 일

그렇다면 처음부터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토라를 지킨 것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으려 하는 것은 이 책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경이 꾸짖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4 노모스(법) 안에서 의롭게 되려는 여러분은 메시아(그리스도)에게서 단절되었고 하리스(은혜)에서 떨어진 것이다.

계명을 지켜야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미 선물에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바울의 말로 하면, 그런 사람은 「하리스(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1권 「거룩한 성전」에서 이 구절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태도를 다루고 있음을 살펴보았고, 여기서도 정확히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만일 앞으로 이어지는 장들을 읽다가 구원을 받기 위해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는 대목이 있다면, 다시 이 페이지로 돌아오십시오. 이 책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의인이 걷는 길

바로 이 지점에서 업데이트라는 그림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지뿐만 아니라 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걷는지도 말해 주는데, 그 걸음을 묘사할 때 계명을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1:6 둘 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들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디카이오마(의로운-행위 / 규례를 행함)들 가운데 흠 없이 나아가는 자들이었다.

이 구절은 침례자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가리킵니다. 누가는 두 사람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들」이라고 부른 뒤,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주의 모든 계명과 디카이오마(의로운-행위 / 규례를 행함)들 가운데 흠 없이 나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디카이오마」는 규례, 곧 실제로 지켜 행하는 의로운 요구를 뜻합니다. 누가는 그들의 의를 계명과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명을 통해 그들의 의를 묘사합니다.

모세도 오래전에 똑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이 모든 계명(미츠바)을 지켜 행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의로움이 될 것이다」(신명기 6:25). 이 약속은 4장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나서 오랜 뒤에 신자들에게 글을 쓴 요한 역시 같은 말을 합니다.

요한일서 3:7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행하는 이는 의로운 이이니, 그분이 의로우신 것과 같다.

요한은 누군가가 의롭게 되는 것과 의를 행하는 것을 갈라놓으려 할 줄로 내다보고, 독자들에게 그런 말에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요한의 말로 하면,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행하는 이는 의로운 이」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똑같이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은 노모스(법)를 듣는 자들이 아니라 노모스(법)를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로마서 2:13). 바울은 듣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선을 긋고, 의인을 행하는 쪽에 둡니다.

질문은 하나가 아니라 둘

이 구절들을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로마서 3장과 에베소서 2장은 한 가지 질문에 답합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가? 그 답은 은혜로, 선물로, 메시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반면 누가복음 1장, 신명기 6장, 요한일서 3장, 로마서 2장은 다른 질문에 답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어떻게 걷는가? 그 답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걷는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라는 그림은 이 두 질문을 슬그머니 하나로 합쳐 버립니다. 첫째 질문의 답인 은혜를 가져다가 둘째 질문의 답을 지우는 데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계명은 삭제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추론합니다.

그러나 첫째 답의 그 무엇도 둘째 답을 무효로 만들지 않습니다. 몸값으로 풀려난 포로는 자유를 얻기 위해 값을 치르지 않지만, 일단 자유의 몸이 된 뒤에는 어디로든 걸어가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가야 합니다. 선물은 문을 열어 줍니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서 문 너머의 길에 방향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은혜가 사람을 구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분명히 사람을 구원합니다. 진짜 질문은 토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판단할 때도 오직 성경만이 기준이 되도록 허락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묻는 문제에서, 과연 교회는 오직 성경만 읽었습니까, 아니면 성경 본문이 예고한 적도 없는 업데이트라는 그림을 통해 성경을 읽었습니까?

이 책을 읽는 법

이 부의 각 장은 설교나 성경 공부, 혹은 친구 사이의 편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주장을 하나씩 다룹니다. 먼저 각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로 공정하게 제시한 뒤, 성경 본문을 펼쳐 살펴볼 것입니다.

모든 성경 구절은 예슈아 직역성경(YLV)에서 인용합니다. 이 성경의 신약은 「도레안(값없이)」이나 「하리스(은혜)」처럼 중요한 헬라어 낱말들을 본문에 그대로 살려 두고 그 옆에 짧은 뜻을 덧붙였으며, 비잔틴 다수 본문(로빈슨-피어폰트 2018)을 기준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구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 마소라 본문에서 옮겼습니다. 어느 것 하나 덮어놓고 믿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구절은 앞뒤 문맥과 함께 독자 여러분이 가진 성경으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으며, 꼭 그렇게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모든 주장은 하나의 단순한 틀 위에 놓여 있으므로, 먼저 그 틀부터 짚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는 순서가 있으며, 바로 그 순서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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