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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2장 / 전체 45장

공회 앞에 선 스데반

솔로몬과 이사야가 처음부터 이 말을 했다면, 아직 설명해야 할 장면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공회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7:47-50 솔로몬이 그분을 위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손으로 만든 전들에 계시지 않으니, 예언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아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 것이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은 내 안식처가 어디 있느냐? 내 손이 이것들을 모두 만들지 않았느냐?’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 대목을 성전이 끝났다는 선언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 이 말은 예슈아께서 친히 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같은 동사, 정반대의 말인가?

스데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은 「계시지 않으니」라고 말할 때, 헬라어 동사는 카토이케오(자리를 잡다, 거주하다)입니다. 예슈아께서도 성전을 두고 말씀하실 때 똑같은 동사를 쓰셨습니다.

마태복음 23: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자는 그것과 그 안에 거하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여기서 「그 안에 거하시는 분」이라는 말이 바로 카토이케오를 옮긴 것입니다. 앞뒤 맥락 없이 글자 그대로 나란히 놓고 보면, 스데반의 말과 예슈아의 말씀은 서로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예슈아께서 성전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예슈아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상인들을 내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6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라고 하셨다.

예슈아께서는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제 곧 버려질 낡은 유물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슈아께서는 그 집의 거룩함을 자기 손으로 직접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둘 가운데 한 사람이 틀린 것입니까? 1장에서 솔로몬의 말을 읽었던 방식대로 이 두 본문을 읽으면, 두 사람 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집에도 갇히지 않으시지만, 자기 이름을 두신 곳에 거하십니다. 스데반과 예슈아께서는 같은 진리의 두 면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정에 선 스데반

스데반은 강연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다. 공회 앞에서 목숨이 걸린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사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분명하게 들려줍니다.

사도행전 6:13-14 거짓 증인들을 세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거룩한 곳과 노모스(법)를 거슬러 신성모독적인 말을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이 나사렛 예슈아(예수)가 이곳을 무너뜨리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관습들을 바꿀 것이라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스데반이 성전과 모세의 율법은 끝났다고 가르쳤다는 것이 고발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단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증인들이 예슈아께서 「이곳을 무너뜨리고」라고 말할 때, 헬라어 동사는 카탈뤼오(허물다, 해체하다, 폐하다)입니다. 이 단어는 이번 장에서 두 번 더 나옵니다. 또한 누가는 이 고발을 들고나온 자들을 「거짓 증인들」이라고 부릅니다. 그 혐의는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스데반의 말을 성전이 끝났다는 뜻으로 읽는 것은 그를 고발한 자들의 편을 드는 셈이며, 누가가 거짓말이라고 기록해 둔 바로 그 혐의를 이천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받아 적는 일입니다.

같은 거짓 고발을 당하신 예슈아

이런 수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슈아께서 재판을 받으실 때도 똑같은 말이 예슈아를 치는 데 쓰였습니다.

마가복음 14:57-58 어떤 이들이 일어나 그분을 거짓 증언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그가 ‘내가 손으로 만든 이 나오스(성소)를 헐어버리고 사흘 만에 손으로 만들지 않은 다른 것을 세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서 「헐어버리고」라는 말도 카탈뤼오를 옮긴 것입니다. 두 재판 모두 똑같은 낱말이 거짓 증인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자신이 하러 오지 않은 일을 말씀하실 때 바로 이 카탈뤼오라는 낱말을 직접 쓰셨습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노모스(법)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여기서 「폐하러」가 바로 카탈뤼오입니다. 거짓 증인들은 그 낱말을 예슈아의 입에 넣었지만, 정작 예슈아께서는 토라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오지 않았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성전과 토라가 폐해졌다고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예슈아의 말씀이 아니라 증인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손으로 만든」 것과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서로 맞세운 것은 예슈아의 재판에 나온 거짓 증인들이 벌인 일이고, 예슈아를 성전 허무는 자로 만든 것도 두 재판에 나온 거짓 증인들이 벌인 일입니다. 그런 대립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고발자들이 지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데반은 무엇을 쳤는가?

스데반의 변론을 끝까지 읽어 보면, 성전을 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변론은 이렇게 끝납니다.

사도행전 7:53 너희는 천사들의 규례로 노모스(법)를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

스데반이 꾸짖은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잘못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연설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어디서 처음 나오는지도 살펴보십시오.

사도행전 7:41 그 날들에 그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자기 손들의 일들에서 기뻐했습니다.

황금 송아지 이야기에서 처음 나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는 것은 그것을 우상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을 그런 식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집이라 할지라도 우상의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바로 그 때문에 스데반은 「손으로 만든 전들」이라고 복수로 말합니다.

이 말을 스데반이 처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수백 년 앞서 예레미야도 성전 문에 서서 똑같은 경고를 외쳤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백성은 성전의 이름을 마치 주문처럼 되뇌었습니다.

예레미야 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의지하지 말라.

예레미야 7:9-11 너희가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도, 내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이 집에 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하니,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냐? 내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이 집이 너희 눈에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도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라.

부적

주머니에 행운의 부적을 넣고 다니면서, 그것이 있으니 마음대로 행해도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이 성전을 바로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도둑질하고 살인하며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고는 성전 뜰로 걸어 들어와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하고 말하며 아주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자기들의 죄를 숨기는 은신처로 만들어 버렸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도둑의 소굴」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수백 년 뒤, 예슈아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 바로 그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3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내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했으나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예레미야와 예슈아와 스데반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문제는 돌로 지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토라는 무시하면서 그 집을 부적처럼 움켜쥐던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꾸중을 들은 것은 성전이 아니라 성전을 우상처럼 이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이 허문 것

스데반은 성전을 허물지 않았습니다. 성전 둘레에 자라난 미신을 허물었습니다. 그를 성전의 원수로 만든 것은 성경이 아니라 거짓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지은」이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 다시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아테네 한복판에서 바울이 한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 말은 그 자리의 상황을 보아야 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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