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PE · 4장 / 전체 41장
아하브도 같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으셨을 때, 예슈아께서는 헬라어 낱말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토라를 인용하셨고, 토라는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그 자체로 거룩한 사랑의 낱말을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볼 곳은 구약의 히브리어이며, 그 시작은 쉐마입니다.
신명기 6:5 너는 네 온 마음과 네 온 혼(네페쉬)과 네 온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은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가장 높은 헌신입니다. 동사는 아하브로,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일을 거의 도맡는 낱말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낱말 가운데 깨끗하게 남아야 할 낱말이 있다면 바로 이 낱말일 것입니다.
어두운 장에 나오는 같은 동사
같은 동사가 다윗 집안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 가운데 하나에도 나옵니다.
사무엘하 13:1 그 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다말이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였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였다.” 동사는 쉐마의 바로 그 낱말 아하브이며, 몇 절 뒤에 이 사랑은 암논을 이끌어 배다른 누이를 강제로 범하게 합니다.
사무엘하 13:14-15 그러나 그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그녀보다 힘이 세어 그녀를 욕보이고 그녀와 동침하였다. 그 후에 암논이 그녀를 심히 미워하였으니, 그가 그녀를 미워하는 미움이 그녀를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 컸다. 암논이 그녀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가라.”
“그가 그녀를 미워하는 미움이 그녀를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 컸다.” 여기에는 명사 아하바와 동사 아하브가 한 문장 안에 함께 있으며, 같은 장 안에서 암논의 아하브는 그 사랑이 지녔던 어떤 크기보다도 더 큰 미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너는 네 온 마음과 네 온 혼(네페쉬)과 네 온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에 쓰인 낱말과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였다”에 쓰인 낱말은 똑같은 낱말입니다. 아하브가 거룩한 낱말이라는 것을 성경으로 증명하려 한다면, 성경이 그렇게 하도록 두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낱말을 가장 거룩한 사랑에도, 가장 부끄러운 사랑 가운데 하나에도 씁니다.
온갖 사랑에 쓰는 평범한 낱말
암논은 예외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 전체에서 아하브는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것이면 무엇에나 쓰는 일상 낱말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가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창세기 22:2)라고 말씀하실 때, 이 낱말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런가 하면 음식의 입맛을 가리키는 낱말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25: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그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창세기 27: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와 먹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죽기 전에 내 혼(네페쉬)이 너를 축복하겠다.”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그를 사랑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좋아하는」으로 옮긴 낱말도 아하브입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바로 그 동사가, 늙은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몇 장 뒤에는 두 아내 사이에서 남편이 한쪽을 더 아끼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창세기 29:30)고 합니다.
선지서와 지혜서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사랑에도 이 낱말을 씁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두고 “모두가 뇌물을 사랑하고”(이사야 1:23)라고 말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타작마당에서 화대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호세아 9:1)라고 말합니다. 시편은 “악인과 폭력을 사랑하는 자를 그분의 혼(네페쉬)이 미워하신다”(시편 11:5)고 말합니다. 잠언은 “잠을 사랑하지 마라, 가난해질 것이다”(잠언 20:13)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랑에도 같은 낱말을 씁니다.
레위기 19:18 네 백성의 자손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앙심을 품지 말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여호와다.
시편 119:97 내가 당신의 토라를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것은 온종일 내 묵상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가 아하브입니다.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명령, “너 자신처럼 그를 사랑하여라”(레위기 19:34)도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의 외침 “내가 당신의 토라를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도 그렇습니다. 같은 시편 뒤쪽에서 그는 다시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의 계명(미츠바)을 금보다, 정금보다 사랑합니다”(시편 119:127).
뇌물과 화대, 폭력과 잠, 아들과 음식과 아내, 이웃과 나그네, 토라와 하나님의 계명. 히브리어 성경은 이 모두에 한 동사를 붓습니다. 동사가 그 사랑이 거룩한지를 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어디에 쏟느냐가 정합니다.
명사, 그리고 더 강한 낱말
사랑이라는 명사 아하바도 똑같습니다. 사무엘하 13:15 에서는 암논의 사랑입니다. 아가서에서는 “죽음같이 강하고”라고 한 그 사랑입니다(아가 8:6). 그리고 하나님께서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까닭을 말하는 구절에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입니다.
신명기 7:8 오직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또 너희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시고 종살이하던 집, 곧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너희를 구속하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므로”가 아하바입니다. 한 명사가 암논의 잠깐 지나간 욕망도,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하는 신부의 사랑도, 한 민족을 종살이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가리킵니다.
더 강한 히브리어 낱말 하샤크도 있습니다. 매이다, 몹시 바라다, 사랑을 두다라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바로 앞 절에 나옵니다.
신명기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모하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모든 백성보다 많아서가 아니었으니,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 가장 적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모하고”가 하샤크입니다. 강한 애착을 나타내는 낱말이며,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이 주어이십니다. 그런데 같은 낱말이 창세기에서는 이미 큰 악을 저지른 한 남자에게 쓰입니다.
창세기 34:2-3 그 땅의 지도자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데려다 동침하고 그녀를 욕보였다. 그의 혼(네페쉬)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깊이 끌려, 그가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 소녀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였다.
창세기 34:8 하몰이 그들과 말하여 말했다. “내 아들 세겜의 혼(네페쉬)이 당신들의 딸에게 끌렸으니, 부디 그녀를 그에게 아내로 주십시오.
세겜은 디나를 데려다 동침하고 욕보였습니다. 그런 다음 본문은 “그가 그 소녀를 사랑하여”라고 동사 아하브로 말하고, 그의 아버지는 그의 혼이 “당신들의 딸에게 끌렸으니”라고 동사 하샤크로 전합니다. 신명기 7장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는 두 히브리어 낱말이, 젊은 여자를 욕보인 뒤에 세겜이 품은 욕망도 그립니다.
요점은 분명합니다. 헬라어 신약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성경에도 그 자체로 거룩한 사랑의 낱말은 없습니다.
쉐마가 사랑에 이어 놓은 것
이처럼 히브리어에도 그 자체로 거룩한 낱말은 없으며, 헬라어에서 참인 것이 여기서도 참입니다. 아하브, 아하바, 하샤크는 신약에서 아가파오와 아가페가 하는 그대로 움직입니다. 저마다 그릇이며, 같은 그릇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뇌물을 향한 사랑도 담깁니다. 사랑을 뜻하는 낱말이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나는 아가페로 사랑합니다”라고 하든, “나는 아하브로 사랑합니다”라고 하든, 본문은 두 물음으로 대답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떻게 드러납니까?
그러나 쉐마는 사랑을 정의하지 않은 채 두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 바로 다음 구절이 그 사랑에 무엇이 담기는지 말해 줍니다.
신명기 6:6-7 내가 오늘 너에게 명령하는 이 말씀들을 네 마음에 두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그것을 말하라.
신명기 6:5 의 사랑은 곧바로 “내가 오늘 너에게 명령하는 이 말씀들”과 이어집니다. 여기서 「명령하는」은 히브리어 치바입니다. 이 말씀들은 마음에 두어야 하고,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며, 집에서도 길에서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 바로 다음 숨에 그분이 명령하신 말씀들이 따라옵니다. 요한이 편지를 쓰기 오래전에 토라는 이미 사랑을 지킴과 묶어 두었고, 신약은 훗날 같은 진리를 정의처럼 읽히는 한 문장에 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