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전 · 40장 / 전체 45장
하옐렐과 정한 때
병원의 진료 예약 장부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장부를 쥔 사람이 누가 어느 날 몇 시에 의사를 만날지 정합니다. 누군가 그 장부를 빼앗아 자기가 원하는 이름을 적어 넣는다면, 의사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어도 의사가 만나는 모든 자리를 쥐게 됩니다.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장, 29장은 하나님의 예약 장부이며, 하나님께서는 거기 적힌 모든 날을 「내 정해진 때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면 더 어두운 물음이 뒤따릅니다. 이 날들이 하나님께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장부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으려 한 자가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렇게 하려 한 자를 밝힙니다.
한 왕을 두고 부른 노래
이사야는 그의 장담을 이렇게 적습니다.
이사야 14:12-15 너 새벽의 아들 울부짖음아!(하옐렐) 어찌하여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짓밟던 자야, 어찌하여 땅에 베여 쓰러졌는가! 너는 네 마음으로 말했다. 내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별들 위에 내 보좌를 높이고, 북쪽 끝 정해진 모임의 산(모에드)에 앉겠다. 내가 구름 꼭대기 위로 올라가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 되겠다. 그러나 너는 스올로, 구덩이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갈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구절을 세상이 시작되기 전 루시퍼의 타락으로 읽도록 배웠습니다. 그렇게 읽게 된 까닭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땅의 어느 궁전도 넘어 하늘과 별들과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덟 절 앞에서 이 장은 이 노래가 누구에 대한 것인지 스스로 밝힙니다.
이사야 14:4 네가 바벨론 왕을 두고 이 조롱의 노래를 불러 말할 것이다. 어찌하여 압제자가 그쳤는가, 그 횡포가 그쳤는가!
선지자는 이것을 「바벨론 왕을 두고 이 조롱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그 왕 뒤에 어떤 세력이 있었든, 본문이 이름을 대는 것은 왕 자신이며, 이 노래는 바벨론을 두고 부르는 조롱의 노래입니다. 노래는 히브리어 샤밭(그침)이라는 낱말로 시작합니다. 압제자가 「그쳤는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낱말이며, 영어 YLV 는 이것을 히브리어 그대로 「샤밭했다」로 살려 둡니다. 그치려 하지 않던 자가 그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 왕이 마음으로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는 「내가 ~하겠다」를 다섯 번 말하는데, 그 한가운데 이 말이 있습니다. 「정해진 모임의 산(모에드)에 앉겠다.」
모에드 산
영어 성경들은 이 말을 흔히 「집회의 산」이나 「회중의 산」으로 옮기는데, 틀린 번역은 아닙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는 짧은 두 낱말 하르 모에드, 곧 「모에드 산」입니다. 모에드는 정해진 때, 곧 정해 둔 만남을 뜻하는 낱말로, 창조 넷째 날에 처음 나옵니다.
창세기 1:14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누고, 표(오트)와 정해진 때(모에드)와 날과 해를 위한 것이 되어라.
해와 달은 「표(오트)와 정해진 때(모에드)」를 위해 하늘에 놓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있기 전에, 성전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정해진 때들을 표시하시려고 하늘에 빛들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그 때들의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레위기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으로 선포할 여호와의 정해진 때들(모에딤), 이것들이 내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이 내 정해진 때들(모에딤)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때마다 「거룩한 모임」, 곧 미크라 코데쉬,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불러 모으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모에드의 산은 무엇입니까? 그 불러 모음이 이루어지는 산,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는 곳입니다. 성경은 그 산이 어느 산인지 알려 줍니다.
시편 48:2-3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니, 우리 하나님의 성,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그러합니다. 높이 솟아 아름다워 온 땅의 기쁨이 되니, 시온 산, 북쪽 끝, 위대한 왕의 성입니다.
시편은 시온 산을 「북쪽 끝, 위대한 왕의 성」이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을 바벨론 왕의 장담, 「북쪽 끝 정해진 모임의 산(모에드)」과 나란히 놓아 보십시오. 영어 YLV 는 이 말을 두 곳에서 다르게 옮겼고 한국어 YLV 는 두 곳 모두 「북쪽 끝」으로 옮겼는데, 히브리어로는 두 곳 모두 같은 두 낱말 야르케테 차폰(북쪽 끝)입니다. 이사야의 왕은 구름 속 어딘가의 막연한 높은 곳을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시편이 기리는 바로 그 산, 모에드의 자리인 시온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의 뜻
이것을 알면 장담의 끝도 다르게 들립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 되겠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됩니까? 키가 더 커지거나 더 오래 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앉으시는 자리에 앉고 하나님께서 쥐신 것을 쥐어서 그렇게 하려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때를 정하셨고, 산을 택하셨고, 당신의 날에 당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십니다. 만남의 산을 차지하고 정해진 때들을 손에 넣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죄이며, 바벨론 자신의 말로 적혀 있습니다.
예약 장부를 빼앗은 자는 의사에게 손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오는지, 아니 오기나 하는지만 쥐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은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달력만 빼앗으면 되었습니다.
원수가 한 일
이사야는 그 야심을 적고, 시편은 그 행위를 적습니다. 시편 74편은 불탄 성소를 두고 슬퍼하며(74:7), 원수가 마침내 그 산에 섰을 때 무엇을 했는지 그려 보입니다.
시편 74:4 당신의 대적들이 당신의 정해진 모임의 처소(모에드) 한가운데서 으르렁댔고, 자기들의 표(오트)를 표(오트)로 세웠습니다.
시편 74:7-8 그들이 당신의 성소를 불태우고, 당신 이름의 성막(미쉬칸)을 땅에 쓰러뜨려 더럽혔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그들을 다 짓밟자” 하고, 땅에서 하나님(엘)의 모든 정해진 모임의 처소(모에드)를 불살랐습니다.
이 구절들은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번역이 본문의 짜임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4절의 「당신의 정해진 모임의 처소(모에드)」는 히브리어로 한 낱말 모아데카, 곧 「당신의 모에드」입니다. 8절의 「하나님(엘)의 모든 정해진 모임의 처소(모에드)」는 모아데이 엘, 곧 「하나님의 모에딤」입니다.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따로 없습니다. 대적들이 그 한가운데서 으르렁대고 불사른 것은 모에드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다른 것도 세웠습니다. 「자기들의 표(오트)를 표(오트)로 세웠습니다.」 창세기 1장 14절의 그 낱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와 정해진 때를 위해 빛들을 만드셨는데, 원수는 모에딤을 불사르고 바로 그 만남의 자리에 자기의 표를 세웠습니다.
이사야 14장의 왕은 마음으로 「정해진 모임의 산(모에드)에 앉겠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74편의 원수들은 「마음속으로 “그들을 다 짓밟자” 하고」 말했습니다. 같은 마음이 같은 과녁을 겨눈 것입니다.
견해 밑의 뿌리
안식일이나 레위기 23장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라고 배운 진실한 신자가 많습니다. 그들이 그 견해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사랑해서입니다. 20장에서 보았듯이 성경은 가르치는 자와 양을 구별하며, 우리 대부분은 배운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어떤 생각에는 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에딤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에 다른 날들을 세우려는 가르침은 사람의 견해 이상입니다. 그 모양은 오래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 14장의 모양이요 시편 74편의 행위, 곧 산을 차지하고, 만남을 불사르고, 자기의 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소와 달력을 다루는 이 장들은 하찮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정해진 때는 한 번도 곁가지였던 적이 없습니다. 원수가 거듭거듭 겨누는 것은 모에드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한 책은 하나님께서 친히 절기들을 거두어 가셨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정해진 때(모에드)와 샤밭을 잊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이 물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