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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7장 / 전체 45장

서기 70년에도 끝나지 않은 것

우리는 대개 초기 신자들이 성전을 거의 즉시 떠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활 사건 이후에는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고, 성전은 그들의 삶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기록은 다릅니다. 신자들은 서기 70년 전쟁으로 성전이 무너질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성전에 모였습니다. 성경 본문은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명령은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성전과 제사, 그리고 순례 절기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곳에서 행하라고 토라가 명한 규례였으며, 아무도 그 명령을 거두어들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는 제사장들의 직무를 현재 시제로 말합니다.

히브리서 8:4 그분이 땅에 계셨다면 제사장도 되지 못하셨을 것이니, 노모스(법)에 따라 도론(예물/봉헌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었다」고 하지 않고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자에게 성전 봉사는 눈앞에 살아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둘째, 사도들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앞서 바울이 오순절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잡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은 그와 같은 순간을 하나 더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20:16 이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에베소를 그냥 지나치기로 크리노(심판/결정하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있으면 오순절(펜테코스테) 날에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서두르고 있었다.

바울은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에 닿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절기는 유대인 신자들만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대륙의 그리스 도시 고린도에 있는 교회, 곧 민족들 가운데서 온 신자들로 가득한 교회에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5:7-8 새 덩어리가 되도록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여러분이 무교병인 것처럼; 이는 우리의 유월절이신 메시아(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으로도,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아니고, 성실함과 알레데이아(진리)의 무교병으로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

「그러므로 … 헤오르타조(동사, 절기)를 지키자.」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메시아께서 우리의 유월절이시니 유월절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메시아께서 우리의 유월절이시니 그 절기를 지키되, 깨끗한 마음으로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셋째, 성전 된 몸은 거룩함의 기준을 넓혔습니다

이 점은 5장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공동체를 성전이라 부른다고 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대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부른 것은 성전의 거룩함을 모든 신자의 일상으로 넓혔고, 두 성전은 나란히 공존했습니다. 고린도 신자들에게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나오스(성소)라고 말한 바로 그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는 성전에서 정결 예식을 행했습니다.

넷째, 서기 70년의 사건은 심판이지 폐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서기 70년이 되었습니다.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성벽을 무너뜨린 뒤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예슈아께서 이미 예고하신 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4:2 예슈아(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모두 보는가? 아멘으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모두 무너질 것이다.”

여기서 「무너질」로 옮긴 말은 2장에서 만난 카탈뤼오(허물다)입니다. 성전의 돌들은 그렇게 허물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허물러 오지 않으셨는지 이미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토라와 선지자들의 글입니다(마태복음 5:17).

성전이 파괴되었다고 해서 토라가 취소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수백 년 전 바벨론 사람들이 솔로몬의 성전을 불태운 사건이 심판이었듯이, 이 일 또한 미리 예고된 심판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첫 번째 성전을 불태웠을 때, 다니엘은 토라가 폐기되었다고 결론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니엘 9장의 기도에서 「온 이스라엘이 주의 토라를 어기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서기 70년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장소에 매여 있는 명령들, 곧 제사와 순례를 더 이상 실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토라는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에서만 제사를 드리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외적에게 점령당해 연기만 피어오르는 폐허가 되었다면,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다른 곳에 제단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키려던 바로 그 법을 도리어 어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한 일

성경은 그와 같은 시대를 신실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보여 줍니다. 첫 번째 성전이 폐허로 누워 있을 때, 다니엘은 수백 마일 떨어진 바벨론에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이 사라졌으니 법도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행했습니다.

다니엘 6:11 다니엘은 그 글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갔다. 그의 다락방 창문은 예루살렘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그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감사하였다.

(히브리어 성경 장절로는 다니엘 6:11이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으로는 6:10입니다)

건물은 돌무더기가 되었지만, 다니엘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아무도 그곳에 설 수 없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장소를 향해 신실함을 지켰습니다.

삭제가 아니라 일시 정지입니다

서기 70년의 사건은 그 장소에 매인 명령들에 일시 정지 단추를 눌렀을 뿐, 토라의 삭제 단추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춘 노래는 다시 재생되기를 기다리는 똑같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언젠가 그 노래가 다시 흘러나올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실제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장소에 매인 명령들이 멈추어 있다면, 오늘을 사는 신자에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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