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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서 자유? · 3장 / 전체 41장

텔로스: 목표와 완성

어떤 구절은 길어서 찬찬히 읽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일 분이면 외울 만큼 짧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시다.”

이 구절 위에 세운 주장도 몇 마디면 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시다(로마서 10:4).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다.” 이렇게 읽으면 율법은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이어지다가, 그분이 오시자 멈춘 것입니다. 「마침」이라는 말보다 더 분명한 말은 없어 보입니다.

모든 것이 이 한 낱말에 달려 있으므로, 이 구절은 한 장을 따로 들일 만합니다.

로마서 10:4 이는 메시아(그리스도)께서 믿는 모든 자에게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위한 노모스(법)의 텔로스(목표/완성)이시기 때문이다.

한 낱말, 두 방향

「마침」으로 옮긴 낱말은 텔로스입니다. 한 기간이 텔로스에 이르렀다고 할 때처럼 끝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뜻은 목표 또는 완성입니다. 무엇인가가 겨냥하는 지점, 그것이 있는 목적을 가리킵니다. YLV 는 이 자리에서 이 낱말에 「목표/완성」이라는 뜻을 달아 두었습니다.

영어의 end 라는 한 낱말에도 두 뜻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영어로 “The end justifies the means”(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말할 때, 그 end 를 끝남으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적, 곧 겨냥하는 목표를 뜻합니다. 그러니 사전으로는 로마서 10장 4절을 가릴 수 없습니다. 두 뜻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 낱말을 어떻게 썼는가이며,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 이 낱말을, 누구도 잘못 읽지 않는 문장 속에서 썼습니다.

디모데전서 1:5 그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와 선한 쉬네이데세오스(의식/양심)와 위선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아가페(사랑)이다.

「그 명령의 목적은 … 아가페(사랑)이다.」 「목적」으로 옮긴 낱말이 같은 텔로스입니다. 「명령」으로 옮긴 낱말은 파랑겔리아(명령)로, 내려 준 당부나 명령을 뜻합니다. 헬라어로 바울은 명령의 텔로스가 사랑이라고 씁니다.

이것을 「끝」으로 읽으면, 명령은 사랑에서 끝나므로 사랑이 나타나면 가르침이 멈추고 아무도 다시는 무엇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디모데전서를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모든 가르침이 사랑을 겨냥한다는 뜻으로 말합니다. 사랑은 그 가르침이 겨누던 과녁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도 같은 짜임입니다. 메시아는 율법이 가리키던 분, 율법이 겨냥하던 목표이십니다.

요리법과 음식

집안에 내려오는 요리책의 요리법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요리법의 텔로스, 곧 그 온전한 목적은 음식입니다. 거기 적힌 모든 분량과 모든 순서는 식탁에 오를 그 음식을 겨냥합니다.

음식이 차려졌다고 요리법이 끝났다며 그 종이를 불태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표에 이르렀다고 요리법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요리법이 옳았음이 드러납니다. 다음 주에 가족이 그 음식을 또 먹고 싶으면, 같은 요리법을 다시 펼칩니다.

끝냄이라는 뜻의 마침과 목표라는 뜻의 마침은 이렇게 다릅니다. 앞의 것은 요리법을 버립니다. 뒤의 것은 요리법이 쓰인 목적을 그대로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증명하는 방식

바울이 토라가 메시아 안에서 끝났다는 뜻으로 말했다면, 뒤따르는 구절들은 토라를 뒤에 두고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다음 절부터 토라의 말씀 자체로 자기 논지를 증명합니다.

로마서 10:5-8 모세가 노모스(법)에서 나오는 디카이오쉬네(의로움)에 관해 쓰기를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로 살 것이다”라고 했다. 또 믿음에서 나오는 디카이오쉬네(의로움)는 이렇게 말한다. “네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에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하고 말하지 말라.” 이는 메시아(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이고, “또는 누가 아뷔쏘스(심연)로 내려가겠느냐” 하고 말하지 말라. 이는 메시아(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는가? “그 레마(발화된-말씀)가 네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고 네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레마(발화된-말씀)이다.

5절은 레위기를 인용합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나오는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설명하려고 바울은 신명기로 갑니다.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누가 아뷔쏘스(심연)로 내려가겠느냐」. 「그 레마(발화된-말씀)가 네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고 네 카르디아(마음, 혼적영역)에 있다」. 이 말들은 모세에게서 가져온 것이며, 모세가 직접 한 말은 이렇습니다.

신명기 30:11-14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네게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 않으니, 누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올라가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어 우리가 행하게 하겠는가 하고 말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으니, 누가 우리를 위해 바다 건너편으로 가서 그것을 우리에게 가져다가 우리에게 들려주어 우리가 행하게 하겠는가 하고 말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매우 가까워, 네 입과 네 마음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

여기서 「계명」은 히브리어 미츠바이고, 「명령하는」은 치바입니다. 모세는 「네게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닌 계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계명은 하늘에 있지 않고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은 네게 매우 가까워, 네 입과 네 마음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 그 계명은 행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의를 설명하면서 바로 이 대목을 가져옵니다. 이 선택은 따져 볼 만합니다. 율법이 끝났다고 믿는 사람은 율법의 말로 믿음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책이 끝났다고 선언하고는 곧바로 그 책을 자기 권위로 인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이 모세를 인용하는 까닭은 바울에게 모세가 여전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며 가깝다고 한 그 말씀이, 바울이 「우리가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바울보다 먼저 말씀하신 분

예슈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이 문제를 결정합니다. 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쓰기 전에, 예슈아께서는 율법을 두고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18 내가 노모스(법)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노모스(법)에서 한 이오타(아주 작은 글자)나 한 케라이아(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권에서 이 말씀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고,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가장 작은 글자 하나, 획 하나도 「노모스(법)에서 …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곁에 로마서 10장 4절을 놓아 보십시오. 텔로스가 「끝」이라면 바울은 예슈아와 어긋납니다. 예슈아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으셨다고 하시는데, 바울은 메시아가 율법이 멈추는 곳이라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텔로스가 「목표」라면 두 말은 같은 말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고, 바울은 메시아가 율법이 겨냥하던 분이라고 말합니다. 스승과 사도가 같은 과녁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목표를 놓친 까닭

로마서 10장 4절 바로 앞 절이 바울이 왜 이 말을 썼는지 보여 줍니다.

로마서 10:3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세우려 하며 하나님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하는 문제는 그들이 토라를 너무 잘 지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세우려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디카이오쉬네(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토라를 가지고 자기 의를 지어 보려 했고, 토라가 가리키던 그분을 곧장 지나쳐 버렸습니다. 요리법은 읽었는데 끝내 식탁에 앉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는 모든 자에게 디카이오쉬네(의로움)를 위한」이라고 씁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의는 토라의 목표이신 메시아를 믿는 믿음으로 오고, 자기 의로 오지 않습니다. 2권에서 우리가 처음 시작한 바로 그 은혜이며, 이 은혜는 그분을 가리키던 책에서 책장 하나도 찢어 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시다”는 바울이 말한 뜻으로는 참입니다. 메시아는 율법의 텔로스, 곧 그 겨냥점이요 완성이십니다. 율법은 자기 자신을 가리킨 적이 없습니다. 그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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