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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4장 / 전체 45장

성막과 그 본

아버지가 장성한 자녀들을 불러 모아 가족 식사를 하자며 장소를 알려 줍니다. 집 근처에 있는 아담한 코셔 이스라엘 식당입니다. 장소도 아버지가 정했고, 메뉴도 아버지가 골랐습니다.

그런데 아들 하나가 자기 생각이 더 낫다고 여깁니다. 시내 반대편에 있는 단골 바비큐 식당을 예약하더니 가족 모두에게 새 주소를 보냅니다. 결국 가족의 절반은 이쪽 식당으로, 나머지 절반은 저쪽 식당으로 흩어집니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리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화를 냅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정한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이 식사 자리를 피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싶었지만, 굳이 자기가 고른 장소에서 먹으려 했던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문제가 있습니다.

누가 장소를 정합니까?

어느 건물도 하나님을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의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판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토록 크신 하나님을 어디서 만날지는 사람이 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정하십니다.

맨 처음 세운 성막부터 그러했습니다.

출애굽기 25:8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짓게 하라. 그러면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겠다.

성경의 표현은 아주 세심합니다. 이 구절은 「내가 성소 안에 거하겠다」고 하지 않고,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겠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성막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려고 정하신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성막을 「정해진 만남의 장막」, 곧 오헬 모에드(정한 때의 장막)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 25:22 내가 거기서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에두트)의 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너와 더불어 말하겠다.

출애굽기 29:42-43 이는 너희 대대로 정해진 만남의 장막(오헬 모에드) 입구 여호와 앞에서 드릴 항상 드리는 번제이니,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거기서 네게 말하겠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과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그곳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겠다」고 하실 때 쓰인 히브리어는 샤칸(거하다)이며, 성막을 뜻하는 미쉬칸(성막)도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살 방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드시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시편 121:4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이 어느 곳에 거하신다는 말은, 그분의 영광과 임재가 그곳에 머물러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과 만나리니」 하신 바로 그 대목에서 이렇게 이어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9:45-46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그들은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해 낸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니,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만남과 거함은 나란히 갑니다. 성막을 세우던 날, 구름이 성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안에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모습은 바로 그러했습니다.

본을 따라 짓다

성막의 설계 또한 모세에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8:5 이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 안에서 섬기니,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 할 때 주의를 받은 것과 같이 — “보라, 산에서 네게 보여진 본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 것이다”고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실지 스스로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보여 주신 설계도를 그대로 따라 짓는 건축자였을 뿐입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로몬은 전망 좋은 언덕을 찾으려고 예루살렘을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시며 이미 지명하신 바로 그 자리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토라는 처음부터 그 장소를 일러 두었습니다.

신명기 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 곧 그분의 처소를 너희가 찾아 그리로 나아가라.

왜 이것이 선물입니까?

얼핏 들으면 제약처럼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제약이 아닙니다. 사람이 직접 장소를 정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면 그 이유가 금세 드러납니다.

많은 동네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 있습니다. 한쪽 모퉁이에 교회가 있고, 길 건너편에 또 하나가 있으며, 한 블록 너머에 세 번째 교회가 서 있습니다. 성경은 오래전에 이미 이 일을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실 장소를 말하는 바로 그 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저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수백 년 뒤 고린도에서는 신자들이 지도자를 따라 나뉘며 저마다 “나는 바울 파요”, “나는 아볼로 파요” 하고 말했습니다. 따로 바비큐 식당을 예약한 그 아들의 모습이 천 배로 불어난 셈입니다.

이제 정반대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아버지가 장소를 정해 줍니다. 이미 결론이 났으니 말다툼에서 이기려 애쓸 필요가 없고, 모두가 똑같은 초대에 응답하고 있으니 누군가 우두머리가 되어 사람들을 끌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장소를 정하시면 백성은 비로소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모두가 같은 식탁으로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정하신다는 것은 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비입니다.

이 이야기가 향하는 곳

하나님이 거하시려고 택하신 장소가 한 곳 더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곳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장소를 가리켜, 오늘날 포스터나 머그잔에도 흔히 적히는 구절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성전이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음을 보이려고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몇 마디 뒤에 바울은 「그러므로」라고 말하며,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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