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서와 하나님의 아들들 · 3장 / 전체 10장
하늘의 존재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그래도 그들은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다
천사설을 지지하는 이들이 힘주어 내세우는 반론이 있다. 하늘의 존재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먹고 마셨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여자와 혼인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반론은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다. 성경이 실제로 그런 장면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직하게 살피고, 이어서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짚어 보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 그가 눈을 들어 보니, 보라, 세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창 18:1-2)
그가 버터와 우유와 자기가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리고, 나무 아래에서 그들 곁에 서 있으니, 그들이 먹었다. (창 18:8)
여호와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아브라함이 차린 음식을 드셨다. 야곱과 밤새 씨름한 「어떤 사람(이쉬)」(창 32:25)을 두고 야곱은 「내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보았는데도 내 혼(네페쉬)이 건져졌다」(창 32:31)고 고백했다(한글 · 영어 성경은 창 32:24 · 창 32:30). 시내산에서는 이스라엘의 귀인들이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다」(출 24:11).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면서(요 4:24), 원하실 때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람 앞에 나타나 함께 잡수시는 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이며, 성경이 숨기지 않고 기록한 사실이다.
그가 그들에게 간곡히 권하니, 그들이 그에게로 들러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누룩 없는 빵을 구우니, 그들이 먹었다. (창 19:3)
소돔을 찾은 두 천사도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먹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의 일은 천사설과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소돔 사람들이 「그들을 우리에게 끌어내어라. 우리가 그들을 알겠다」(창 19:5)고 몰려왔을 때, 천사들은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으며 문 앞의 사람들을 눈멀게 하였다(창 19:10–11). 사람의 모습을 입은 천사는 사람과 섞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일을 막았다.
천사들이 어떤 특별한 일을 위해 얼마 동안 사람의 몸을 입은 것은 천사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귀에게 사람의 말을 하게 하신 것과 같다.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렇게 세 번이나 칩니까? (민 22:28)
나귀가 말을 한 것은 나귀의 본성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민 22:28) 일어난 일이다. 마찬가지로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먹은 것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 이 장면을 근거로 천사가 스스로 원하는 대로 몸을 입고 사람과 혼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천사가 먹은 기록은 있다. 그러나 하늘의 존재가 그 모습으로 사람과 혼인하거나 자식을 낳았다는 기록은 성경 66권 어디에도 없다. 예슈아께서는 「부활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으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다」(마 22:30)고 하셨다. 부활한 사람이 혼인하지 않는 것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다」(마 22:30)고 하셨으니, 하늘의 천사들은 혼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몸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천사가 혼인이라는 질서 밖에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타락한 영들은 사람의 세계에서 어떻게 일하는가? 성경이 보여 주는 방식은 구약부터 신약까지 한결같다. 스스로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없어 비어 있는 사람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도구로 삼는다.
아카타르토스(더러운) 프뉴마(영)가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곳을 찾아 물 없는 곳들을 돌아다니다가 찾지 못하고,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겠다’ 하며 가서 보면 빈 채로 청소되고 정돈된 것을 발견하며, 그 때에 가서 자신보다 더 악한 일곱의 다른 프뉴마(영)들을 데려오고, 그것들이 들어가 거기 살게 되니 … (마 12:43-45)
「빈 채로」(마 12:44) — 더러운 영이 들어가 사는 곳은 비어 있는 사람이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여호와께로부터 온 악한 영(루아흐)이 그를 괴롭혔다」(삼상 16:14). 「레기온(군단)」이라는 귀신들은 한 사람 안에서 그 사람의 입으로 말했다(막 5:9). 악한 영이 들린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행 19:14)에게 「뛰어올라 제압하여 이겨내니」(행 19:16), 그 사람의 몸이 악한 영의 도구가 되었다. 사탄은 「유다에게 들어갔다」(눅 22:3).
이 원리를 창세기 6장에 대어 보면 그림이 분명해진다. 설령 그 시대에 하나님을 떠나 「빈 채로」(마 12:44) 된 집 같은 사람들을 악한 영들이 부추기고 썼다 하더라도, 여자를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맞이」(창 6:2)한 것도, 자식을 낳은 것도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심판도 사람이 받았다. 「그도 살(바사르)이기 때문이다」(창 6:3)라는 말씀과 정확히 맞는다.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성경 자체의 호칭이다. 성경이 타락한 천사와 악한 영들을 부르는 이름을 모아 보면 이렇다.
| 성경이 부르는 이름 | 곳 |
|---|---|
| 「죄를 지은 천사들」 | 벧후 2:4 |
|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거처를 버린 천사들」 | 유 1:6 |
| 「용과 … 그의 천사들」 | 계 12:7, 9 |
| 「아카타르토스(더러운) 프뉴마(영)」 · 「악한 프뉴마(영)」 | 마 12:43 · 행 19:15 |
| 「데몬(축출 대상 개별 악령)들의 프뉴마타(영들)」 | 계 16:14 |
| 통치들 · 권세들 · 이 시대의 어둠의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 · 하늘에 속한 것들 안에 있는 영적인 악의 세력들 | 엡 6:12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은 이 가운데 하나도 없다. 성경은 오히려 반대쪽에 이름을 붙인다.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아들들」이고(마 13:38),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은 「너희는 너희 아버지 디아볼로스(마귀, 참소자/중상가)에게서 났으며」(요 8:44), 「디아볼로스(마귀, 참소자/중상가)의 자녀들」(요일 3:10)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렇게 불리는 대상은 천사가 아니라 모두 사람이다.
타락하지 않은 천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히 1:5) 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느냐? (히 1:5)
하물며 하나님을 거역한 천사를 성경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를 리 없다. 욥기 1장 6절도 이 구분을 지킨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서려고 나아왔는데」(욥 1:6), 사탄은 「그들 가운데 들어왔다」(욥 1:6)고 따로 적는다. 사탄을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로 세지 않는다.
천사설 쪽에서는 「구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은 모세오경부터 선지서와 시편까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들 · 자녀들이라 부른다.
| 곳 | YLV |
|---|---|
| 출 4:22 |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맏아들이다. |
| 신 14:1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이니 |
| 신 32:19 | (그분 = 여호와) 그분의 아들들과 딸들이 그분을 노엽게 하였기 때문이다. |
| 시 73:15 | (시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말) 당신 자녀들의 세대를 배신했을 것이다. |
| 사 43:6 |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내 딸들을 땅끝에서 데려오라. |
| 호 2:1(한글 · 영어 성경 호 1:10) |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 |
천사설 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구약이 언약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바님)」라고 부르기는 해도, 「브네(~의 아들들)」 바로 뒤에 하나님을 뜻하는 낱말이 붙은 꼴 — 「브네 하엘로힘(하나님의 아들들, 창 6:2 · 욥 1:6)」이나 「브네 엘림(능한 자들의 아들들, 시 29:1 · 시 89:7, 한글 · 영어 성경은 시 89:6)」 — 은 하늘의 존재에게만 쓰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꼴이 사람에게 쓰인 곳이 있다. 호세아 2장 1절(한글 · 영어 성경 호 1:10)은 이스라엘 자손을 두고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호 2:1)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브네 엘 하이」, 곧 「브네(아들들)」 뒤에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붙은 말로, 창세기 6장 2절의 「브네 하엘로힘」과 똑같은 짜임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이름을 받는 이들은 분명히 사람, 곧 언약 백성이다. 모세 자신도 언약 백성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신 14:1)라 불렀다. 그러니 같은 모세가 쓴 창세기 6장 2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창 4:26)한 계보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른 것은 자연스럽고 일관된 어법이다.
예슈아께서 부활에 관해 하신 말씀은 천사와 하나님의 아들의 차이를 한 문장에 담고 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으며, 천사들과 동등하고 부활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눅 20:36)
부활한 성도는 다시 죽지 않고 혼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천사들과 동등」(눅 20:36)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눅 20:36, 헬라어 휘오이 테우, 직역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은 천사가 아니라 「부활의 자녀들」(눅 20:36), 곧 구속받은 사람에게 붙는다. 천사와 「같다」(마 22:30)는 것과 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말이다. 요컨대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이름이다.
천사설 쪽의 재반론도 짚어 둔다. 그들은 이 천사들이 아직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지음받은 존재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렸고, 바로 이 혼인으로 타락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두 본문과 함께 서기 어렵다.
- 창세기 6장은 그들이 「아담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로 맞이」(창 6:2)하는 바로 그 죄의 순간에도, 자식을 낳은 그 뒤에도(창 6:4) 그들을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른다. 타락하기 전의 이름이라면 죄를 짓는 장면에서는 이미 그 이름을 쓸 수 없어야 한다.
-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히 1:5) 하신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씀이 일차로는 독생자와 천사를 대조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조가 성립하는 까닭은, 성경이 「아들」이라는 이름을 천사에게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그 이름은 아들(예슈아) 안에서 아들 된 사람들의 이름이다.
정리하면, 우리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성경은 타락한 천사를 한 번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르지 않는다. 둘째, 창세기 6–8장의 홍수 기사에는 천사에 대한 심판이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심판을 받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담과 모든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