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서와 하나님의 아들들 · 4장 / 전체 10장
천사설이 내세우는 신약의 세 구절 — 견해와 난점
천사설은 신약의 세 구절을 가장 큰 근거로 삼는다. 학계에서 실제로 논의되는 읽기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각각의 난점을 함께 적는다.
또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거처를 버린 천사들을, 큰 날의 크리시스(심판)까지 영원한 사슬로 조포스(흑암) 아래에 지켜 두셨으며, (유 1:6)
이와 마찬가지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도시들도,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음행하고 다른 사르크스(육체)를 따라간 것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 본보기가 되었다. (유 1:7)
- 천사설의 읽기: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유 1:7, 헬라어 호모이오스 투토이스)의 「이들」이 6절의 천사들을 가리키며, 천사들이 거처를 버린 죄가 곧 사람의 여자와의 결합이고, 소돔 사람들도 천사(창 19:1–5)라는 「다른 사르크스(육체)」(유 1:7)를 범하려 했다고 읽는다. 이 읽기는 에녹1서의 감시자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 다른 읽기: 둘이 있다. 하나는 「이들」(유 1:7)이 같은 7절 안의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키며, 그 「주변 도시들」(유 1:7)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방식으로 음행했다는 뜻이라는 읽기다. 다른 하나는 유다서 1장 5–7절이 세 예 —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뒤 믿지 않은 백성(유 1:5), 거처를 버린 천사들(유 1:6), 소돔과 고모라(유 1:7) — 를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와 경계를 넘은 반역’이라는 공통점으로 나열한다는 읽기다. 세 예 가운데 첫째인 광야 백성의 죄는 혼인이나 음행이 아니라 「믿지 않은」(유 1:5) 것이었다. 그러니 세 예를 묶는 끈은 ‘다른 육체와의 결합’이 아니라 ‘정해진 자리를 넘은 반역’이라는 점이 이 읽기를 받친다.
- 본문에 비춘 답: 소돔 사람들은 그 손님들이 천사인 줄 몰랐다. 그들에게는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창 19:5 「오늘 밤 너에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또 유다서 6절은 창세기 6장이나 홍수를 이름으로 말하지 않는다. 천사들이 거처를 떠난 일을 창세기 6장의 혼인으로 보는 것은 유다서 본문이 아니라 에녹1서의 이야기에서 온 연결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조포스(흑암)의 사슬로 타르타로오(타르타로스에 가두다)하시어 크리시스(심판)를 위해 지켜지도록 넘기셨다면, (벧후 2:4)
또 옛 세상도 아끼지 않으시고, 경건하지 않은 이들의 세상에 홍수를 가져오셨으나,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선포하는 노아를 여덟 사람 중 하나로 지키셨으며, (벧후 2:5)
또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들을 재로 만들어 멸망으로 정죄하시고, 경건하지 않게 살 이들에게 본보기로 세우셨으며, (벧후 2:6)
- 천사설의 읽기: 천사의 범죄(4절) 바로 뒤에 홍수(5절)가 나오므로, 4절의 범죄가 홍수 직전 창세기 6장의 사건이라고 본다.
- 다른 읽기: 4–6절은 성경 역사에 나오는 세 심판, 곧 반역한 천사들 · 옛 세상의 홍수 · 소돔과 고모라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일 뿐, 4절과 5절을 한 사건으로 묶지 않는다는 읽기다.
- 본문에 비춘 답: 베드로는 홍수의 대상을 「경건하지 않은 이들의 세상」(벧후 2:5)이라 부른다. 4절의 천사들과 5절의 홍수를 한 사건으로 묶는 말은 본문에 없다.
바로 앞 절은 메시아께서 「사르크스(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프뉴마(영)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벧전 3:18)고 말한다. 다음 절의 「그[프뉴마] 안에서」는 이 「프뉴마(영)」를 받는 말이고, 가셔서 선포하신 분은 메시아시다.
그[프뉴마] 안에서 또한 옥에 있는 프뉴마타(영들)에게 가셔서 선포하셨으니, 그들은 전에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기다리실 때, 방주가 준비되던 노아의 날들에 불순종하였다. 그러나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간 몇 명, 곧 여덟 프쉬카이(혼들)는 물을 통해 구원받았다. (벧전 3:19-20)
- 천사설의 읽기: 「영들」(벧전 3:19)이 수식어 없이 쓰이면 하늘의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노아의 날들」(벧전 3:20)이 특정되었으므로 창세기 6장에서 범죄한 천사들이라고 본다.
- 다른 읽기: 노아의 날들에 불순종하다 홍수로 죽은 사람들의 영이라는 읽기(히브리서가 먼저 간 의인들을 「완전하게 된 의로운 이들의 프뉴마(영들)」(히 12:23)라 부르듯, 사람의 영도 「영들」이라 불린다), 그리고 메시아께서 그 영으로 노아를 통해 당대 사람들에게 선포하셨다는 읽기가 있다.
- 본문에 비춘 답: 그들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기다리실 때」(벧전 3:20)였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까닭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메타노이아(회개 / 영적영역)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벧후 3:9). 하나님의 기다리심은 돌이킬 기회를 얻은 사람을 향한다. 또 같은 문장이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간 몇 명, 곧 여덟 프쉬카이(혼들)」(벧전 3:20)와 대조하므로, 불순종한 이들은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로 읽는 것이 문맥에 자연스럽다. 구원의 이야기가 향하는 쪽도 처음부터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분이 천사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을 도우신다」(히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