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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3장 / 전체 45장

아테네의 제단들 사이에 선 바울

1세기의 아테네를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날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는 고요한 폐허가 아니라, 삶이 숨 쉬던 당시의 도시 말입니다. 거리와 광장마다 청동과 대리석, 금으로 만든 제우스, 아테나, 헤르메스 등 수많은 신상과 제단이 서 있습니다. 신상 앞 제단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방에서 누군가가 무언가에게 절을 합니다.

누가는 바울이 이 광경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17:16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의 프뉴마(영)가 격분했다.

격분했다는 말은 무게가 남다릅니다. 바울은 그저 거리를 거닐며 뛰어난 세공 기술을 감상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도시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깊이 아파했습니다.

바울이 어디에서 무엇을 말했는가

그 뒤 사람들은 바울을 도시의 평의회가 열리던 언덕인 아레오파고스로 데려갔고, 바울은 그곳에서 입을 열었습니다.

사도행전 17:22-23 바울이 아레오파고스(아테네 전쟁신 언덕·최고 법정) 한가운데 서서 말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매우 종교적입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여러분이 섬기는 것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경배하는 그분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곧이어,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부정하려고 자주 끌어다 쓰는 바로 그 문장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7:24-25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이분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시며 무언가가 필요하신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프노에(숨결)와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는 배경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여호와의 집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습니다. 우상으로 가득 찬 도시에 서서, 금과 은과 돌로 만든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전」이라는 낱말이 헬라어 본문에서는 복수라는 점도 눈여겨보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단 하나의 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 사방에 널려 있는 신당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신들

「무언가가 필요하신 것처럼」이라는 한 구절이 이 문장 전체의 뜻을 풀어 줍니다.

아테네에서 신을 섬긴다는 것은 곧 신상을 시중드는 일이었습니다. 신상을 먹여야 했기에 숭배자들은 그 앞에 음식을 차려 놓았습니다. 비바람을 피하게 해 주어야 했기에 신상 위에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축제일이 오면 옷을 입히고 씻기고 치장해 주어야 했습니다. 실상 이방의 신은 사람에게 얹혀사는 존재였습니다. 사람이 집을 지어 주고 밥을 챙겨 주어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신을 겨냥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누가 거처를 지어 줄 필요도 없고, 누가 음식을 바칠 필요도 없습니다. 베푸는 방향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결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바울보다 훨씬 앞서 이미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시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50:12-13 내가 굶주려도 네게 말하지 않을 것이니,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황소의 고기(바사르)를 먹고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그리고 바울은 몇 문장 뒤에 그 생각을 이렇게 매듭짓습니다.

사도행전 17:29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니 테이온(신성한 것)이 사람의 기술과 엔뒤메시스(생각)로 새긴 금이나 은이나 돌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언덕에서 바울은 신당 안에 갇혀 사람이 시중들어야만 연명하는 신이라는 관념, 곧 신성한 것이 「사람의 기술과 엔뒤메시스(생각)로 새긴」 신상과 같다는 생각을 허물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테네의 신학이었고, 바울은 그것을 해체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을 조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봉헌한 집은 결코 사람의 손으로 하나님을 부양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문을 열던 날, 솔로몬 자신도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담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과 솔로몬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며, 지금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남긴 물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든 신당에 살지 않으시고 우리가 거처를 지어 드릴 필요도 없는데, 어째서 성막이나 성전이 이 땅에 생겨났으며, 하늘과 땅의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나실 장소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그 언덕에 서기보다 훨씬 오래전에, 토라는 이미 그 물음에 답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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