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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26장 / 전체 45장

바울이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믿음

기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누구에게나 물어보면, 대개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슈아께서 은혜를 가르치셨고, 유대 지도자들은 그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 바리새인 출신의 총명한 바울이 그 소식을 민족들에게 전하면서, 성전과 율법이 있는 옛 종교를 뒤로하고 새 종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다른 이들은 그 뒤로도 한동안 성전에 다녔지만, 그것은 아직 깨달음이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며, 바울의 편지들이 때가 되면 그들을 바로잡아 주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이야기를 전하지만, 여기에는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이 무엇을 믿었는지 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바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부른 이름

사도행전 끝부분에서 바울은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고발자들은 방금 그를 「나사렛 하이레시스(분파/종파)의 주동자」라고 불렀습니다(사도행전 24:5). 바울이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24:14 그러나 이것은 인정합니다. 나는 그들이 하이레시스(분파/종파)라고 말하는 그 도를 따라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노모스(법)와 예언자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새 종교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이레시스(분파/종파)라고 말하는 그 도」를 말합니다. 분파로 옮긴 낱말은 하이레시스(분파)인데, 누가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가리킬 때도 똑같은 낱말을 씁니다(사도행전 15:5; 5:17). 그 시대에 분파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집 안에 있는 한 무리를 뜻했지, 길 건너편에 새로 지은 집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그가 말썽 많은 한 분파에 속했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그 낱말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느 하나님을 섬기는지 밝힙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말합니다. 「노모스(법)와 예언자들에 기록된 모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아니라 모든 것입니다.

두 장 뒤,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바울은 같은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26:22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입어 오늘 이날까지 서서 작은 자에게나 큰 자에게나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이 장차 될 것이라고 말한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이 장차 될 것이라고 말한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전한 말 전체는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맨 마지막 장면에서 바울은 로마에 갇힌 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고, 바울은 그들과 함께 온종일 이렇게 지냅니다.

사도행전 28:23 날을 정하고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왔다. 바울이 아침부터 헤스페라(저녁)까지 모세의 노모스(법)와 예언자들의 글로부터 예슈아(예수)에 관한 것들을 설득하며 하나님의 바실레이아(왕국)를 증언했다.

「아침부터 헤스페라(저녁)까지 모세의 노모스(법)와 예언자들의 글로부터」 전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토라로 예슈아를 전하는 장면으로 책을 끝맺습니다. 만일 바울이 토라를 버리고 떠났다면, 누가가 바울을 이런 모습으로 남겨 두고 책을 맺은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바울이 일한 방식

바울이 일한 방식은 그가 전한 말과 맞아떨어졌습니다. 1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이 도시 저 도시에서 늘 회당부터 찾아갔습니다.

사도행전 17:2-3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그들에게 들어가서 세 사바톤들(레위기 23장의 모든 모에드를 지칭함) 동안 그라페(기록된-성경)들로 그들과 토론하며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함을 열어 제시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예슈아(예수)가 바로 메시아(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했다.

「자기 관례대로」였습니다. 바울은 모세의 글을 읽는 곳으로 찾아갔고, 거기서 「그라페(기록된-성경)들로 그들과 토론하며」 메시아께서 고난을 받고 살아나셔야 했음을 성경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이 펼친 책은 회당이 이미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남들이 붙여 준 이름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낱말이 새 종교가 태어났다는 증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이름은 안디옥에서 처음 나옵니다.

사도행전 11: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둘은 온 한 해 동안 에클레시아(불러내신-공동체)에 함께 모여 많은 무리를 가르쳤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메시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불렸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메시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한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여 준 이름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고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믿는 이들이 그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일을 두고 이 말을 한 번 언급하지만(베드로전서 4:16),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믿음을 대신한 종교의 이름으로 이 말을 쓰는 모습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방금 바울에게서 들었듯이, 그들이 부른 이름은 「그 도」였습니다.

그 도를 따라 걷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보십시오. 고린도에서는 이러했습니다.

사도행전 18:8 그런데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과 함께 주를 믿었고, 많은 고린도인들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다.

「회당장 그리스보」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제사장들의 큰 무리」가 믿었습니다(사도행전 6:7). 그리고 16장에서 보았듯이, 유대인 신자가 수만 명이었고 「그들이 모두 노모스(법)에 열심 있는 자들」이었습니다(사도행전 21:20). 회당장, 성전의 제사장들, 토라에 열심인 수만 명의 신자들은 토라를 버린 종교를 세운 첫 회원들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연대를 확인해 보십시오

이야기의 뒤쪽 절반이 남았습니다. 사도들이 성전에 계속 다닌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고, 바울의 편지들은 성전과 토라를 넘어섰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달력으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모두 성전이 서 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마지막 편지인 디모데후서조차 그가 죽기 직전에 쓴 것인데, 전승은 그의 죽음을 네로 때인 서기 64년에서 67년 무렵으로 봅니다. 성전은 서기 70년에 무너졌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토라를 끝냈음을 보여 준다고 가장 자주 인용되는 편지들은, 사도행전 21장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때일
서기 57년경 이전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이미 기록됨
서기 57년경사도행전 21장: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에 들어가 자신을 정결하게 함
서기 64~67년경바울의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 (전승으로는 네로 때)
서기 70년성전이 무너짐

우리는 6장에서 사도행전 2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장은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에게 한 당부입니다.

사도행전 21:24 그들을 데려다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을 위해 비용을 대어 머리를 깎게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에 관해 들은 것들이 아무 근거 없음을 모두 알게 될 것이고, 당신도 노모스(법)를 지켜 행하는 사람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소문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모세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사도행전 21:21). 야고보와 장로들은 이에 답하여, 서원한 네 사람의 예물 비용을 대고 그들과 함께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바울에게 청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 관해 들은 것들이 아무 근거 없음을 모두 알게 될 것이고, 당신도 노모스(법)를 지켜 행하는 사람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바울은 그대로 했습니다(사도행전 21:26). 훗날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그때의 방문을 자기 말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도행전 24:17 여러 해 만에 나는 내 민족에게 구제헌금과 예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예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온 까닭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책을 한 권 썼는데, 곳곳의 독자들이 그 책을 두고 저자가 옛 본가와 그 집의 법도를 등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한두 해 뒤, 그 사람이 바로 그 본가의 가족 모임에 나타나 집안 관습에 함께하고 자기 주머니에서 식사 비용까지 냅니다. 자기가 여전히 집안을 존중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명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가 위선자이거나, 사람들이 그의 책을 크게 잘못 읽었거나입니다.

바울은 위선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성전에 섰을 때 로마서는 이미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서가 무엇을 뜻하든, 바울에게 그 편지는 성전과 예물과 토라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살았던 삶

사도들에게 이런 일은 조금도 별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믿는 이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서 계속 힘쓰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46). 누가는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3:1 베드로와 요한이 아홉 번째 호라(그-시간) 곧 기도 시간에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홉 번째 호라(그-시간) 곧 기도 시간」입니다. 성전은 기도 시간을 지켰고,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과 함께 그 시간을 지켰습니다. 수십 년 뒤에도 바울은 자기가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24:11). 그리고 21장에서 보았듯이, 히브리서 기자도 여전히 현재 시제로 말합니다. 「노모스(법)에 따라 도론(예물/봉헌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다고 합니다(히브리서 8:4).

이 연대표는 바울의 편지를 읽는 모든 해석을 가려 보는 간단한 시험이 됩니다. 어떤 해석이 성전과 절기와 토라가 끝났다고 말한다면, 그 해석은 바울이 쓴 편지를 같은 해에 바울이 살던 삶과 맞서게 만듭니다.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이 사람들에게 모세를 떠나라고 가르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 소문이 근거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 소문을 사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는 사도들 자신이 민족들 가운데서 온 신자들을 위해 그 문제를 매듭지었다고 믿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열린 회의에서 사도들이 네 가지 규정만 담고 그 이상은 없는 편지를 보냈으며, 그 목록에 없는 것은 요구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회의는 세심하게 읽어 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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