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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전 · 1장 / 전체 45장

성전을 봉헌하는 솔로몬

주먹을 높이 치켜들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마치 누군가에게 화를 내며 소리치는 듯한 한 남자의 사진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제 그 사진의 테두리를 넓혀 봅니다. 남자는 야구장 한가운데서 주변의 모든 관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홈런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 풍경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장자리가 잘려 나갔을 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렇게 잘려 나간 사진 한 장으로 성전 문제를 매듭지어 버렸습니다. 성경의 두 구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은 손으로 만든 전들에 계시지 않으니”라는 말씀과, 여러분의 몸이 성령의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구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결론은 이미 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건물 안에 계시지 않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성전을 지키던 정결 규례와 백성을 그곳으로 올라가게 하던 절기까지 모두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들은 더 큰 그림에서 오려 낸 조각들입니다. 구절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따로 있고, 그 말이 선포된 때와 장소가 있으며, 앞뒤로 이어지는 맥락이 있습니다. 잘려 나간 가장자리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이 책이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잘려 나간 테두리를 되찾고, 각 본문을 처음 선포된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은 사람의 고백

옛적에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할 집을 지었습니다. 백향목과 다듬은 돌을 쓰고, 안쪽 벽면은 끝에서 끝까지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 문이 처음 열리던 날, 집을 지은 바로 그 사람이 온 백성 앞에 서서 어떤 건물도 하나님을 담아낼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수고와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쏟아부어 그 집을 짓고, 성전을 봉헌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 위에 거하시겠습니까? 보십시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담지 못하거늘, 하물며 내가 지은 이 집이겠습니까?

솔로몬은 「담지 못하거늘」이라고 말합니다. 돌이 아무리 훌륭하고 입힌 금이 아무리 두꺼워도, 하나님을 벽 안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는 고백입니다.

부엌에 있는 항아리에 바닷물을 다 부어 넣으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항아리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문제는 항아리에 있지 않고 바다에 있습니다. 공사를 모두 마친 날 솔로몬이 드린 고백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같은 기도, 두 절 뒤

만약 여기서 읽기를 멈춘다면, 우리는 사진을 또 한 번 잘라 내는 셈입니다. 솔로몬은 이어서 이 집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기도문에서 딱 두 절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8:29 주의 눈이 밤낮으로 이 집을 향하여,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그곳을 향하여 열려 있어,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결국 솔로몬은 한 기도 안에서 두 가지를 함께 말했습니다.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는 것과, 이 집이 하나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그곳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두 말은 서로 부딪치지 않습니다. 어떤 건물도 하나님의 크심을 가둘 수 없지만, 그 크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실 장소를 친히 택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가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려고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곳을 택하셨습니다.

이사야도 같은 말을 합니다

훗날 스데반이 인용한 이사야의 말씀도 이 두 가지 진리를 나란히 붙들고 있습니다. 흔히 이사야 66장을 성전을 공격하는 본문으로 읽곤 하는데, 처음 두 절만 떼어 놓고 보면 실제로 그렇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 66:1-2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내 보좌요 땅이 내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어떤 집을 짓겠으며 어디가 내 쉴 곳이겠느냐?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 이 모든 것이 생겼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보는 자는 이런 자다. 곧 가난하고 영(루아흐)이 상하며 내 말에 떠는 자다.

이제 거기서 딱 네 절만 더 내려가 읽어 보십시오.

이사야 66:6 성읍에서 떠드는 소리, 성전에서 나는 소리! 자기 원수들에게 보응을 갚으시는 여호와의 소리다.

그리고 같은 장 끝부분에 이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66:20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모든 민족에게서 데려와 말과 병거와 수레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 내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이 정결한 그릇에 예물을 담아 여호와의 집으로 가져오듯 할 것이다.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로, 땅을 하나님의 발판으로 부르는 이사야는 여전히 성전에서 울려 나오는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민족들이 「여호와의 집으로」 예물을 가져오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첫날부터 참이었던 말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든 집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은, 성전 문을 닫으려고 1세기에 새로 들여온 생각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솔로몬이 첫 성전의 문을 열던 날에도 이미 참이었습니다. 성전은 바로 그 고백 위에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집에도 담기지 않으실 만큼 크신 분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두실 장소를 친히 택하셨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그 사실이 그 집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기도문이나 이사야 66장 어디에도 「더 이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읽는 사람들이 덧붙인 말일 뿐입니다.

이제 한 가지 물음이 남습니다. 이 사실이 처음부터 다 알려져 있었다면, 1세기의 스데반은 왜 돌에 맞아 숨지는 자리로 이어진 그 공회 재판정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을까요? 그 답은 바로 그 법정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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