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서와 하나님의 아들들 · 6장 / 전체 10장
창세기 6장 4절의 올바른 문맥 분절과 창세기 4–5장 두 계보의 실체
| 장 | 내용 |
|---|---|
| 창세기 4장 · 가인의 계보 | 「여호와 앞에서 떠나」(창 4:16) 성읍을 쌓고(창 4:17), 구리와 쇠로 날카로운 기구를 만들며(창 4:22) 살인과 복수를 노래한 계보(창 4:23–24) |
| 창세기 5장 · 아담–셋–노아의 계보 | 아벨 대신 주신 씨(창 4:25)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고(창 4:26),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창 5:24) 이어진 계보 |
| 창세기 6장 1–8절 · 두 계보의 혼합 | 두 계보가 섞여 온 땅의 아담과 모든 살이 부패함 — 노아만 「여호와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창 6:8) |
| 창세기 6장 9절–9장 · 심판과 보존 | 코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살이 심판을 받고, 노아의 여덟 사람으로 생명의 계보가 보존됨 |
모세가 창세기 4장(가인 계보)과 5장(셋 계보)을 나란히 길게 기록한 직후에 창세기 6장 1–4절을 둔 까닭은, 바로 그 두 사람의 계보가 어떻게 섞여 온 땅이 부패하게 되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6장 1–4절을 갑자기 하늘 존재의 이야기로 읽으면, 앞서 공들여 대조한 두 족보가 홍수의 원인과 이어지지 않게 된다.
그 시절에, 그리고 그 후에도, 네피림이 땅에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딸들에게 들어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옛적의 용사들 곧 이름난 자들이었다. (창 6:4)
1. 배경: 「그 시절에, 그리고 그 후에도, 네피림이 땅에 있었다.」(창 6:4)
이 문장은 네피림이 두 무리의 혼인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시절에, 그리고 그 뒤에도 네피림이 땅에 있었다는 배경을 말한다. 「네피림」은 흔히 ‘떨어지다 · 덮치다’를 뜻하는 동사 「나팔」과 이어 설명된다. 홍수 「그 후에도」(창 6:4) 네피림이 있었다는 것은 민수기가 직접 보여 준다.
거기서 우리는 네피림, 곧 네피림에게서 난 아낙 자손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눈에 메뚜기 같았고, 그들의 눈에도 그러하였다. (민 13:33)
홍수로 방주 밖의 모든 살이 죽었다(창 7:22). 네피림이 천사와 사람 사이에서 한 번 생겨난 혼혈 족속이었다면 홍수로 그 핏줄은 끊겼어야 한다. 그런데도 가나안 땅에 네피림(아낙 자손)이 다시 나온다. 그러니 네피림은 그런 혼혈 족속으로 볼 수 없다. 여호수아 때에 아낙 족속은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다」(수 11:22). 훗날 다윗 앞에 선 골리앗이 바로 「가드 사람」으로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었다(삼상 17:4). 「르바임 중에 남은 자」 바산 왕 옥의 쇠 침상도 길이가 아홉 규빗이었다(신 3:11).
2. 사건: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딸들에게 들어가 자식을 낳았으니,」(창 6:4)
거룩함을 지켜야 할 하나님의 아들들(셋의 계보)이 하나님을 떠난 계보의 딸들과 분별없이 결합하였다.
3. 결과: 「그들이 옛적의 용사들 곧 이름난 자들이었다.」(창 6:4)
문장의 짜임을 보면, 두 계보의 혼인 전에 이미 땅에 있던 이들이 「네피림」(창 6:4)이고, 두 계보가 섞여 낳은 자식들은 「옛적의 용사들 곧 이름난 자들」(창 6:4)이라 불린다. 히브리어로 용사들은 「깁보림」, 이름난 자들은 「안셰 하쉠」, 직역하면 ‘이름의 사람들’이다. 홍수 뒤 「땅에서 첫 용사가 되기 시작」한 니므롯(창 10:8)과, 탑을 세워 「우리의 이름을 내고」(창 11:4) 하자던 사람들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과 힘을 땅 위에 떨친 사람들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머물던 첫 거주지는, 비록 에덴 안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하나님과 음성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던 곳이었다.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조차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 “네 동생의 피의 소리가 흙(아다마)에서 나에게 부르짖고 있다.” (창 4:9-10)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불순종에 더해, 장남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참혹한 일까지 겪었다. 그래서 아벨 대신 주신 아들 셋을 얻은 뒤에는 그를 하나님 안에서 경건하게 길렀다. 땅의 수고(창 3:17)는 그곳에도 있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의 환경이었다.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를 알았고, 그녀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다.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씨를 주셨다” 하였기 때문이다. 셋에게도 아들이 태어나니,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불렀다. 그때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창 4:25-26)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자라난 셋의 후손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누가복음은 이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고, 셋은 아담의 아들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눅 3:38)로 끝맺는다. 노아도 그 계보 가운데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 생명의 계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진다.
반면, 가인이 쫓겨난 곳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보십시오, 당신이 오늘 저를 이 흙(아다마)의 표면에서 쫓아내시니, 제가 당신의 얼굴을 피하여 숨을 것이며 땅에서 떠돌며 헤매는 자가 될 것입니다. (창 4:14)
가인이 여호와 앞에서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살았다. (창 4:16)
부모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첫 추방에 이어, 가인은 하나님과 대화하던 그 첫 거주지에서조차 「여호와 앞에서 떠나」(창 4:16) 더 먼 놋 땅으로 물러났다. 이중의 분리였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땅에서 성읍을 세우고 구리와 쇠로 날카로운 기구를 만들며(창 4:17–22) 문명과 힘을 키웠고, 두 아내를 맞고(창 4:19) 살인을 노래하기에 이르렀다(창 4:23–24).
그러던 중 셋 계열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떠난 계보의 딸들을 보고 눈에 좋은 대로 혼인하였다. 그런데 창세기 6장 2절은 이 일을 에덴동산에서 여자가 열매를 따 먹던 창세기 3장 6절과 같은 세 낱말로 기록한다.
| 단계 | 창세기 3:6 | 창세기 6:2 | 히브리어 |
|---|---|---|---|
| ① 봄 | 여자(이샤)가 그 나무를 보니 |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딸들이 … 보고 | 라아(보다) |
| ② 좋음 | 먹기에 좋고 | 아름다운 것을(좋은 것을) | 토브(좋은) |
| ③ 취함 | 그 열매를 따서 먹고 |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 라카흐(취하다) |
‘보았다 → 좋았다 → 취하였다’. 창세기 6장 2절의 「아름다운」(창 6:2)은 창세기 3장 6절의 「좋고」(창 3:6)와 같은 낱말 「토브」이고, 「아내로 맞이하였다」(창 6:2)는 「따서」(창 3:6)와 같은 동사 「라카흐」다. 창세기 6장의 일은 하늘 존재의 기이한 침입이 아니라, 에덴에서 첫 사람이 걸었던 그 길 — 눈에 좋은 대로 보고 취하는 길 — 을 언약의 계보가 다시 걸은 사건이다.
그 결과 셋 계열이 지켜 온 생명력과 지혜, 그리고 가인 계열이 키운 문명과 힘이 합쳐지면서, 그 사이에서 난 이들이 땅 위에 이름을 떨치는 「옛적의 용사들 곧 이름난 자들」(창 6:4)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계보의 혼합으로 마지막 남은 경계가 무너지고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창 6:11).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코에 생명의 영의 숨이 있는 모든 살을 홍수로 심판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