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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PE · 30장 / 전체 41장

양 떼를 먹인 베드로

바닷가에서 세 번이나 거듭된 당부라도 그 뒤에 아무 열매가 없었다면 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과연 분부받은 대로 양 떼를 먹였을까요?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어떻게 먹였는지 우리가 추측할 필요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신약 성경에 두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첫 편지는 여러 지역에 흩어진 신자들에게 쓴 것이며, 그 편지들을 보면 베드로가 양 떼에게 무엇을 먹였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편지는 막연한 위로를 건네는 글이 아니라, 말씀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라고 거듭해서 일깨우는 글입니다.

거룩하라

첫 번째 편지 앞부분에서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어떤 자녀가 되어야 하는지 일러 줍니다.

베드로전서 1:14-16 순종하는 자녀들로서,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때의 에피뒤미아이(정욕·소욕·강한 욕구들)에 따라 형태를 취하지 말며,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이들이 되라. “거룩하라, 이는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거룩함의 새로운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기록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그 이유를 밝히며 토라로 거슬러 올라가 “거룩하라, 이는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라는 계명을 가져오는데, 토라에서 이 말씀이 처음 나오는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위기 11:44-45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땅에서 기어 다니는 어떤 기는 것으로도 너희 자신(네페쉬)을 더럽히면 안 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올린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거룩해져야 한다.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은 레위기 11장 끝부분에 나오는데, 이 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어떤 생물이 먹을거리이고 어떤 생물이 먹을거리가 아닌지 정해 주시는 장입니다. 이 시리즈의 3권 「율법에서 자유?」에서 그 장을 깊이 살펴본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베드로가 그 본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양 떼를 먹이라는 분부를 받은 사람이 그들에게 거룩함을 가르치고자 했을 때, 새로운 기준을 지어내지 않고 음식 규례를 마무리하는 바로 그 대목에서 토라를 가져와 먹였습니다.

같은 장에서 베드로는 순종과 사랑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베드로전서 1:22-23 프뉴마(영)를 통해 알레데이아(진리)에 대한 순종으로 너희 프쉬카이(혼들)를 정결하게 하였으니, 위선 없는 형제 사랑을 위해, 깨끗한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에서 서로를 열심히 사랑하라. 썩는 씨앗이 아니라 썩지 않는 것으로, 살아 있고 영원히 머무는 하나님의 로고스(말씀)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진리에 대한 순종이 먼저 오고, 거기서 위선 없는 형제 사랑이 자라납니다. 신자들은 “살아 있고 영원히 머무는 하나님의 로고스(말씀)를 통해” 다시 태어났으며, 그들에게 생명을 준 바로 그 말씀이 그들을 먹이는 양식이 됩니다.

양 떼를 치라

첫 번째 편지가 끝나 갈 무렵, 베드로는 바닷가에서 자신이 받았던 당부를 장로들에게 넘겨줍니다.

베드로전서 5:1-4 함께 장로 된 이요, 메시아(그리스도)의 고난들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드러날 영광의 코이노노스(함께-참여하는 이)인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면한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라,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추한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열심으로 감독하며, 맡겨진 이들을 지배하려는 것처럼 하지 말고, 오히려 양 떼의 본이 되라.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먹이라」로 옮긴 동사는 포이마이노(양을 치다)인데, 주님께서 바닷가에서 두 번째로 당부하실 때 “내 양들을 목양하라”라고 말씀하시며 쓰셨던 바로 그 낱말입니다. 그 당부가 이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메시아(그리스도)의 고난들의 증인”이라 부르며, 장로들의 시선을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로 이끕니다. 자신이 들었던 말을 이제 다른 이들에게 전한 것이며, 그 당부는 베드로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치는 모든 장로는 동일한 목자장 아래 서서 동일한 당부를 짊어집니다.

기억하고, 왜곡하지 말라

두 번째 편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양 떼를 먹이는데, 곧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법을 일러 주고 계명을 기억하게 합니다.

베드로후서 1:19-21 또 우리는 더 확실하게 된 예언의 로고스(말씀)를 가지고 있으니, 날이 밝아오고 너희 카르디아이(마음들, 혼적영역들) 안에서 새벽별이 떠오르기까지, 어두운 곳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먼저 이것을 알라, 그라페(기록된-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개인의 해석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언은 결코 사람의 텔레마(뜻)로 나온 적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하기오(거룩한) 프뉴마(영)에 의해 페로(가져오다)받아 말하였다.

베드로는 예언의 말씀을 “어두운 곳에서 비추는 등불”이라 부르며,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예언도 자기 개인의 해석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예언은 결코 사람의 뜻으로 나온 적이 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영에 이끌려 말한 것이므로, 읽는 사람 누구도 자기 좋을 대로 그 뜻을 정할 수 없습니다.

같은 편지 뒷부분에서 베드로는 두 통의 편지를 쓴 이유를 밝힙니다.

베드로후서 3:1-2 사랑받는 이들이여, 이것이 내가 이미 너희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니; 두 편지에서 나는 순수한 디아노이아(생각)를 휘폼네스(상기)시킴으로 너희를 일깨우고 있으니,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말한 레마타(발화된-말씀들)와 너희 사도들의 주이시고 구원자이신 분의 계명을 기억하게 하려 함이다.

베드로가 상기시킴으로 일깨우며 편지를 쓴 목적은 오직 하나, 양 떼가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한 말씀들과 사도들을 통해 주신 주이시고 구원자이신 분의 계명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받은 것에서 돌아서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경고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21 디카이오쉬네(의로움)의 길을 에피기노스코(오판없이-분명히-아는)하고 난 후에 그들에게 전해진 거룩한 계명에서 돌아서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의의 길을 안 뒤에 자기들에게 전해진 거룩한 계명에서 돌아서는 것은,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쁘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맺으며 남긴 마지막 경고는, 계명을 지키는 일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겨냥합니다.

베드로후서 3:15-17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을 구원으로 여기라. 우리의 사랑받는 형제 바울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피아(지혜)에 따라 너희에게 쓴 것과 같으니, 그가 모든 편지들에서도 이것들에 관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편지들 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 배우지 못하고 굳세지 못한 이들이 다른 그라파이(기록된-성경들)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멸망을 위해 그것들을 왜곡한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이들이여,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고 있으니, 아데스모스(위법한)들의 미혹에 끌려 자신의 굳건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베드로는 여기서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로, 배우지 못하고 굳세지 못한 이들이 바울의 편지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른 그라파이(기록된-성경들)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멸망을 위해”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쓰인 동사는 스트레블로오(비틀다, 본래 모양을 어그러뜨리다)입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을 “우리의 사랑받는 형제”라 부르며 그의 편지를 성경의 반열에 둡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글을 비틀어 왜곡하며, 그 왜곡이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데스모스(위법한)들의 미혹”을 경계하라고 경고합니다. 아데스모스는 이미 세워진 법과 그 경계를 제쳐 두는 사람을 뜻합니다. 베드로가 양 떼에게 남긴 마지막 경고는 성경을 비틀어 왜곡하는 일과 율법 없이 사는 자들에게 휩쓸려 가는 일을 막아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양 떼를 계명 위에 굳게 세우고, 율법을 제쳐 두고 본문을 비트는 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이처럼 말한 목자는 양 떼에게 무엇을 먹이라고 분부받았는지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

두 번째 편지를 보면 베드로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베드로후서 1:13-15 이 장막 안에 있는 동안 상기시킴으로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우리 주 예슈아(예수)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내게 밝히 보이신 것처럼, 내 장막의 벗어남이 속히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떠난 후에도 너희가 언제든지 이것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주님께서 어디서 이 일을 분명히 알려 주셨는지는 베드로가 밝히지 않지만, 요한복음에는 바닷가에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늙으면 네 손들을 뻗을 것이고, 다른 이가 너를 묶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셨고, 요한은 “이것은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나타내어 말씀하신 것이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요한복음 21:18-19).

신약 성경은 베드로의 죽음을 이야기로 서술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바닷가에서 그 죽음을 예고하셨고, 우리는 베드로가 직접 쓴 편지를 통해 그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으며, 자신이 떠난 뒤에도 양 떼가 기억할 수 있도록 마지막 힘을 쏟고 있음을 볼 뿐입니다. 신약 성경 밖에서는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이 그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1세기 말 무렵 로마의 클레멘스는 박해를 받아 죽기까지 싸운 교회의 기둥들 가운데 베드로의 이름을 올렸고, 3세기 초의 테르툴리아누스는 그가 네로 치하의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성경 자체가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곧 그 죽음으로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바닷가에서 던지셨던 세 번째 질문, “네가 나를 필레오(친애로-사랑)하느냐?”라는 물음은 온전한 대답을 얻었습니다. 만찬 자리에서 “당신을 위하여 내 프쉬케(혼)를 내려놓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가 닭이 울기 전에 그 약속을 깨뜨렸던 사람이, 마침내 그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린 양들과 양들을 말씀으로 먹였고, 토라를 통해 거룩함을 가르쳤으며, 계명을 기억하라고 당부했고, 성경을 왜곡하는 일과 위법한 자들의 미혹을 경계하라고 경고한 뒤,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일러 주신 바로 그 의미에서 참된 친구였습니다. 명령받은 바를 행했고, 자기 혼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정을 목격한 것은 베드로의 세대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수백 년 전, 온 세상이 자기 앞에 절하기를 원했던 한 왕의 궁정에서, 유다 출신의 네 청년이 죽음의 문턱까지 함께 친구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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