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전 · 23장 / 전체 45장
외부인은 얼마나 가까이 올 수 있었는가
오늘날에는 길을 가던 사람이라도 누구나 교회에 들어와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문 앞에서 무엇을 확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이렇고, 여기에는 좋은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 세기를 살던 민족들 가운데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슈아에 관해 듣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고 가르침도 좋지만, 토라에는 관심이 없고 돼지고기를 끊을 생각도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세계 안으로 과연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경고문이 서 있던 담
예루살렘 성전에는 안뜰 둘레를 따라 낮은 돌담이 쳐져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그 담을 따라 헬라어와 라틴어로 쓴 돌 표지판들이 서 있었는데, 외국인은 누구든 그 너머로 들어가지 못하며 어기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경고였습니다. 그중 헬라어로 된 비문 하나가 온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는데, 거기에는 붙잡히는 사람이 뒤따르는 죽음을 두고 오직 자기 자신만 탓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적혀 있습니다. 깨진 비문도 하나 더 발견되어, 오늘날 두 비문 모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민족들에게서 온 사람은 바깥뜰, 곧 이방인의 뜰과 솔로몬 행각까지만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너머로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경계선을 얼마나 엄격하게 여겼을까요? 바울이 겪은 일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21:28-30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도와주십시오! 이 사람은 백성과 노모스(법)와 이 성전을 거슬러 모든 곳에서 모든 이들에게 가르치는 자인데, 또 그리스인들을 성전으로 데려다가 이 거룩한 곳을 코이노스(공통적인, 세상적인)하게 했습니다”라고 외쳤다. 이는 그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바울이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 성이 뒤흔들리며 백성이 달려들었다.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냈고 즉시 문들이 닫혔다.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 신자이자 바울의 동행이었습니다. 드로비모는 그 담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그를 데리고 들어갔으리라고 그저 짐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짐작 하나만으로 온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식탁에도 담이 있었다
식탁 또한 똑같은 기준으로 엄격히 지켜졌습니다.
사도행전 10:28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이 아데미토스(위법한)한 것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코이노스(공통적인, 세상적인)하거나 아카타르토스(부정한, 불결한)하다 부르지 말라고 내게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서 쓴 낱말은 아데미토스(금지된 일, 금기)입니다. 유대인이 외국인의 집에 들어가는 일을 두고 베드로는 바로 이 낱말을 썼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신자들은 그가 무엇을 전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1:2-3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할례받은 이들이 그를 비난하며 “당신이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소”라고 했다.
“당신이 … 함께 먹었소.” 함께 밥을 먹는 자리가 곧 경계선이었습니다.
그가 다가올 수 있었던 한계
앞서 떠올려 본 사람, 곧 복음은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돼지고기는 포기하지 않으려던 그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회당 뒷자리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 바깥뜰에 서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담을 넘어 안뜰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유대인 신자의 식탁에 자기 자리가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에게 두루마리를 건네주어 소리 내어 읽게 한다거나, 에클레시아를 이끌도록 세운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려면, 그는 이전의 삶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이 모습과 들어맞습니다. 네 가지 규정은 그가 첫날 넘어서는 문턱이었습니다. 그 첫날 이후에 이어지는 삶은 사도행전 15장 21절에 나옵니다.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이 낭독되는 것을 듣고, 한 주 한 주 거룩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경계선은 치워진 적이 없다
혹시 누군가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도들도 이것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민족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려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별을 없앴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어디에도 그런 결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이 끝날 때까지 사도들은 그 구별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경계선은 후대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지워졌습니다.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교회와 회당이 갈라섰습니다. 구약 성경을 버리려 했던 마르키온의 가르침이 추종자들을 얻었습니다. 공의회들은 안식일에 쉬는 것과 정한 절기들을 지키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그 경계선은 하나씩 하나씩 닳아 없어졌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교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거룩한 모임에 나아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든 여전히 레위기 7장과 고린도전서 11장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임을 이끌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